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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ul 15. 2023

렘브란트 700만큼 선명한 추억

23시간 59분과 1분 사이 그 어딘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바로 입시를 하느라 수험생의 자유는 누린 기억이 없다. 허벅지 안쪽이 닳아빠진 엔지니어드 진에 에어가 누렇게 바랜 맥스 95를 매일 교복처럼 입고 신고(부모 허리가 휘는 소리가 들리고) 760 버스를 타고 콧잔등 밑에 렘브란트 700을 거뭇하게 문대고 쓰러져 자기 바빴던 기억뿐. 


 고된 입시를 끝내고 한창 해리포터 불의 잔이 상영하던 그 해 겨울, 그날도 몹시 추웠으며 이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로(아마도 연말연초 거나하게 한 잔 하시는 일로)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지고 나는 왠지 입시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그냥 자기 아까운 날이었다. 이미 졸린 눈을 한 엄마를 졸라 CGV 불광에서 상영하는 해리 포터를 보러 가기로 하고 부친의 회사 복지포인트로 산 ‘하이파이브’ 패딩을 챙겨 입었다. 엄마는 95년 산 소나타투를 몰아 영화관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릉그릉 하는 6194의 엔진 소리와 가죽 냄새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밤중이었고 아무도 없이 폐장한 쇼핑몰의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걸어 올라갔던 기억. 감은 지 얼마 안 돼 축축한 긴 머리의 습기와 따듯했던 엄마 손. 팥죽색 가죽 의자의 촉감 같은 것이 떠오른다. 그날 엄마는 영화를 거의 못 보고 곤히 잤다. 일탈하고 싶은 딸과 그저 동행해 준 것.


이제 첫 차를 뽑고 보름 남짓을 탔는데, 새 차 냄새가 제법 거북해 탈취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고민하다, 차를 사고 왜 자꾸만 그 겨울의 밤을 떠올려 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고된 고3 생활을 마친 딸의 작은 소망을 조용히 배려해 주던 그 마음이 새삼 사무치게 고맙다. 운전을 해보니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소나타투는 늘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점잖게 멈추곤 했는데 그것 또한 그의 ‘배려’였다. 


하루 23시간 59분쯤은 괜찮다가도, 가끔은 어떤 순간은 견딜 수 없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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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3월 글 발췌.

오늘은 며칠간 잠을 설치고 있어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않아 과거의 글을 가져온다.

새 차 냄새는 늘 같은 기억을 소환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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