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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04. 2023

까나와 까나의 푸르공, 까나푸

몽골에서 푸르공을 타기로 하는 결심이 남기는 많은 것들


 몽골 여행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를 꼽으라면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것이 스쳐가지만 아무래도 유목민족의 이동 수단, ‘푸르공’이다. 러시아 군용 트럭으로 쓰이다 몽골로 들어왔다고 한다. (실제로 푸르공뿐 아니라 일본의 프리우스가 가장 많이 보이는데, 일본의 중고차 시장으로 몽골이 손꼽히기도 한다. 두 국가의 상호 조약을 통해 주고받은 것이 있을 것이다. 프리우스가 몽골에서는 좌핸들, 우핸들이 공존하고 있다. 우핸들의 수요가 적어 원래 좌핸들로 운행하는 몽골 정부는 우핸들 조작도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은 긴 이동을 해야 하는 몽골여행에서 푸르공은 점점 선호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아이코닉한 외관과는 달리, 에어컨이나 승차감 등 편의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기에, 멋은 없어도 서스가 그래도 좀 더 낫고? 에어컨도 나오는 현대의 스타렉스가 인기를 끈다.(감성을 포기하고 편의성을 추구하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나는 미처 몰랐다. 푸르공을 선택하는 순간, 몽골의 문화를 함께 선택한 것임을. 이 사실은 훕스골을 떠날 때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보기에는 감성 대장, 동글동글 귀여운 미니 트럭처럼 보이지만, 아무래도 예민하고 민감한 물건일 수밖에 없다. 탈 것인 데다, 이미 사용감이 많은 중고이기도 하고, 험지를 많이 다니는 푸르공의 특성상 차에 대해, 그리고 특히 자신의 차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기사도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우리의 훕스골 이동을 책임져 준 기사의 이름은 “까나”였다.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무뚝뚝하고 화? 가 난 듯 보였다. 서툰 몽골 말로 건네는 인사나, 음식을 권할 때에도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아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푸르공은 곧 우리를 무한 반복 360도 롤러코스터 탑승으로 인도했다. 직접 USB에 담아 온 그의 몽골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한동안 통통 튀고, 상모를 돌리며 숲 속을 헤쳐 나오자, 조금씩 짧은 웃음이 배어 나왔다.


 우리의 “까나”는 단순히 운전만 담당해 준 것이 아니라, 식사도 늘 함께, 때로는 여러 체험에도 동행해 주었다.

 말을 타는 날엔 마부가 오기 전까지 내가 탄 말을 마부 대신 달래며 나까지 안심시켜주기도 하고(물론 우리는 대화가 되지 않지만, 눈빛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주치산을 오르는 날엔, 비포장 도로를 능숙한 한 손 핸들링으로 달려 등산로 입구에 내려주고, 내려와서 끓여 먹는 라면도 함께 준비하고 먹었다. 음식 취향을 모른 채 추천하는 한국 음식들을 즐기진 않더라도 늘 거절 않고 받아준 마음이 또한 고마웠다.


 그에게 가장 미안하고 고맙고 또 감동이었던 일은 자기 분신 같은 푸르공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던 순간이었다. 입장을 바꿔보면, 누가 내 차 위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 대면 누가 반길까? 그래도 그는 기꺼이 트렁크 투도어를 활짝 열고 어떤 발을 디뎌 올라가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주고, 사진을 찍을 땐 처음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손수 우리의 사진을 찍어 남기기도 했다. 그가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었을까. 까나와, 까나의 푸르공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무정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기분으로, 나의 동행 율과 나는 그의 푸르공을 "까나의 푸르공"을 줄여 “까나푸”로 불렀다. 단순 차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순간이었다.


 훕스골에서 무릉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까나의 까나푸가 오르막을 신나게 오르던 와중에 푸시시시-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다. 알고 보니 간 밤에 누군가 까나푸의 기름을 털어간 것이었다. 분명 긴 이동을 염두하고 가득 기름을 채워 둔 까나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엔진 과열이었나 싶어 엔진을 식히기도 하고. 그 덕에 우리는 밖으로 나와 초원을 구경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결국 기름 부족임을 알고 나자, 지나가던 쌍둥이 푸르공이 잠시 차를 세워, 자기 기름을 나눠줬다. (옛날 차들은 주유된 기름을 넣고 빼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소매치기도 빈번한 것 같다.) 쌍둥이 푸르공에게 얻은 기름으로 다시 출발하면서 돈은 줬냐고 물으니 다음번에 만나 갚으면 되니까 따로 돈을 주거나 하진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들이라니. 위기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에 도와줌세 하고 제 갈길을 간다는 것이 각박한 세상, 셈이 익숙한 나에게는 어색한 일이기도 했다.

무릉으로 돌아와 까나와, 까나푸와 오랜 시간을 들여 여러 번 작별을 했다. 각자의 일은 단지 ‘돈값’에서 멈출 수도 있을 일이었는데, 그의 동행 자체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세상 모든 일을 별생각 없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까나가 괜스레 위대해 보인다.


우리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을 텐데도 마음 깊이 그 재회를 바라며 몽골 말로 다시 만나라고 인사했다.(따라올래? 와 발음이 비슷했다)


물론 내가 부여하는 괜한 의미들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또 그의 길을 멋지게 한 손 핸들링으로 떠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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