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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03. 2023

먼지가 쌓이지 않는 집

거리낌이 없는 널찍한 벌판을 얻는 방법

“집에서 사는 삶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티끌이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비좁고 번거롭다는 것입니다. 먼지라는 것은 털어 내는 먼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뇌스러운 일들을 뜻합니다. 세속적인 것은 거리낌이 많고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는 널찍한 벌판에서 살기 위해서, 한마디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안팎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출가했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욕구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어느 집을 가나 사람이 가구와 물건에 짓눌려 옹색해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갖기는 짐스럽고 남주기는 아깝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스스로 행복하라, 법정



 정말 그렇다. 서울 집에서 이틀 꼬박 넣고 빼고 고르고 골라 나의 안위를 보살펴 줄 엄선된 제군들만 곱게 개켜 넣고 23인치 정도의 캐리어를 하나 짊어지고 왔을 뿐인데, 울란바토르에서 무릉으로, 무릉에서 훕스골로 오는 동안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짐짝이었다. 

 뭐가 그렇게 옹골차게 들어있었는지, 국내선을 탈 때는 21kg이나 나가는 짐 때문에 extra charge를 물었다. 그 돈을 내고서라도 짊어지고 와야 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흥청망청 써대도 줄지 않는 1회용 씻을 거리와 용품들, 군용 핫팩, 보조배터리들, 노트북과 책을 챙긴 생각은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주겠지?',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없다.' 등의 관점이었을 텐데 막상 이곳에 와 생각해 보니 허무하게도 다 버리라고 하면 다 버려질 것들 뿐이었다. 물비누 없이 씻어도 좋을 샤워타월도 가져왔고, 삼시세끼 꼬박 주는 캠프에선 일회용 수저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춥다면 가지고 온 옷들을 조금 더 겹쳐 입으면 될 일, 보조배터리를 쓸 만큼 핸드폰을 안 하면 그만이고, 또 과감히 꺼두어도 좋을 일이다.(몽골의 자연과 LTE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안하게 했나. 어젯밤에는 시원찮은 수압에 무리하게 감은 머리가 제 때 마르지 않아 감기기운이 돌았다. 일순간 오한이 들어 핫팩으로 범벅을 해도 방법이 없었다. 동행의 호의로 비타민을 하나 얻어먹고(다른 건 두고, 비타민을 챙길 일이지) 이부프로펜 한 알을 먹고 머리를 조금 더 말리고 나니 제 컨디션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컨디션이 떨어지는 경험 이후 혹시나 이곳의 시간 전부를 앓는 일로 보낼까 걱정되어 공복시간을 깨고 일부러 조금 더 먹었다. 육포와 감자칩, 과일도 먹는다. 평소라면 먹어서는 안 될 음식들이다. 안된다니. 그것도 오류다. 나쁜 음식 좋은 음식이 없을 텐데, 괜한 규칙들이 많을 뿐이다. 그저 나를 이루었다가 또 사라질 뿐. 어제는 등산으로 1300칼로리 가까이 소모하였으니 당연히 평소보다 더 먹어둬야 했다. 짐짝이 되어버린 나의 제군들도, 컨디션도 생각과 불안이 만들어 낸 오류다. 


그래도, 위안 삼았던 것은 몸을 바르게 쓰고 다루는 법을 익혀 어디든 몸을 뉘일 정도의 천만 있으면 원하는 만큼 몸을 돌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햇살이 부서지는 호숫가 근처 데크에서 오래도록 길게 수련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꽤 비워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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