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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11. 2023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자 뭐가 보이나

정교한 단어 사용 #1. 세계관 vs 가치관

 명상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상형을 이야기하거나 심리학 관련 자료들을 접하게 될 때도 세계관과 가치관이라는 단어는 꽤 익숙하고 빈번하게 쓰인다. 하지만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펴보자면 지상파 방송 같은 매체에서도 오류를 자주 찾아보게 된다.


세계관과 가치관은 어떻게 다를까?



남반구와 북반구가 뒤 바뀌어 호주가 지도 한가운데에 있는 세계지도를 본 적이 있나? (판을 바꾸는 병에 걸린 얼빵한 장그래 신입사원이 화장실 앞 지도를 보며 물구나무를 서던 장면을 기억해 냈다)

세계 지도를 거꾸로 돌리면 지도의 한가운데 호주가 위치해 있다.

"no longer down under"는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개는 호주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호주에 머물지 않을 때 "더 이상 호주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쓴다고 한다. "I used to live in Australia, but now I'm in Canada. I'm no longer down under." 지구 남쪽 아래 위치 한 호주에게 생긴 "the land down under"라는 별명에 파생되었다고 본다. 호주인들이 세계지도에서 느꼈을 변방의 서러움?을 전환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위아래를 뒤집었을 뿐인데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나래도 "이 지도 그린 놈 누구야!" 할 법하다. 위아래를 뒤집었을 뿐인데 세계 제패도 어색하지 않을 위치다.  (대한민국 지도 역시 뒤집어 보면 곡괭이 같기도 하고, 여하튼 표효하는 호랑이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큰 대륙에 소외된 반도의 한계보다는 세계를 가장 먼저 만나는 선두의 느낌이 강해지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이렇게 지도를 뒤집어 세상을 달리 보는 일은 세계관의 영역일까? 가치관의 영역일까?
(이 글을 모두 읽고 댓글로 답을 내려보자)


세계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세상을 신화처럼 바라보는 것도,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바라보는 것도 세계관의 일종이다. 대개는 학습과 경험의 산물이기에 이 모든 요소들이 조금씩은 섞여있을 것이다. 이런 비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실 등이 섞여 있기에 어떤 지역, 어떤 문화, 어떤 가정, 어떤 종교, 어떤 철학적 배경이 삶에 존재했는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이 설명에는 일부 인생관도 섞여있다.) 영어에서도 worldview라고 쓰고 있다. 독일 철학의 근본 개념이기도 한 이 단어는 본래 Welt = world, Anschauung = view 두 단어를 직역한 것으로 철학용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마블 세계관" 같은 단어를 떠올려보자. 앞의 정의를 살펴보면 설명되지 않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세계'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에서 오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쓰이던 세계관의 '세계'는 내가 사는 현실 세계를 말한다. 창작물 혹은 게임에서 쓰이는 '세계'는 창작자가 생산해 낸 '가상의 세계'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가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세계관'을 사용할 때는 일상과 가까운 사실주의 창작물보다는 SF 혹은 판타지 장르를 이야기할 때 쓴다. 영어를 살펴보면 더 이해가 쉽다. Universe라고 쓰이는 이 의미는 이 작품에서만 통용되는 '설정된 세계'인 것이다. (쉽게 설명하려고 시작한 글이 점점 멀리 떠나가고 있다 ㅎㅎㅎ)


 한국에서는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1.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 worldview

2. 가상의 세계 - fictional universe

3. 창작물의 설정 - canon

4. 허구의 공간 - universe 등으로 너무 많은 의미를 퉁 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때는 어색하고 어떤 때는 이상하게 느끼는 것. 말 그대로 context에 의해 해석하고 이해하도록 오남용 되거나 하나 이상의 의미를 더해 쓰고 있다. 잘못 끼워진 단추 하나가 후대의 한국인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혼란한 세계관의 이야기는 이쯤 하고, 가치관으로 넘어가자.


 가치관, '나는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이상형이야.' 가치관의 용례는 보통 저런 식이다. 보다 일상적 차원의 가치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관이 맞다는 의미는 어떤 것을 공정하다고 느끼는가, 자유, 인권, 책임감 등의 정도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가치관이 어떻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세계관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방식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줄 것이고, 가치관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래도 어렵다면 더 간단히 정리해 보자.


세계관의 본래 제1의 의미로, 영어표현은 말 그대로 worldview다. 학습과 경험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일 수 있고, 과학적 사실일 수도 있다. 혹자는 세계관이 불변의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세계관은 바뀔 수 있다. 신의 유무에 대한 의견, 인과론 혹은 상대론에 대한 견해, 지구가 태양을 도나, 태양이 지구를 도나에 대한 견해에 따라 바뀌는 것이 세계관이다. 나의 사회적 위치는 어떤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주류인지 비주류인지? 정치적 성향은 어떤지? 와 같은 것에 대한 입장은 인생관이다. 오히려 인생관은 쉽게 정해지지만 변화하기는 어렵다. (인종이나 성별, 신체적 조건에서 자유롭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와 같은 요소에서도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이 세계관과 인생관을 기반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 어디로 나아갈지와 같은 가치관이 형성되고 이 가치관 역시 변화하기 어렵다. 다양한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는 다인종의 사회보다 단일민족에 가까운 한국사회는 가치관을 변화해 내기에 무척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짧은 시간 굉장히 많은 변화를 진통으로 겪으며 바꿔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오늘 주제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간단히 단어의 정의만 짚어 정리해 내고 불금을 즐기려고 했던 시도가 오만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이 계기를 통해 적어도 일상의 대화를 나눌 때 묘하게 다른 의미를 섞어 쓰는, 정정도 어려운 상황들을 지나오며 불편했던 머릿속이 제법 개운해졌다는 개인적 만족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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