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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15. 2023

질문 잘하는 한국 사람 여기 있어요!

오바마한테 누가 소문 좀 내줘요

G20 폐막 기자회견, 오바마 당시 미국대통령이 개최국인 한국기자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을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프로에 비유해 본다면 어떨까. 인터뷰를 통해 인터뷰이가 제공가능한 최대한 많은 식재료를 끄집어내어 널어놓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근데 이건 왜 샀으며 등등의 대화를 나누며 그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요리 한 가지만을 남겨 메인 요리로 만들고 가장 잘 보이는 중앙에 받침을 받쳐 올려둔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찬들은 따듯할 필요가 있는 것은 데워내고, 시원할 필요가 있다면 얼음을 더하는 등 같은 톤의 테이블 웨어에 정성스럽게 한 상 차려내는 일이다. 재료는 그가 다 가지고 있고, 나는 그걸 그의 의도에 맞게 잘 차려내고 공감하는 일인 것. 이 일이 가능하려면 '잘 살피고, 잘 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상차림을 받아 들었을 때 인터뷰이는 "와- 이 모든 게 내가 해낸 일이네? 정말 대단한데!"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히 그와 동기화되면서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초년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말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내가 준비한 질문을 모두 토씨도 틀리지 않고 모두 소화해야 했고 그러니까 인사이트는 현장에서 잡을 일이 묘연했다. 그럼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녹취를 풀며 시간을 두배로 쓴다. 그래도 현장에서 잡아내는 인사이트보다는 현저히 낮은 질의, 그저 말을 옮겨 낸 결과물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무조건 잘 듣고 잘 반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발력이 떨어진다면 "좋은 질문"을 준비하는 것이 인터뷰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사전 작업이 된다.


 나는 tvN의 예능을 두루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알쓸 시리즈를 몹시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김영하 작가, 김상욱 교수 간의 티키타카를 몹시 좋아한다. 두 시즌을 이어 MC를 맡고 있는 장항준의 역할도 매우 유의미하다. 이번 알쓸별잡은 시작부터 뉴욕으로 떠나는 장대한 스케일에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씨네리 키즈인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등장이 당연하면서도 꽤나 반가웠다.


 게다가 놀란의 인터뷰를 준비했다니, 정말 놀라울 수밖에. 이번 회차는 부러 챙겨 보았다. 보고 나니 진정한 히로인은 심채경 박사였다. 수줍은 듯 덤덤하게 영어로 시작된 그의 질문은 매 질문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의 질문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석한 유현준 교수의 질문도 인용한다.



닫힌 질문과 열린 질문


 첫 질문으로 개인적인 감사를 전한 유현준 교수의 언급이 있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통해 나도 저런 감동을 주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그만두고 싶은 힘든 시기에 건축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라고. 물론 좋은 이야기였으나 서로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 화답 외에 추가적인 응답을 하기엔 한정적 질문이었다. 이에 놀란은 감사를 전하며 "다크나이트가 아니라 인셉션에 영향받은 것이 다행이다."라는 센스 있는 농담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어진 유현준 교수의 질문

"건축가가 공간을 만들 때 이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될지를 고민하는데 영화감독 역시 콘티와 시퀀스를 만들고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때 이 의견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하다."

 물론 굉장히 인사이트가 담겨있는 질문이지만 닫힌 질문이다. 질문자가 답을 말해주고 있고 동의 여부를 묻고 있다. 물론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다채로운 내용을 담아내기엔 협소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놀란은, 굉장히 동의한다면서 다른 인터뷰에서 받았던 질문을 인용해 설명한다.

"영화제작이 없던 이전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고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건축가라고 대답했다. 좋은 건물은 좋은 경험과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역시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에 담아내며 관객의 마음에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건축과 영화가 비슷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쉽게 예시로 풀어 설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심채경 교수의 질문

"제 생각에는 감독님이 인간의 모호함과 복잡함에 특히 주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복잡한 존재니까요. 누군가를 하나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하는 첫 번째 질문은

 감독님은 어떤 사람인 것 같은지? 복잡한 사람인가요?
- 복잡성을 풀어내서 정리하고 싶은 건지?
- 또는 복잡성을 더 깊이 탐구해서 더한 복잡함을 찾고 싶은 건가요?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써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 건지?"

 이 질문에는 놀랍게도 영화에 대한 감상, 자신의 생각, 그 두 가지를 전개하면서 생긴 질문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물론 같은 자리에서 이 질문을 함께 듣는 다른 패널들의 표정에서도 충분히 이 질문의 공감 정도를 느낄 수 있다.


이 질문에 놀란은,

"영화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 다소 인물을 단순화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경향을 따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에 대한 쉬운 예시로 누아르나 스릴러 등의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의외성을 지닌 강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인물을 잘 안다고 생각하게 한 뒤 그 생각을 바꿔낼 만한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인물의 결점을 풀어낼수록 이야기가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명확한 의도를 가져야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더해져야 풍성해진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런 인간의 복잡성이 흥미로운 영화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이 답변 역시 완벽하다. 심채경 박사가 한 질문을 빼놓지 않고 모두 답변했다. 무림 고수들이 진검을 들고 서로 달려들어 달려 나간 방향으로 멈춰 섰을 때, 서로의 옷깃 끝을 베어버린 장면 같았다.


 박사 자신이 이해한 놀란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놀란"이라는 그의 이름이 한국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형용사 놀란과 명사 논란을 풀어 설명해 주고 그 모든 의미를 다 포괄하고 있다는 방식의 설명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극장 관람을 선호하는 놀란에게 사이즈의 문제인지 여러 명이 보는 것이 중요한 건지?"에 대한 질문에,

놀란은 "대형 스크린이 제공하는 기술적인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짜 본질은 소설의 주관적 경험을 관객들과의 공감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걸 실현하는 매체는 영화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한다.

 

 이 답변에 이어 심채경 박사가 한번 더 질문한다.

"심야 시간에, 혼자 극장에서 마치 빌린 듯 보는 경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답변이 보다 더 완벽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들어간다.


 그러자 놀란은 붐비는 극장에서 <양들의 침묵>을 관람했던 일을 설명하며 혼자 봤을 때 보다 훨씬 무서웠던 경험을 부연해 준다. 감흥의 증폭 때문이라는 더 구체적인 설명이 이루어진 것.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의견에 더해, 물론 혼자 보는 집중과 몰입을 선사하는 것 역시 가능하며 증폭과 몰입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한 유일한 매체이기에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정리한다. 심채경 박사의 질문은 답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볼 만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답변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열린 질문이다.


 이 아름다운 질의 끝에 유현준 교수의 덕담? 이 있었지만 그 역시 일방적 감상에 가까웠다. 평소 달변인 그는 이상하리만큼 경직되어 있던 것 같다. 정말 힘든 시기에 응원을 받았던 존재를 만나 무척 잘 해내고 싶었던 자리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의 질문 역시 전문성이 돋보이는 질문들이었다. 사실 이번 화는 놓칠 장면이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내용이 좋았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번 알쓸별잡은 심채경이라는 '질문 잘하는 사람의 발견'이었다. 이번 시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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