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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16. 2023

넷플릭스로 내 삶이 생중계된다면

덮어놓고 '동의함'이 가져온 재앙

 나는 블랙미러의 빅 팬이다.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궁금하다면 SF가 접근하는 상상력을 엿보라는 얘기가 있다. 블랙미러 역시 발전하는 기술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인간의 모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어느 시점까지는 신기하고 놀라웠다면 이젠 공포로 다가오는 횟수가 잦아지는 듯하다.

 블랙미러의 6번째 시즌이 나왔다. 6 시즌이 나오도록 가지지 않았던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왜 이 시리즈의 타이틀이 블랙미러일까? 이리저리 찾아보니 재밌는 의견이 있다. 우리가 보는 노트북, 모바일폰의 액정, 어딜 가나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모니터들이 다 'Black mirror - 검은 거울'이라는 것. 영상이 플레이되다 문득 화면 전환이 될 때 불현듯 나를 마주하게 되는 당혹감과 함께 현실과 경계가 모호한 매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게 우리인 것이다.


 이번 새로운 시즌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아무래도 <존은 끔찍해 - Joan is Awful >다.

https://www.netflix.com/browse?jbv=70264888



 주인공은 존이라는 대기업 팀장으로, 꽤 창조적 일을 하는 듯 투톤 염색 헤어에 자유로운 복장을 즐긴다. 여느 날과 같이 알람을 듣고 일어나 다정한 약혼자가 챙겨주는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한다. 출근해서는 중간관리자의 업무이기도 한 팀원을 해고하는 힘든 시간도 겪는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상담사에게 다소 권태로운 약혼자와의 일상과 힘든 업무에 대한 토로를 하는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를 잊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한다. 오랜만에 연락해 온 전남친의 문자에 고민을 하다 상담사와의 상담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만나겠다고 답장을 하고 나가는 존. 전남친과 만나서 약혼자와 확고하게 결혼할 거라는 의사를 말하는 그녀는 이미 전남친과 키스를 나누며 언행 불일치를 시전 한다. 본능에 이끌린 선택에 대한 죄책감에 집으로 들어오는 존의 표정이 어색하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약혼자. 둘이 저녁거리를 들고 TV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튼다. (극 중에서는 스트림베리로 나오지만 디자인과 오프닝 사운드가 넷플릭스와 동일하다)

 눈에 띄는 신작 <존은 끔찍해 - Joan is Awful> 자신 이름도 모자라, 투톤헤어와 그린색 슈트, 꼭 그녀와 닮았다. 호기심에 재생하자 정말 Awful 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녀의 사생활을 포함한 하루 전체가 그대로 연기를 입혀 생중계되고 있다. 그녀 자신이 등장만 하지 않았을 뿐 완전한 트루먼쇼다. 약혼남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상담사와의 권태로운 그들의 일상에 대한 상담이 모두 공개되고 심지어 전남친을 만난 장면까지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존.(무려 여기까지 오픈하더라도 스포가 될 수 없을 만큼 초반의 이야기다.) 배신감에 약혼자는 그 길로 존을 떠나고 그녀는 멘붕이 된다. AI가 반나절만에 CG를 입혀 만들어내기 때문에 시간 차도 거의 없다.


 우리가 무심코 동의하는 수많은 사생활과 개인정보 보호 관련 약관들의 취약점, 콘텐츠 기업이 활용하려고 들면 어디까지 침범해 올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기술이 악용되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수많은 플랫폼 서비스들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큐레이션 하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정보를 내어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맞다.

AI는

나를 잘 알아보고(데이터 수집),

나에 대해 학습하고(데이터 학습과 큐레이션),

나를 비슷하게 흉내 내고(어시스턴트 역할과 아바타, 온라인 쇼핑에 활용하는 3D 시뮬레이션 등)


그리고? 이다음은


나를 대체할 수 있다.


 콘텐츠 기업의 담당자와 기자의 인터뷰 중 대체 왜 근데 제목이 "끔찍해"인지 묻는다. 이어진 담당자의 답변 "더 긍정적 콘텐츠를 개발했지만, 대상자들이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약점이나, 이기적인 면, 비겁한 순간을 그릴 수록 가장 깊은 내면의 두려움을 느끼며 몰입하게 된다. 말 그대로 매혹적 공포인 것."


이 답변이 우리의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게 될지 AI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의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다.


<존은 끔찍해>에서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건지 한 갈래의 상상을 덧입혀 우리에게 보여줬을 뿐. 마냥 웃고 즐길 수만은 없다. (그나마 극 중 존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중 얼마나 저렇게 대응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지금도 당신의 대화를 엿들어 광고를 내보내는 정도의 귀여운 도청은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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