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던 그렇지만 별 일인 아침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처음으로 이층 버스를 탔다. 워낙 강남 방향 출퇴근길 이용객이 많아 암암리에 입석 승객을 허용하고 그마저도 자리가 부족해 다음 차를 타야 했던 일이 많다. 몇 해 전부터 그 대안으로 출퇴근 시간 한정 이층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종종 출퇴근 길에 이층 버스를 타게 되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이층에 올라간 적이 없다. 대신 몇 안 되는 일층 좌석을 고집했다. 굳이 계단을 오르고 싶지 않다는 귀차니즘과 이층은 덜 안전하고 불편할 것이라는 왠지 모를 불안함 때문이었다.
오늘도 때마침 이층 버스가 도착했다. 잔여좌석이 14개뿐이라 일층에 남아있는 좌석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고 역시나 일층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층에 올랐고 처음 보는 고속버스의 이층 광경은 생각 외로 매우 아늑했다. 오히려 일층보다 좌석이 넓고 깨끗했다. 아침 출근길에는 늘 추위에 떨며 출근을 하곤 했는데 이층은 버스 출입문이랑 멀어서 그런지 히터 없이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바깥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없어 답답하고 불안할 줄 알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난 강남행 고속버스를 타고 출근을 시작한 지 5주 만에 처음으로 꿀잠을 잤다.
이층 버스 이층에 타는 게 정말 별 것도 아닌데 난 그 별것도 아닌 일을 왜 지금에서야 처음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참 새로운 것에 두려움이 많고 안정지향적인 사람인가 보다. 슈퍼에서 과자를 고를 때도 늘 먹던 과자를 사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늘 먹던 걸 주문한다. 경험이 없으면 인스타그램과 네이버를 뒤져가며 타인의 경험에라도 의존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그저 매일 먹는, 밥 한 끼일 뿐인데 맛이 좀 없으면 어떻다고 왜 그렇게 보수적으로 구는지 가끔 나도 내가 웃기다.
별 것 아닌 그저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는 좀 더 힘을 빼봐야 겠다. 안먹어본 과자도 먹어보고, 평소 안시켜보던 음식도 먹어보고. 오늘 어쩌다가 타게 된 이층 버스의 이층 자리처럼 의도치 않은 찐 행복을 또 마추질 수 있을 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