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이 뭐야 결론이...
'그래서? 뭐? 그게 끝이야? 결론이 뭔데?'
한창을 설명하고 내 할 말이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면 돌아오는 사수의 반응이었다.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토해낸 다음 돌아오는 '그래서?'라는 물음은 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아 오늘도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이렇게 또 시작되는 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만하면 됐지 여기서 더 무얼 하란 말인가.' 할말이 고갈된 내 머릿 속이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가득 채워질 즈음 또 한 번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라는 말이 들린다. 그러면 마지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엄마에게 쓰게 되었다. 엄마는 무슨 말을 할 때면 한참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 이야기 말미에 조그마한 결론을 주곤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러다 등장인물의 사돈의 팔촌까지 다 들어야 시작하겠구나 하는 답답함에 참지 못하고 '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라는 말을 종종 튀어나온다. 그러면 엄마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결론아닌 결론을 말해주곤 한다. '좀 더 엄마 얘기를 들어줄걸, 내가 밖에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집에 와서 써먹네'라며 반성하다가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란 이야기 한 보따리를 듣다 보면 늘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외치곤 한다.
요즘은 컴퓨터로 일기를 쓰다 보니 결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고로 글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내가 써 내려간 글을 처음부터 읽고 있으면,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는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거창한 시작,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 본론 그리고 어찌 글을 맺어야 할지 몰라 늘 선언적인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애매하고 짧은 결론의 패턴이 반복되는 듯하다. 그저 오늘 하루 나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일기의 말미에는 늘 긍정적이고 희망찬 다짐을 하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사수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 건 '답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의 결론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내가 아는 것들은 모두 보고할 테니 결정해달라는 일종의 회피였다. '아니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라고 재촉할 때까지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는 '그저 딸과 얘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딸과 얘기하는 그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공감받고 싶어서 장황한 이야기를 한보따리 꺼내놓는 것이다. 나의 일기에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생각 저 생각이 온 머리를 맴돌기만할 뿐 의미 있는 종착점으로 귀결시키지는 못했지만, 결론이 없는 나의 치열한 사고 역시 의미 있는 과정이라 믿는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잊지 않고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나를 위한 일기를 쓰며 결론을 맺지 못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