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해먹어요.
10월의 어느 날.
마음 안에서 슬픔을 둥글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부정적인 감정을 그때그때 밖으로 해소하기보다는, 혼자 삭히는 사람.
옛날엔 스스로 화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화가 나는 장벽이 높을 뿐, 자잘한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속에 남아 한 번씩 마음속에 폭풍이 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머릿속도 뒤죽박죽, 마음도 뾰족 뾰족.
내가 그런 못난이 상태일 때,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불똥을 튀길 때가 간혹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매 번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면, 불편한 돌멩이가 명치에 걸린 듯 한참을 나를 괴롭혔다.
조금씩 성숙하게 된 이후에 그런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매운 음식을 먹는다거나, 슬픈 영화를 본다거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거나, 차분하게 내가 가진 문제를 적으며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그렇게 다시금 내면의 평화를 찾곤 했다.
왠지 그 시기가 돌아온듯한 기분이다.
어제 유독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고 싶었다. 특별하게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울지 않아도 병에 걸릴 것만 같다는 생각.
그래서 검색창에 슬픈 영화를 쳐서 가장 슬프다는 영화 한 편을 틀었다.
하지만 아무리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이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눈물 나게 매운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 싶었다.
너무 맵기만 하면 속 뒤집혀지니까, 매운맛을 중화시켜 줄 달달한 애호박전도 함께 먹어야지.
마음에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직빵인, <매운떡볶이와 애호박전>
냄비에 물을 끓인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떡볶이 떡을 물에 담아 살짝 해동하며 불려준다.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고추장 크게 한 숟가락을 넣어준다.
냉장고에서 숙성이 되어 매운맛이 강해진 고추장이다.
고추장에 잘 풀어지고 나면 간장 반수저, 설탕 크게 한 숟가락, 카레가루 아주 조금, 매운 고춧가루 반수저, 후추를 듬뿍 뿌려준다.
벌써부터 칼칼한 향이 올라온다.
그 위로 떡볶이 떡을 투하.
얼마 전 사둔 두툼한 어묵도 몇 개 넣어준다.
간을 살짝 봐준다.
와- 벌써 맵다.
단맛이 조금 모자란 듯싶어 올리고당을 한 수저 넣어준다.
파 한 단을 떡과 비슷한 사이즈로 썰어주고 넣어준다. 파를 넣으면 시원한 감칠맛이 추가된다.
나는 떡볶이를 한 김 살짝 날렸다가 다시 끓여 먹는데, 그럼 조금 걸쭉해진 국물을 먹을 수 있어서이다.
떡볶이를 대강 완성했으니, 이제 애호박전을 부칠 차례다.
잘 씻은 애호박을 얇고 길게 채 썰어준다.
애호박을 2등분 한 뒤, 손이 다치지 않게 고무장갑을 끼고 채칼로 쓱쓱 밀어준다.
잘 썰어준 애호박 위로 소금 두 꼬집 정도로 간을 해준다.
그리고 참치액젓을 반수저 정도 넣어준다.
한식주점에서 건새우를 넣은 애호박 전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게 기억나 대신할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넣어 먹어보니 맛있었다.
튀김가루와 부침가루를 크게 한 숟가락씩 넣어 대강 반죽을 해준다.
애호박 자체에 물이 충분히 있으니 물은 따로 넣지 않는다.
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부어주고 반죽을 얇게 펴 올려준다.
지글지글 뒷면에 잘 익었다 싶으면 몇 번의 실패로 쌓아 올린 실력으로 잘 뒤집어준다.
바삭하게 익히려고 기름을 조금 더 둘러준다. 뒤집어 준 부분은 더 바삭하게 익혀야지.
요 타이밍에 떡볶이도 불에 올려 한 번 더 끓여준다.
요리에 집중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탈까 봐, 졸아버릴까 봐, 짜질까 봐, 너무 달아질까 봐, 요리에 신중을 가하는 이 시간만큼은 말이다.
오늘도 요리 완성.
걸쭉해진 국물까지 함께 떠서 한입, 어묵에 떡을 싸서 한입, 파와 함께 한입.
얼얼하게 매운맛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나는 땀을 흘리기로 한 걸까.
간이 쌔지 않아 자체로 달달한 애호박전을 먹어주면 잠시나마 매운맛이 가라앉는다.
칼칼하게 매우면서 달달하게 맛있는 이 조합은 역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제격이었다.
그렇게 땀인지 눈물인지 매운맛에 몸부림치며 넉넉하게 한 양의 음식을 다 먹어버렸다.
슬픔이 기쁨을 잠식하는 순간부터 사람의 우울은 시작된다.
그 두 감정은 너무 몸집이 커서 오히려 종이 한 장 차이로 뒤집히기도 하니까.
그러니 기쁨의 짧은 순간에는 얼른 만끽해야 하고,
슬픔의 긴 순간에는 세상에 기쁨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안다.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싫어도 내일은 오고.
아무리 답답해도 배꼽시계는 울리고.
아무리 슬퍼도 또다시 그것을 새로이 마주할 날은 다시 온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될 것을.
그럼에도 지금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냥 아프자고. 그래야 괜찮아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