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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Aug 26. 2021

스물 다섯, 제주도

02. 제주는 '좁지만 어쩌면 가장 넓은 섬' 이다.

이토록 다양한 색깔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있던가.


제주도 관광지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각양각색의 다양한 성향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에 있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직원들 중에서 제주도 토박이인 사람을 찾기가 은근 쉽지 않다. 스무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정도? 기숙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직원을 뽑는 곳이 많다보니, 제주한달살이나 일년살이 혹은 제주에서 카페 창업을 목표로 경험을 쌓으려는 각지의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대형 카페 뿐만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나 식당, 뮤지엄 등등 제주도 관광과 관련된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직원이 오면 이름을 묻고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어디 분이세요?'라는 질문이다. 제주 사람도 있긴 했지만 서울, 경기, 인천, 원주, 춘천, 대구, 부산, 강릉, 속초 등등. 정말 다양한 지역에서 제주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초중고대를 다 서울에서 다녔기 때문인지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서울 사람들이었다. 각지에서 올라와서 모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 마저도 서울, 경기, 인천 사람들이 다수였다. 때문에 이렇게나 좁은 공간 안에 이렇게나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성향과, 다양한 꿈을 안은 젊은이들의 집합소. 너무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꼽자면 다들 열린 마음의 외향적인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이곳에서 일한 첫날 들었던 생각은 '아 여기는 파워내향인은 살아남지 못 할 곳이구나'였다. 각자 살던 곳을 떠나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서 살며 일해보겠다고 온 사람들 다수는 파워외향인이었고, 내향인 중 그나마 외향인 성격의 나는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며칠만에 관두는 파워 내향인들을 한두명 본 게 아니었다. 파워외향인인 사람들에게 퇴근 후나 휴무일은 당연히 누군가를 만나 노는 날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나 또한 꽤 자주 또래의 직원들과 제주 여행을 떠나거나, 퇴근 후 맥주 한 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일터인 카페에 있어서의 불만과 진상 손님 썰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 했지만, 단연코 빠지지 않는 대화거리는 제주도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계획했던 워킹홀리데이를 하지 못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제주도 살이를 하러 내려온 이십대 초반의 친구들, 친척이 제주도에 사는데 제주도가 너무 좋아 서울과 제주를 왔다갔다 하며 살이를 반복하고 있는 오빠,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번아웃이 와서 다시 재충전을 위해 제주도로 왔다는 언니,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서울의 삶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떨어트려 보고 싶어 제주에 온 언니, 원래 수영선수였지만 해볼만큼 해본 거 같아 딱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맞아 더 큰 곳에서 일해보고 싶어 제주도에 온 언니, 제주도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다가 접고 카페에 재취업하시게 되었다는 오빠, 제주도에서 카페를 차리는 것이 꿈이라 퇴사를 하고 제주에 내려온 오빠 등등. 다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었고 제주에 오기 전까지 각자만의 화려하고 다사다난하며 매우 일상적인 자신의 원래의 삶이 있었다.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이라는 게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만의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구나, 절대로 늦은 나이는 없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라는 파도를 열심히 즐기는 인생의 서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도저히 사랑 안할 수 없는 사람들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자신의 즐거움과 배움을 열린 마음으로 나누고, 하루를 꽉 채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내고야 말고, 그 힘든 일들을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순수하게 진심을 다해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주도에서 일하고, 한달살이나 일년살이 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쉬어가는 사람들, 혹은 욜로족, 혹은 인생을 그냥 즐기기만 하려는 사람들(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곧 그 일터를 떠날테지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인생에 잘 남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모두 각자만의 색깔로 밝게 빛나는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제주는 좁지만 어쩌면 가장 넓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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