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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20. 2022

나는 한라산 정복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투자시장이 아닌, 등산에서 배우다.

제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가장 큰 제주 버킷리스트는 당연 한라산 백록담을 두 눈으로 담는 것이었다.


제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남동생은 한라산을 친구들과 세 번이나 올랐다. 그중에 가장 처음이었던 설산 등반 때는 다녀와서 며칠 끙끙 앓기도 했던 터라 역시 만만치 않은 산이군 하며 겁먹고 있었다.


나에게 등산은 숨이 기분 좋게 차오르고 얼굴이 살짝 시뻘게질 정도의 높이에서 시원하고  트인 절경을 구경한  여유롭게 내려와 백숙이나 파전이나 오리로스를 먹는 코스의 이벤트였다. 게다가 나는 정말 생존에 필요한 근육만을 소유한 사람이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런 내가 우리나라 최고 높이의 산 등반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며 계속 미뤄왔던 일이 바로 한라산 등반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라산 정상을 다녀와 본 경험이 있는 남자 친구가 한라산 등반을 같이 가보자고 했고, 이 기회가 아니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첫 번째 한라산 등반에 도전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10월 17일.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던 중 더 추워지기 전에 한라산을 올라보자 굳게 마음먹고 잡은 날이었다.

정해둔 날짜 며칠 전으로 다녀온 지인들이 너무나도 좋은 가을 날씨의 한라산을 즐기고 왔었기 때문에 제발 좋은 날씨여라 하고 바랐지만, 역시 인생은  맘대로 되지 않았다. 전날부터 갑자기 예고된 기습 한파주의보에 당일  이른 새벽에도 한라산을 오를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신할  없었다.

기후 탓에 정상을 오르는 통로 개방은 더 오후가 되어 상황을 보고 나서 결정한다는 공지를 보고 그래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택시를 불러 성판악 매표소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정상에 오르는 입구가 개방될지 안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산 시작 통로의 초입구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먼저 도착해 오빠를 기다리며 날은 춥지만 구름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 오늘 올라가 볼 정상에 대한 기대감이 마구 생겼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앞 선 순간이었다.

올라가는 초반은 주변 경치가 너무 제주스러워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드디어 내가 한라산을 올라보는구나 하는 설렘에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올라갔다. 그러다 진달래대피소에서 쉬며 초코바를 먹는 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정말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올라갔던 거 같다.

성판악 코스 풍경

나름 숨이 차도 씩씩하게 속밭대피소까지 올라갔다. '나 생각보다 잘 오르네~?' 라는 생각이 '하 이제는 힘들다 더 못 가겠어.'로 바뀌기 딱 그 시점에 내 눈앞에는 환상적인 상고대 풍경이 펼쳐졌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어차피 실물을 담지도 못할 사진을 찍기 바빴다. 하지만 예쁜 것과는 별개로 너-무 추웠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 괜히 한파주의보가 아니구나 싶은 칼바람이었다. 그래서 기대와는 달리 정상으로 오르는 통로는 굳게 닫혔다. 아쉽지만 속밭대피소에서 컵라면과 새벽부터 싼 전복게우주먹밥을 맛있게 먹은 걸로 만족해야 했다.

한라산 상고대

아쉬운 마음에 내려오는  갈림길에 있는 사라오름을 올랐다. 사라오름은 성판악 등산로로 접근이 가능한 오름인데 비가 아주 많이  후에 가면 물이 많이 차서 신발을 벗고 물이  다리를 건너는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꽤나 유명한 곳이다. 이동로까지 물이 차지는 않았지만 사라오름에 예쁘게 고여있는 물과 풍경이 정상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씻어주었다. 사라오름에서 조금  올라가면 내려다볼  있는 제주 남쪽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힘들다고 사라오름에  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외치며 한라산 하산길에 올랐다.

사라오름의 풍경

하지만 웬걸.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려가는 길은  이렇게 끝도 없는지. 가도 가도 입구가 나오지 않는 데다가 계속 같은 풍경만 반복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성판악코스는 내려와서 ‘다음에는 정상에  올라가보자!’ 라고 말할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다. 내가 다시 정상을 꿈꿀  있었던  아직 극한의 등산 맛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 최근 한라산 등반 뒤에야 깨달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살면서 얻은  깨달음  하나였는데, 깨달으면 뭐하나 그걸  잊고 사는데.

결국에 나는 성판악을 올랐던 나의 과거의 기억을 미화시켰고, 그 끝내 다시 정상에 올라보고자 이번에는 과감하게 관음사코스를 선택해 다시 날을 잡게 된다.

이름하여 2022.7.26 한라산 정복의 날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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