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대략 3~40%의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직업이 없고, 그중 절반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보거나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려면 비용이 만만찮을뿐더러, 성인들도 들여다보기 쉽지 않은 내면을 청소년에게 들여다보라고 얘기하는 게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어릴 때 저는 수학을 쉽게 가르쳐주는 선생님, 성경을 쉽게 풀어주는 목사님 등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요. 나이 탓인지 하고 싶은 일이 점점 희미해집니다.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일을 끄집어내도, 과연 진로로서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던졌는데 전혀 답이 나오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문득 저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걸 인정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저는 꿈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죽고 싶지 않아서 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듯합니다. 결국 꿈이 없어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부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죠.
먼저, 꿈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면, 오늘 저는 무엇을 하지 못한 걸 아쉬워할지 생각해 보았죠. 아무래도 내일 죽는다면, 오늘 맛있는 걸 먹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것 같았습니다. 더 나아가 3일 후에 죽는다고 가정하면, 오늘 저는 가족을 만나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것 같았죠. 그렇다면 일주일 후에, 한 달 후에, 일 년 후에, 십 년 후에, 오십 년 후에, 이렇게 계속 죽게 될 시간을 늘려가면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지 못한 걸 아쉬워할지 고민한 내용을 모아보니, 어느새 그 답변은 제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죠. 누군가 내게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볼 때 하나도 선뜻 말하지 못했었는데, 죽음을 토대로 생각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천년만년 살 것처럼 꿈을 거창하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죠. 언젠가 죽으면 가장 사소한 것부터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을 사람이었으면서 말입니다.
과거에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일을 '미련'이라고 부릅니다. 미련을 이용하면 진로를 탐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에 찾아오는 다양한 선택에서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요. 선택할 상황을 앞두고 죽을 때 미련이 남을 것 같은지 고민해본 뒤, 미련이 남을 것 같으면 도전하기로 하는 방법입니다. 단순하지만 이 방식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행동하다 보니, 예전의 저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죠. 사소해 보이지만 번지점프를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막상 시도해 보고 나니 이런 무서운 건 다시 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그동안 번지점프에 갖고 있던 막연한 공포가 사라지기도 했죠.
꿈이 없어져서 고민했던 시간 덕분에 저는 저만의 인생철학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감당할 수 있을 약간의 미련'만을 갖고 살 겁니다. 언제 죽더라도 제 삶에 미련을 남겨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미래의 꿈을 위해 오늘 하루를 불태우면서 살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거창한 꿈도 이제 없죠. 꿈이 크면 다른 사람이 가진 꿈과 크기를 서로 비교하게 될 뿐입니다. 그저 지금 하는 일을 포기했을 때, 나중에 미련으로 남을 것 같다면 계속 도전할 뿐이죠. 이루지 못할 거창한 꿈을 품고 아등바등하며 살 바에야 죽음 앞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