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민이 쌓여서 만들어진 게 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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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하거나 스스로 고민을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고민이었는데, 왜 그때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을까? 그러다 보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확장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깊어지면, 문득 삶에 대해 깊은 회의가 찾아온다. 지금 고민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나는 왜 사는 것일까? 스스로 왜 사는지 고민을 나름 많이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고민을 계속 반복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니까 꽤나 많이 허무해졌다. 여기에서 찾아낸 나름의 해법은 고민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충분히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지기 위해 지금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언젠가 나의 시간을 밟게 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 관계의 정답은 있는가라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어보았다. 인간관계는 많은 게 좋을까, 똘똘한 한 채를 구하는 게 좋을까? 인간관계에 대해 세워 본 나름의 원칙을 아낌없이 공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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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힘들게 조언했었던 말이
오지랖이 되지 않으려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이 고민하는 내용을 놓고 조언하거나 내가 고민하는 내용을 놓고 조언을 듣곤 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매우 소중한데요. 비슷한 경험을 한 상대방으로 통해 위험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조언을 듣는 과정을 통해 아직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시뮬레이션으로 한번 경험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이 많은 어른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는 조언은 나이 차이가 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직 그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마흔 살을 경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마흔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거든요. 정작 마흔을 넘긴 분들은 정작 마흔 그거 별 거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나이 든 사람이 해주시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은 아직 해당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됩니다.
다만, 조언하기 전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나에게 조언해달라고 요청한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안 물어봤는데 조언하는 건 아무리 열심히 포장해봤자 오지랖에 불과하죠. 조언과 오지랖의 차이를 모른다면, 기껏 열심히 조언해놓고 힘만 빠집니다. 괜히 오지랖이 넓다는 얘기만 들을 뿐이고요.
둘째, 상대방이 내 조언대로 선택하지 않아도 기분이 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조언하다 보면 자신이 조언한 내용 자체에 취해 자신의 이야기가 무조건 옳다고 착각하는 경험, 조언을 해보신 분이라면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자신의 조언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내가 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재 조언을 듣고 있는 상대방의 상황에 적절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는 거죠. 내 조언대로 상대방이 행동하길 유도할 순 있어도, 최종적으로 조언대로 실행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몫입니다.
자신의 조언을 과도하게 관철하다가 자칫 친밀했던 관계가 틀어지거나 가스라이팅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연인/베프 간에 조언하다가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요. 서로 아낀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조언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언이 아무리 중요하다한들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겠죠.
관계가 틀어질 것을 각오할 정도로 중요한 조언이 있었다면, 설마 상대방이 내용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럴 땐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할 게 아니라 조언하고 있는 상대의 상황 자체가 과연 괜찮은 건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셋째, 상대방이 조언과 공감 중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허락보다 용서가 쉬운 법입니다. 선택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내 조언을 듣고 나서 선택하려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저지른 선택을 놓고, 이렇게 해도 되는지 확인받기 원하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는 상대방이 저지른 선택을 놓고 타박하면서 조언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좀 더 정확하게 들어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선택이 맞고 틀리고에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놓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왜 상대방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감할 수 있거든요.
이미 저지른 선택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건 선택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상해 보고,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놓은 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미리 상상한 최악의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놓이더라도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곤 해도 상대방이 매번 용서만 구하려고 한다면, 조언하는 사람 입장에서 매번 뒤치다꺼리만 하게 될 테니 그것도 참 난감한 일입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죠. 선택했을 때 나에게 어떤 손해가 있을지 미리 예상해 보고, 그 손해를 두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으면 선택하면 됩니다. 자신이 했던 선택에 책임질 수 없다면, 선택을 강행하기보다 잠시 유보하거나 멈추는 게 오히려 현명한 행동이 되겠죠.
1.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별로 안 중요한 것일까
조금 심각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을 때, 자신도 예전에 경험해 본 거라면서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조언을 듣게 될 때가 있죠. 게다가 그런 고민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는 말까지 덧붙여 듣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나이가 지금보다 꽤 많이 어렸을 때, 그런 위로 섞인 조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조언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몇 년 전에 했었던 고민을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긴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하죠.
그런데 저는 어쩌면 이 맞는 말을 놓고 정말 맞는지 한번 따져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면, 어쩌면 우리는 평생 동안 아무것도 아닌 고민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불필요한 고민의 계단만 계속 올라가고 있다면, 이건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하더라도 다 쓸데없는 고민이라면, 우리의 삶 자체가 전부 허무해질 테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별로 안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안 중요할까요? 사람이 제때 했어야 할 거, 남들 다 하고 사는 거,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핑계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못 한 거, 그게 나중에 얼마나 후회되던가요? 며칠 전, 잠들기 전에 드라마 [청춘시대]를 소개하는 영상을 유튜브로 봤습니다. 청춘시대는 2016년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로, 다섯 명의 여성이 주연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요. 각자의 상황에서 그려 나가는 다채로운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꿈에서 제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더군요. 꿈이라 그런지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생하게 제 귀에 들리기도 했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꿈에서 깨고 나니까 비로소 이게 꿈이었구나를 깨닫더군요. (이렇게 멜로드라마가 인체에 해롭습니다. 여러분.)
꿈에서 깨고 난 후, 스스로 왜 이런 꿈을 꿨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남들 다 연애하고 지낼 때, 충분히 많이 연애해 보지 못했던 게 아마 마음속 깊이 갈망함으로 남았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 갈망함이 꿈으로 발현되어 나타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하고 싶은 걸 제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걸 제때 못 하면 계속 마음에 남으니까요.
저는 사람마다 그때에 걸맞은 고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진 않을 겁니다. 적어도 그 고민 때문에 티끌 정도의 변화는 있겠지요. 티끌 같은 고민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쌓이면서 그 깊이만큼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테니까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티끌 같아 보이는 이유는 주로 자신의 고민이 [감정]이나 [본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통에 자신의 고민을 포착하기 어렵죠. 이러한 감정과 본능을 최대한 [이성]으로 해석해서 설명하면서 스스로 조금씩 이해하고 변화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고민이 티끌 같다면, 그 티끌 같은 고민의 해상도를 높여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스스로 고민을 구체화하는 게 어렵다면, 고민을 상담해주는 선생님/멘토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죠. 선생님은 별 거 아닌 걸, 별 거 아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요.
2.
인간 관계 에너지
총량 보존의 법칙
다들 친구나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고민 상담할 때가 있으시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인간관계]입니다. 특히, 믿었던 친구에게 발등이 찍혀서 배신당했다는 얘기가 가장 많은데요. 역시 사람은 배신을 당해야 깨달음을 얻는 현자가 되는 모양입니다.
배신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인간관계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자신만의 관계 맺는 방식과 원칙을 세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기적으로 스마트폰에 있는 연락처를 지운다거나, 연락을 안 하는 단톡방을 탈퇴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돌아보기 위해 일부러 배신을 당하란 얘기는 아닙니다. 난로에 손을 꼭 대봐야만 뜨거운 걸 아는 게 아니듯,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살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죠.
문제는 관계 맺는 원칙을 세울 때, 자신의 마음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배신을 당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태에서 뭐가 되었든 온전한 기준을 세우긴 쉽지 않죠. 그래서 조금 기준이 극단적으로 세워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반대로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친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둘 다 극단적인 해법이지만, 각자의 상황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둘 다 가능하면 더 좋은 거 아닐까요? 나를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도 있으면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 가장 좋은 방안이지 않나 싶습니다.
흔히 인간관계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친구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라는 답이 나에게는 정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죠. 반대로 얕은 관계를 가진 친구가 많은 게 좋다는 말은 내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일 수 있습니다.
과연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는 것일까요? 저는 인간관계에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복수 정답이라서 상황에 맞게 고치고 다듬은 나만의 답을 각자 선택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과연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생각하는 관계의 정답으로 [인간 관계 에너지 총량 보존의 법칙]을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물리 시간에 에너지 총량 보존의 법칙을 배우신 적이 있으시죠? 위치에 따라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값은 서로 다르지만 그 총합은 일정하다는 말이 있죠.
제가 제안하는 법칙은 [한 사람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들이는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건데요.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한 까닭은 모두에게 하루는 24시간으로 동일하고, 사람의 성격과 생활패턴이 쉽게 변하지 않으니 관계에 쏟는 에너지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관계에 100의 에너지를 들인다면, 가족에 30을 쓰고, 직장에 30을 쓰며, 모임에 40을 쓸 수 있습니다. B라는 사람은 관계에 50의 에너지를 들이는데, 가족에 10, 직장에 10, 모임에 30을 쓸 수 있는 것이죠. 여기에서 50의 에너지를 들이는 B에게 왜 100의 에너지를 들이지 않느냐고 A가 따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100의 에너지를 들이는 A에게 B처럼 50의 에너지만 들이도록 줄일 수도 없죠.
다만 관계에 들이는 에너지의 총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대신, 자신의 변화한 상황에 맞게 비중을 조율할 수는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거나,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게 되었다면, 기존보다 해당 집단에서의 좀 더 관계에 신경 쓰게 되겠죠. 에너지 총량은 보존되니 대신 다른 관계에 덜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됩니다.
3.
관계의 본질은
분량보다 농도
요즘 서로에게 신경 쓰는 게 예전 같지 않다며 서운해하는 한 커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처음 사귈 때는 서로에게 온전히 시간을 쓰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에 집중하겠죠. 연애 초기, 뇌에서 세로토닌/도파민/페닐에탈아민/옥시토신 등 다양한 호르몬을 과다하게 분비합니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늘 나보다 상대방을 우선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균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호르몬은 줄어들고, 상대방보다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서로 간 관계에 쏟는 에너지 비중을 늘렸으니,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죠.
그 커플의 남자는 태생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에 많은 비중을 두더군요. 그러다가 여자 친구에게 소홀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새로운 사람에게 쓰는 에너지를 줄여서 여자 친구에게 잠시 집중했습니다. 그러다가 여자 친구와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느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에 비중을 두게 된 것이죠.
저는 이게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기존에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는 것은 꽤나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일부러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늘려 나가는 법입니다.
반대로 기존에 친한 사람과 계속 친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인간관계만 최소한으로 유지하죠. 이렇게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기존 관계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제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10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90% 이상 달라졌습니다. 10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에서 10% 이하만 제 곁에 남았죠. 그렇다면 이제 스쳐간 인연이 되어버린, 이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90% 이상의 사람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0% 이하밖에 되지 않는 제 소중한 인연을 찾기 위해 90% 이상의 사람을 만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게다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을 보는 눈도 많이 길러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에너지를 꽤 할애하는 편입니다. 언제 어디서 제게 소중한 인연이 나타날지 모르니 말입니다.
때로는 예전에 스쳐 지나간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어색하게 알고 지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서로 낯설게 느끼게 되는데요. 예전에 충분히 친해지지 못했다면, 새롭게 계기를 만들어 친하게 지내면 됩니다.
친하다는 건 관계의 농도가 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과 친해지지 못했다면 관계의 농도가 옅었던 것이고, 옅은 농도의 관계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맺은 관계가 힘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농도는 채워야죠. 여기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농도란 나중에 연락해서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내가 관계에 들이는 에너지를 상대방은 다르게 느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들였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별로 에너지를 쏟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서운할 수 있죠. 자신이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도 상대방과 최소한의 농도까지 채워지지 않는다면, 현재 그 사람은 나와 관계 맺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럴 땐 그냥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게 낫겠죠. 친해지기도 힘든 상대방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대신, 나와 맞는 다른 사람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다시 친해질 기회가 생기면 그때 다시 시도해 보는 게 서로 간에 좋겠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억지로 어설프게 관계를 맺으려고 하거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 들다가, 되려 말실수로 원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4.
세상에 아무 쓸데없이
지나가는 고민은 없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누군가를 상담하다가 생긴 티끌 같이 작은 고민, [관계의 정답은 없는가]라는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사람은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니까 정답이 없다고 얘기했고, 저는 각자만의 답이 있을 뿐이지 관계는 분명히 정답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떠올린 것이죠. 모든 장님이 똑같은 코끼리를 만지지만 어떤 사람은 뱀같이 얇고 길다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통나무같이 굵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인간의 뇌는 생각하고 신경 쓰는 걸 상당히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덜 신경 쓰고 살까를 고민한다고 하네요. 매사에 정석적으로 살면 피곤하고 귀찮으니까 휴리스틱을 사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휴리스틱이란 통밥을 굴린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데요. 그래서 사람은 배신을 당해야만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관계 맺는 일을 놓고, 무슨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하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관계 맺는 일에 별로 관심 두지 않고 사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고민의 시작은 관계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죠. 나중에 맞게 될 위기의 상황을 놓고, 보험을 든다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자기가 만들어왔던 인간관계에 대한 원칙을 한번 점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부터 제가 앞서 다루었던 저만의 원칙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칙 0. 인간관계에 대해 세우는 모든 원칙은 나만의 원칙에 불과하니,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원칙 1. 인간관계에 쏟는 비중을 조절할 수는 있어도, 인간관계에 쏟는 에너지 총량을 늘릴 순 없다.
원칙 2. 최소한의 농도를 못 채운 인간 관계는 숫자와 상관없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의미 없다.
원칙 3. 최소한의 농도를 채우고, 에너지 총량을 감안했다는 가정 하에 인간관계는 다다익선이다.
_ 멋준오빠, 스스로 만들어 본 인간관계의 원칙
관계에 정답이 있는가라는 사소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저만의 원칙을 나름 정리해 보고 나니, 세상에 아무 쓸데없이 지나가는 고민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사소한 고민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도 하고요. 사소한 걸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사소한 고민을 계속해 봅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거든요. 지금 이 순간, 남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계속 내놓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