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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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미를 잃어버리고 난 후, 한동안 방황 아닌 방황하면서 보냈다. 왜 요즘 나는 뭘 해도 재미가 없을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문득, 나만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먹은 건 나이 뿐이었는데,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니 재미가 없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나는 내 주변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상황이 나에게 안정감을 뺏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불안의 원인을 계속 파고들다가 [자아 통제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삶의 활력의 정체는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보장된 성공도 아닌 [통제감]으로 귀결되었다. 불혹 전후를 지나며, 남은 일생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추구하기보다 의미있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내 삶에서 얼마나 높은 비율로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살았던 시간일테니까. 불혹 이후로의 삶은 부록같은 게 아닐까. 본편보다 재밌는 부록의 삶을 살아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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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생긴 고민
재미가 없는 삶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화두는 바로 [재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 요즘 삶이 별로 재미없네요. 삶의 활력을 약간 상실한 것 같은데, 문득 과연 이게 나만의 문제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재미있으신가요?
일단 어떻게 살아야 재미있는 것일까요?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므로 명확하게 재미를 정의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람마다 느끼는 자극은 다르겠지만, 자극이 새롭고 신선한 방향으로, 점점 강해지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게 순리인 듯한데요.
그렇다면 저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 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일까요? 우선, 저는 시각 효과에 예민한데요. 드라마/영화 감상도 좋아하지만, 기존 미디어를 재해석해서 2차 가공한 개그/예능 프로그램을 특히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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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유의미한 인간관계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면,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확인해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로 다시 보고 싶어야 유의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2차 가공한 개그/예능 프로그램이 원래 콘텐츠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재미를 스스로 입력하는 방식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재미를 출력하는 방식을 다뤄보겠습니다. 저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생각보다 복잡한 선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게 여간 쉽지 않은데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웃기는 과정을 통해 재미를 찾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작위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웃길만한 특별한 재주는 없습니다. 그런 재주가 있다고 한들 스스로 별로 의미를 느끼지도 못하기도 하고요. 좀 더 와닿게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소개를 마친 20명 규모의 구성원들을 웃겨서
존재감을 인정받을 때, 저는 활력을 얻고 재미를 느낍니다.
문제는 COVID-19 이후, 또래 친구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신나게 수다를 떨어야 활력을 얻는 사람인 제게 비대면 환경은 쥐약이죠. COVID-19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나 여기저기에서 생겨난 오프라인 모임을 참여하니, 이제야 우울한 마음이 조금 가시는 것 같습니다.
2.
세대가 차이나는 건
틀림이 아니라 다름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저는 공통분모를 가진 집단이 주는 [연대감]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 듯합니다. 세대 차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10살 이상 차이 나는 동생들과 대화할 때 언뜻 드러나는 세대 차이를 느낄 때마다 살짝 당혹스러움을 접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를 상대방은 모른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더란 말이죠.
혹자는 MZ세대, 정확하게 말해서 Z세대(1996년~2010년대생)에게 연대감이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었다거나, 위아래 선후배 간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말한다든지, 집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는 얘기인데요. 글쎄요, Z세대들끼리는 모여서 알아서 잘 놀던데 말이죠.
Z세대에게 연대감 자체가 없다는 말보다는 Z세대가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가 기존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아서 기존 형식의 연대 형태를 이룰 수 없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집단 안에서 연대가 이뤄지려면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죠.
주로 한 세대의 구분을 30년으로 잡고, 크게 변화가 없는 한 전반부 15년 후반부 15년 정도로 나눠서 생각하면 얼추 세대 구분이 잘 맞아떨어지는 듯합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경향을 보여줄 뿐, 칼같이 구분할 수 없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일본 강점기 세대(1936년~1949년생)는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이후 피폐해진 경제를 살아왔습니다. 제 할머니 세대이시기도 한데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리적인 생존이었습니다. 할머니 댁에 찾아가면, 늘 밥 먹었는지 물어보고, 먹여서 죽일 것 같은 수준으로 많은 음식을 손자, 손녀들에게 대접해 주셨죠. 생존의 가치가 몸에 인이 박여서 그러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자녀에게 먹이는 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네요. 반대로 생각하면 자녀와 손주들을 먹이지 못하면 자신의 가치는 무의미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이비붐 세대(1950년생~1965년생)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당한 고통을 자녀들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특히, 자녀가 많다 보니 모두 다 교육받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로 집안을 이끌어갈 [장남]에게 밀어주는 식으로 교육받았죠. 교육받지 못한 한이 몸에 배긴 세대가 됩니다. 그 한을 자녀에게 투영하여 자녀의 대학 진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자녀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1980년생~1995년생)가 되었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일까요.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대학 입학에서 끝나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사실 대학 입학 이후에도 의미 있는 삶이 충분히 많을 텐데 말입니다.
X세대(1966년생~1979년생)는 말 그대로 신세대를 대표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세대인 일본 강점기 세대가 강조하는 물리적 생존 위주의 가치관을 부정하면서 등장하였죠.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기존 세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X세대는 Z세대의 부모 세대이기도 한데요. X세대의 자녀답게 Z세대를 보고 있노라면, 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는 확실히 기존 세대가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는 뉘앙스가 짙습니다.
지금까지 길게 세대 구분을 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왔는데요. 왠지 밀레니얼 세대로 살았기 때문에 부모 세대가 추구하던 자녀 교육이라는 가치에 휘말려 나만의 삶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더란 말이죠. 그렇다고 평생 부모 탓만 할 수 없으니, 뒤늦게나마 나만의 삶을 찾으려고 주변을 살펴보았는데요. 어느새 모두 결혼해서 육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삶이 재미없음을 느낄 새도 없죠. 어쩌면 삶이 재미없다는 걸 지금 시기에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나름대로 유의미한 경험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잃어버린 통제감 때문
MZ세대는 왜 퇴사율이 높을까를 다룬 영상에서 나름 Z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Z세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더 이상 물리적 [생존]만이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인 알파 세대(2011년 이후 출생) 못지않게 Z세대는 자기 주도성이 강한데요.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선택권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취업 시장에서도 [통제감]과 [시간 선택권]이 있고 없고가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죠.
회사에서 무언가 여러 가지를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오래 한다는 거예요.
_ 윤덕환, MZ세대가 퇴사하는 진짜 이유 中
비단 위 얘기가 Z세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당연히 다른 세대에게도 저런 조건이 주어져 있다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통제권]과 [시간 선택권]보다 더 우위에 있던 가치, 가족의 생존, 자녀의 성공 등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세대들은 [통제감]이라는 가치들을 포기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기존 세대가 추구하던 가치는 그 우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물리적 생존, 자녀의 교육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죠. 자신에게 통제권을 줬냐가 Z세대에게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Z세대의 발칙한 등장이 참 반갑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죠. 기존 가치를 부정하던 X세대가 추구했던 개인주의의 삶이 자녀 세대인 Z세대를 통해 업그레이드되어 발현되는 듯합니다. 자기 통제권의 유무가 유의미한 삶의 가치가 된 세대의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고요. 재미를 느꼈던 순간을 돌아보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을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제가 삶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자기 통제감을 느낄 수 있게 존재감을 드러낼 [또래 집단]의 부재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리적 생존, 사회적 성공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고요. 자아 통제감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향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처럼 다가옵니다. COVID-19가 어느 정도 사그라지면서 삶에 활력을 주던 요소가 속속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력 요소 역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을는지도 모르죠. 언제 다시 비대면 시대가 다가올지 모르고, [또래 집단]의 부재는 언제나 다시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이 항상 찾아오길 기도하거나, 특정 활력 요소에 의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재미를 만들어내는 요소를 다변화하는 게 필요하겠죠.
4.
불혹 이후로의 삶은
부록같은 게 아닐까
나이 40에 가까워가면서 찾아오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다들 서른은 처음이고, 마흔도 어색할 텐데요.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산 것일까? 라는 질문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의 삶에 눈이 돌아갑니다. 내 또래의 다른 사람처럼 저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여기에서 과연 또래의 기준은 얼마까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그 숫자가 꽤 중요하더란 말이죠.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생각해보면, 한 살 차이가 엄청나게 컸었습니다. 한 학년 위 선배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큰일 치렀죠. 심지어 5세 이전에는 한 달 단위로 삶을 구분하기까지 합니다. 대학에 가니 재수/삼수생도 친구가 되고, 서른을 넘으니까 3년 정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문득 나이가 들면서 나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차이를 용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말해주는 수치인 것 같습니다. 보편적으로 자기 나이의 10%까지는 차이를 용인하는 것 같은데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5세 이전에는 한 달이 구분 기준이 되고, 10대 때는 한 살 차이, 20대 때는 두 살 차이, 30대 때는 세 살 차이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불혹이 된다는 건 위아래 4살 차이까지는 또래 집단으로 용인할 수 있는 관록이 생긴다는 게 아닐까요.
나이를 먹는 것은 결국 용인할 수 있는 나이가 조금씩 늘어간다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일종의 말장난이 떠올랐습니다. 문득 [불혹] 이후의 삶은 [부록]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불혹 이전까지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 살았다면, 이제 충분히 경험한 게 아닐까 싶은 것이죠. 이제 남은 인생은 [재미]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죠. 그러다가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 의미를 못 느끼고 있다면, 역시 부재의 상태에 놓여야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죽음]을 맞닥뜨리지 않으면,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게 인간이니까요.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난 고명환 씨의 영상은 다시금 삶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교통사고로 죽음이 코앞에 놓여 있었을 때, 고명환 씨는 [유일하게 순수하게 나를 위해 살았던 시간]이 계속 눈앞에 펼쳐졌었다고 하는데요. 정말 이 문장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았을 때, 이것저것 재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 살았던 시간이 곧 나의 삶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결국 제대로 산다는 건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삶의 전반전을 오롯이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면서 재밌게 살았다면, 이제 후반전은 의미에 집중하며 부록처럼 내게 추가로 주어진 삶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나이에 걸맞게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면서, 내 삶에서 얼마나 높은 비율로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살았던 시간이 존재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혹을 앞두고 다소 불안함과 무료함을 느꼈던 지난 시간을 정리해 봅니다. 본편보다 재미있는 부록 같은 삶, 추가로 주어진 감사한 삶,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의 비율을 늘려가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삶의 재미, 의미 등을 생각하게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