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민, 유목민, 둘다 아닌 경계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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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이어족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중에 노마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목민의 삶에 조금 관심이 가게 되었는데, 유목민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는 역사책을 만났다. 역사란 본디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 [정주민]의 삶에 익숙한 내가 [유목민]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고, 잘못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목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내가 배웠던 정주민의 역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 역시 자신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에 불과했을 뿐인데, 내가 배운 역사관과 가치관으로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규정지었던 것은 아닐까. 정주민과 유목민의 삶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 동북부 오랑캐의 삶을 통해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행정적으로는 정주민이면서 군사적으로는 유목민의 삶을 살았다. 복합적인 경계인으로 살면서 늘 패권을 잡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생존방식을 통해 때로는 천하를 제패하기도 했던 모습을 보게 된다. 유목민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안에 [불로소득]을 원하는 본능을 인정할 수 있었고, 스스로 정주민으로 안주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원래 변화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작은 법. 정주민으로 살아가면서 삶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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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꾸로 생각하면서
역사를 재정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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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랑캐의 역사]라는 책을 소개받아 읽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책의 수준이 높아서 시간 날 때마다 한 단원씩 읽고 있는데, 다 읽고 나서 후기를 쓰려고 계속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다 읽게 되어 뒤늦게나마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언뜻 배웠던 세계사는 왕사 중심으로 살짝 배우고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중국 역사는 왕조 이름만 모아서 이렇게 외우기도 했죠. 하-은-주-춘추-전국-진-한-위진남북조/오호십육국-수-당-오대십국-송-원-명-청-중.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역사는 한족과 오랑캐 사이의 상호 침략이 벌어지면서 왕조를 만들어왔는데요. 때로는 통일 왕조를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진 상태에서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오랑캐는 언제나 중국 역사의 조연에 불과했었는데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죠. 정주민은 문자를 쓸 줄 알았고, 그렇게 정주민이 기록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주민 중심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책은 [오랑캐]가 중심이 되고, [한족]이 조연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이 책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꽤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과거 오랑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오랑캐]는 다른 민족을 미개하다고 생각하여 얕잡아보는 사고에서 시작된 혐오단어입니다. 북몽골 삼림지대에 살던 [우량카이족]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실제 이 단어는 나와 선을 긋고 싶은 다른 사람에게 씁니다. 즉,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귀찮을 때, 일반적으로 오랑캐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즉,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오랑캐라고 인식하진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2.
오랑캐를 보면서
다름을 생각하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습니다만, 중국은 특히 자기 나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위치에 맞춰서 각각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오랑캐 이름을 붙였죠. 오랑캐에 이름을 붙인 것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중국 역사 속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동이족] 오랑캐로 불렸죠.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이족의 원조가 한반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원래 중국의 중심부는 [중원]이라고 불렸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황하와 양쯔강 사이 지역 중에서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지역을 의미하는데요.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농경 중심 문화가 확대됨에 따라 중원을 기준으로 동쪽과 남쪽 지역이 모두 중국의 중심부 지역이 되었습니다.
동쪽과 남쪽은 상대적으로 기후가 농사에 적합했고, 북쪽은 추운 기후, 서쪽은 사막 지역이었기 때문에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중심부는 동쪽과 남쪽으로 확장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고, 동쪽과 남쪽 오랑캐는 모두 중국의 구성원으로 흡수됩니다.
동쪽과 남쪽 오랑캐가 흡수되었다고 해서 [오랑캐]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바다 너머 존재하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동쪽의 오랑캐가 되었고, 동남아시아 지역은 남쪽의 오랑캐가 되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니, 제가 중국인이라면 저렇게 생각할 법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계속 중심부와 오랑캐를 구분 지으면서 국가 내부의 결속력을 기르려고 시도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위와 같은 연유로 바다에 인접한 동쪽과 남쪽 지역이 중국 본토로 편입됨에 따라 중국에서 가장 침략을 두려워했던 지역은 북쪽 오랑캐와 서쪽 오랑캐가 됩니다. 중국 입장에서 북쪽 오랑캐와 서쪽 오랑캐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데요. 굳이 구분 짓자면, 북쪽 오랑캐는 북쪽 오랑캐 뒤에 아무런 세력이 없었다면, 서쪽 오랑캐는 그 뒤에 인도/페르시아/유럽 문명권이 연결되었다는 게 차이입니다. 어쨌든 북부와 서부 오랑캐는 민족의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쪽과 서쪽 오랑캐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장성을 짓게 되는데요. 진시황 대에 이르러 기존 장성을 이어 붙여 만리장성을 축조하게 되죠. 즉, 중국인 입장에서 만리장성은 나쁜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은 것입니다. 중국인 입장에서 오랑캐는 침략자 집단, 잘못된 집단, 틀린 집단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만리장성은 정주민의 생존을 위해 나쁜 유목민과 구분 짓는 역할을 했죠.
하지만 정주민은 옳고, 유목민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사는 게 과연 맞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타인을 오랑캐로 인식하는 모습이 있진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나만의 만리장성을 축조해서 다른 사람을 배제하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스스로 돌아보게 된 것이죠. 단순히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었는데, 다름을 넘어서 틀림이라 규정했던 과거의 나를 돌이켜 봅니다.
3.
모두가 똑같은
선택하진 않아
우리 역시 대부분 정주민으로 살았던 시간이 익숙하기에 정주민의 길은 익숙하고, 유목민의 길은 어색한데요. 그런데 실제 저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가장 살기 원하는 삶은 [불로소득]의 삶이 아니던가요?
[불로소득]을 꿈꾸는 게 살짝 양심에 찔리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한때 유행했던 문장이었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라는 문구는 어떤가요? 이것조차 불편하다면, 수입에 신경 쓰지 않고 [자아실현]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가요? 조금 간사한 마음이 들긴 합니다만, 만일 돈벌이만 충분하다면,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나 싶습니다. 행복해지려는 본능은 [불로소득]을 꿈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는지요.
비슷하게도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조금 하고 성적은 높게 받고 싶은 게 사람 심리잖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은 삶의 태도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능이라는 것은 [기준/상황/환경/규정]에 따라 옳고 그름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유목민의 삶이 어색하긴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시대만 잘 타고났다면, 유목민의 삶이 가장 본능에 충실한 삶, 자연스러운 모습일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중국 사람들은 유목민의 삶을 포기하고, 정주민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우선 정주민의 삶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고, 자신이 일한 만큼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농경 사회는 초기에 투자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을 극복하고 자리 잡기만 하면, 노동 투자 대비 잉여 식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둘씩 농경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된 것이죠.
그런데 모든 유목민이 정주민이 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유목민의 삶을 추구하는 존재들이 있었죠. 서북부의 돌궐족/토번족/위구르족/흉노족/몽골족이 대표적인 예시죠. 어쩌면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대신 자유롭게 사는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동북부의 선비족/거란족/여진족은 조금 다른 양상을 갖고 있습니다. 기후와 지역의 영향으로 농업과 목축업 둘 다 할 수 있었거든요. 동북부의 오랑캐는 정체성이 하나로 기울어지지 않았는데요. 행정은 정주민처럼, 국방은 유목민처럼 이중체제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북부의 오랑캐는 유목민과 정주민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서로 전쟁을 일으키다가 사라지기도 했고, 때로는 중국 본토를 차지하여 수/당나라를 세워 지배하기도 했죠.
4.
세상에서 나쁜
유목민은 없다
유목민은 자연에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채집/수렵] 단계에서 생존했는데요. 잉여생산물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된 것이 바로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목축]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목축]을 위해 양/염소 등 가축에게 풀을 먹여야 하는데, 유목민은 따로 풀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양/염소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늘 이사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이동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이죠.
일을 덜 하고, 많은 소득을 얻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럽게 [수탈]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유목민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정주민들을 침략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정주민 관점에서 유목민은 나쁜 사람으로 규정될 수 있겠네요. 기껏 농사를 짓고 고생해서 얻은 소유물을 뺏기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킬 것이 많은 정주민은 방어적인 입장이 되고, 유목민은 점점 공격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죠.
하지만 정주민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겠죠. 토지 개념이 중요했던 정주민은 국가로 발전했지만, 수탈을 위한 전쟁에만 모든 힘을 집중했던 유목민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부족 상태에만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온통 모든 국력을 전쟁 준비에만 쏟는다면, 강력한 힘을 가질 순 있겠지만 늘 불안함 속에 살아야만 할 테니까요.
이러한 과정에서 정주민과 유목민은 상호 견제하고,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면서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송나라는 돈으로 평화를 샀던 국가인데요. 이때 유목민은 정주민을 지키는 용병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주민의 국가에 위기가 생기면, 칼을 거꾸로 정주민에 겨누어 침략하기도 했고요.
돈으로 평화를 사기로 선택한 송나라의 선택은 과연 굴욕적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국가의 힘이 상대적으로 금나라나 원나라에 비해 약했지만, 송나라 때 중국의 문화는 매우 빛을 발했었으니 말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습니다만, 송나라가 국력 신장에만 집중했더라면, 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빛을 발했겠죠. 결국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5.
정주민과 유목민의
경계에서 생각하다
제가 유목민의 관점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다른 사람을 오랑캐로 인식하려는 경향을 조심하자는 생각뿐만 아니라 스스로 어떤 정체성에 놓여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딱 잘라 정주민과 유목민 중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지 선택하기 어렵다면, 저는 정주민과 유목민 속성이 각각 몇 퍼센트씩 섞여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주민의 정체성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특정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하는 것을 봐서는 현대의 [월급쟁이], 과거의 [소작농]이나 [노비]의 삶이 정주민의 정체성에 가까울지도요.
반대로 유목민의 정체성은 특정 지역에 정착하거나 안정적인 소득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본능에 따라 불로소득의 욕구를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일 겁니다. 대표적으로 [사장], [디지털 노마드], [투자자], [파이어족] 등의 삶이 그러하겠죠.
최근 몇 달간 스스로 돌아보건대, 저의 정체성은 정주민 70, 유목민 30 정도로 추정됩니다. 월급이라는 마약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는 게 참 많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었거든요. 그렇다고 계속 월급만 받으면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내 안에 있는 불로소득을 탐하는 본능을 인정하게 되었죠.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정주민과 유목민의 경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셋 중 하나의 선택지에서 살아가고 있겠죠. 본능에 집중하며 살았던 [유목민], 본능을 억누르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정주민], 특성이 적당히 섞여 있는 동북부 오랑캐처럼 [경계인] 중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가요?
자신의 정체성과 맞게 사는 사람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정체성에 따라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오랑캐의 역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그리고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