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자는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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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야인시대가 나온 지 어느새 20년이 지났다. 통상적으로 드라마/영화는 그 영향력이 방영 혹은 상영 기간 기준 1년을 넘기 어렵다. 그런데 드라마 야인시대는 그 생명력이 너무나도 끈질기다. 20년이 넘게 팬들에게 사랑받는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등장인물인 공산당 심영이 자기 고환에 총알을 맞아 고자가 되는 슬픈 장면이 이 끈질긴 인기의 시초가 된다. 해당 연기를 했던 연기자는 드라마의 단역에 불과했지만, 야인시대 패러디물 세계관에서만큼은 주인공 대우를 받는다. 그의 대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그에 발맞춰 다른 캐릭터들이 발굴되는 등 야인시대 드라마가 20년 넘게 인기를 끌게 되는 핵심 원인을 제공한다. 드라마 야인시대 방영 20주년 기념 및 김두한 사망 50주기 카페에 다녀왔다. 팬심이 진심이 되면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이와 별개로 팝업 스토어가 위축된 소비 심리를 어떻게 회복시키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스토리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 보게 된다. 정말 필요한 소비에는 두 번 세 번 고민하여 구매하지만, 아무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제품에는 쉽게 손이 가는 게 소비자의 마음이니, 알다가도 모르는 게 바로 소비자의 마음이 아닐까. 문득, 하나의 콘텐츠에 20년간 집착하는 사람이 창의적일까, 팝업 스토어처럼 뭐든 쉽게 질리는 사람이 창의적일까 의문이 든다. 어쩌면 둘 다 정답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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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팬심으로 만들어 낸
야인시대 팝업 카페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2002년에 방영하여 인기몰이했던 드라마 [야인시대], 야인시대는 주인공의 사망을 알리는 위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됩니다. 어느새 드라마가 종영한 지 20년이 지났고, 배우 김영철 씨가 주인공을 맡았던 실제 인물, 김두한 씨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드라마는 20년 전에 끝났지만, 드라마에 등장했던 사람들과 소재는 온라인 세계에서 계속 살아남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19일부터 11월 21일까지 3일 동안 홍대 인근 카페에서 야인시대 드라마 20주년, 김두한 사망 50주기를 기념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렸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만든 팝업 스토어로 생각되는데요. 일반 카페에 드라마 야인시대를 기념하는 사진과 영상을 꾸며서 비치하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어지간한 드라마 팬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시도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였네요.
저는 11월 20일 일요일 오후 6시경 방문했는데요. 야인시대의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카페의 대부분 좌석을 채웠고, 카페 곳곳은 드라마 야인시대 소품과 사진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나 볼 법한 복장을 하기도 했고요. 코스프레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한 모양인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인쇄하여 장식한 게 보통 정성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일단 제가 본 것만 해도 100장은 족히 넘는 사진이 공간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재미로 시작한 이벤트를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할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심영의 고자라니, 김두한의 사딸라 등 야인시대 합성물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내용을 다루는 각종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패러디 영상에 자주 사용되는 소품이었던 스피커도 누군가 비슷한 모델을 대여해주셔서 전시하고 있었죠. 골동품으로 보이는 이 스피커는 실제로 작동되기까지 하는데요. 이 스피커는 드라마 야인시대 합성물에서만큼은 세계관 최강자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이벤트는 드라마 야인시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드라마 야인시대 패러디물을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온라인에서 유행하던 [밈]이 단순히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나와 실제로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특정 기간 문을 여는 임시 매장을 [팝업 스토어]라고 합니다. 팝업 스토어에서는 소비자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제품에 스토리를 입혀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풀어줘서 판매 촉진이 일어나게 만들어 줍니다. 저 역시도 집에서 먼 거리임에도 가볍게 방문해서 음료를 주문했으니까 말입니다.
기존에 있던 카페에 일부 장식을 덧댄 방식이라 전문 팝업스토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혹은 패러디물의 팬심이 만들어낸 수준으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정성이 놀라웠습니다. 카페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야인시대의 드라마 BGM으로 이뤄졌고, TV에서는 야인시대 패러디 동영상이 연속적으로 재생되었는데요. 음료를 주문한 방문객은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흘러나오는 동영상을 보면서 피식대거나 함께 방문한 사람과 장식을 보면서 농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개그맨 이진호 씨가 야인시대의 엄청난 팬인데요. 2021년 해당 드라마 캐릭터가 현대에서도 살아있다는 이세계물인 야인이즈백을 방영했습니다. 김두한의 사딸라 수준만큼 열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20년이나 지난 프로그램인데도 해당 드라마가 가진 인기에 힘입어 출연진 일부는 남성잡지 맥심 2021년 8월호에 소개되기도 했죠.
커뮤니티를 보니, 다녀온 사람의 후기가 꽤 많더군요. 이번 시도는 드라마의 팬에게는 향수를 패러디 영상 팬에게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패러디 콘텐츠 하나로 온라인에 머물던 사람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어 가볍게 방문할 수 있게 만든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저작권 문제와 고인을 희화화한다는 일부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아마 장기적인 사업화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겠지만, 한정으로 제작한 컵홀더가 3일 내내 완판되었다고 하니, 단기간 매출 증가에는 충분히 도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59368699
1.
팝업 스토어가 준 경험
위축된 소비 심리 회복
앞서 살펴본 야인시대 콘셉트를 계속 유지하는 형태의 카페를 아예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요? 저작권 문제 및 희화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한두 번은 재미 삼아 갈 수 있겠습니다만 지속해서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팝업 형태로 잠깐 운영하니, 단기간이나마 충분히 고객의 이목을 끌 수 있겠죠.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팝업만 전문으로 운영하는 상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팝업 스토어의 역사는 꽤 긴 편인데요. 일반적으로 백화점을 오픈할 때 사람들에게 해당 지점에 대해 인식하기 위해 맛집 브랜드를 모아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형태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맛집도 맛집이거니와 방문해서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로 잘 꾸밀 수만 있다면, 소비심리를 쉽게 확장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https://m.khan.co.kr/life/life-general/article/202207020600001
일반적으로 정말 필요해서 돈을 쓰지 않고서야 소비 심리가 위축되기 마련인데, 이처럼 마음이 편안하게 열리면 소비는 따라오는 결과물이 되니까 말입니다. 실제 더 현대 서울의 경우, 핫한 맛집 브랜드를 초대하는 이벤트를 통해 목표매출에 30% 초과 달성했다고 하죠.
https://blog.hanabank.com/1640
팝업 스토어는 한정판 제품 판매, 신제품 홍보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가수 박재범이 기획한 원소주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20,000병을 완판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4,900원이라는 다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던 것이죠. 위 기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팝업 스토어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은 [팬덤]에 있는데요. 얼마나 많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지속적인 매출로 연결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은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형태로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팬의 신뢰를 저버린 일부 인플루언서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만, 인플루언서들이 점차 판매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인플루언서가 홍보하는 형태로 협업하는 모델도 눈에 띄고요. 인플루언서들의 팬들은 기업의 제품을 광고하는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일종의 [숙제]라고 여기면서 받아들이는 추세이기도 하죠.
2.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창의적인 인간의 모습
이제는 웹툰 작가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상업 유튜버 침착맨, 비슷한 동년배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불편함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주로 혼자 방송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대 손님들과 만들어 내는 웃음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죠. 특히 웹툰 작가 출신인 침착맨, 주호민, 김풍 세 사람이 뭉쳐서 수다를 떨면 어지간하면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내곤 해서 웃음의 공식 수준으로 불립니다. 처음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싶은데, 어느 순간 그들에게 빠져드는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죠.
그 예시 중 하나가, 김풍 작가의 새로운 별명, [팝업 유튜버]가 생겼다는 소식인데요. 워낙 아이디어가 많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에서 붙여졌는데요. 실제로 카페를 창업했다가 망했던 스토리를 캐릭터로 만들어 웃음을 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침착맨 채널에서는 채널 자체가 새롭게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침착맨이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하루는 김풍 작가가 와서 일일DJ로 방송을 진행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변화를 보여줍니다.
유튜버 침착맨이 지금까지 혼자 만들고 유지한 브랜드를 토대로 이제는 플랫폼 역할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굳이 자기가 매번 나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죠. 김풍 작가 못지 않게 침착맨 역시 쉽게 질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는데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든 쉽게 질려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창의적인가를 보게 되는데요. 세상사 운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이제 침착맨은 그 운마저도 자기 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얼마나 더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합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지속해서 사업으로 만드는 일은 참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야인시대 카페를 다녀오면서 매주 이런 형태의 팝업 매장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쉽지 않겠다는 우려가 드네요. 저는 역시 사업가 체질은 아닌 모양입니다.
어쩌면 뭐든 쉽게 질리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쉽게 질리는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물건과 콘텐츠를 계속 새롭게 생산해 낼 테니 말입니다. 제가 다녀왔던 야인시대 카페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20년 간 질리지 않게 하나의 콘텐츠를 지속해서 소비했던 사람들 역시 창의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 질문이 드는데요.
뭐든 쉽게 질리는 사람이 창의적인 것일까요? 하나의 콘텐츠를 뇌절이 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창의적인 것일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은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