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명예, 성취는 그저 행복의 불씨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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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예능, 부캐예능, 스케치코미디를 넘어 새로운 코미디 트렌드를 소개하고 싶었다. 이건 나만 재미있나 싶은 마음도 드는데, 확실히 웃겨서 자지러지는 경험을 오랜만에 해보니 소개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고나 할까. 특히 오디오가 겹치던 말던 신경쓰지 않는 모습에서 기존에 없던 파격을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유재석의 핑계고, 침착맨을 위시로 하는 배도라지가 보여주는 수다폭풍은 어쨌든 확실히 재밌다. 나는 왜 이 아재들의 폭풍 수다 속에서 재미를, 행복감을 느꼈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유재석의 영상을 보면서 상호 간 용납하는 모습을, 침착맨의 영상을 보면서 집단 안에 소속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알려진 돈, 명예, 노력, 성취는 행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씨이다. 행복의 본질이자 행복의 비결은 신뢰와 용납의 공동체에 소속된 상태에서 온다. 그래서 다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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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가 막 겹치는
새로운 예능이 온다
이미 여러 차례 글을 썼습니다만, 저는 개그/코미디/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위트/개그/코미디는 누구나 희망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인데요. 삼시세끼 시리즈,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으로 대표되는 [관찰예능],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놀면 뭐하니 등에서 보여줬던 [부캐예능], 유튜브 채널 너덜트, 숏박스, 싱글벙글이 보여주는 감동을 이끌어내는 [스케치코미디]가 최근까지 예능 트렌드였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새로움을 원합니다. 새로움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에서 시작되죠. 언제나 TV쇼는 무대에서 정해진 대로만 연기하는 연기자의 모습만 보여주다가 갑자기 제4의 벽을 깨고, 배우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스태프를 찍는 모습을 보여줬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변화는 당시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리얼을 강조하는 요즘에도 촬영하는 스태프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막은 어떨까요? 무한도전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막은 그저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대부분 삽입하지 않기도 했고요. 지금 어지간한 예능에서 자막은 필수요소가 되었습니다. 자막이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대충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TV 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등장인물이 말하는 모든 대사는 자막으로 제공합니다. 자막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얼마나 시청자가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요.
이러한 TV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등장인물끼리 목소리가 겹치지 않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소위 오디오가 겹치는 것에 유의하는데요. 오디오가 겹치면 자연스럽게 데시벨이 커지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영상미디어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금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이러한 금기를 깨려는 시도가 눈에 띄는데요.
최근 국민 MC 유재석 씨가 유튜브에 진출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개인 채널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소속사인 안테나에서 시작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것이죠. 그의 첫 번째 콘텐츠는 [핑계고]입니다. 이 콘텐츠는 산책이나 식사 등을 핑계 삼아 유재석 씨가 자기 친구들과 자유롭게 수다를 떠는 채널입니다. 유재석 씨는 떠들고 싶은데, 떠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 냈는데요. 유재석 씨에게 호감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고 있는 것만으로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지인과 수다 떠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유재석 씨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 해당 채널의 소개 문구이기도 합니다. 해당 채널의 첫 영상인 [산책은 핑계고] 영상은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 180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평소 국민에게 호감과 인정을 받는 유재석 씨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비슷한 시도는 김종국 씨의 유튜브에서도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8일에 업로드된 추석 기념 영상에서는 무려 920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SBS 예능 런닝맨의 세 남자, 유재석/지석진/김종국 세 명의 토크는 흔하게 보던 모습이었지만, 유튜브에서만 보이는 편안한 모습은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던 듯하네요. 어쩌면 위 영상의 콘셉트가 실마리가 되어 [핑계고] 시리즈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 두 가지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아무런 맥락이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등장인물끼리 서로 오디오가 겹치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깔깔대고 웃다가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볼 수 있죠. 오디오가 겹치는 걸 금기시하는 기존의 틀을 깬 파격을 보여줍니다. 진짜 서로 잘 아는 친근한 사람이라면, 오디오가 막 겹치고 물려도 그게 대수일까 싶은데요. 오히려 리얼함을 강조한다면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트리머로 전직한 전 웹툰 작가 침착맨의 최근 영상입니다. 침착맨과 그의 친구들 배도라지 멤버들이 스트리머 풍월량의 집들이를 간 영상을 일부 편집해서 보여주는데요. 시종일관 시끌벅적 떠들어 댑니다. 영상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치 대학교 MT에 간 것처럼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느낌을 주는데요.
이 영상에서도 오디오가 계속 겹쳐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소음이 오히려 편안함을 주는 듯합니다. 소음의 문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게 자막이 충분히 그 역할을 대체하기 때문이죠. 내용 자체가 웃기고 재밌다기보다는 그냥 시끌벅적한 느낌이 현장의 리얼함을 더하는 효과를 줍니다. 금기를 깨는 시도가 신선함을 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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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용납받는 공동체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다르겠습니다. 혼자 카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행복함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죠. 아날로그적임과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레코드판과 턴테이블을 구매하여 음악을 듣는 걸 취미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주변 환경이 변화를 만들 수 있고, 행복감을 선물해준다고 믿는데요. 특히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거기에서 누리는 용납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다고 생각합니다.
Robert Waldinger는 TED영상에서 무엇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죠. 열심히 일해서 성취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감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연 부/명예/노력이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려면, 실제로 살아봐야,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발생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무엇이 행복을 주는지 배우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Robert Waldinger는 사람들의 10대 시절부터 노년까지 1938년부터 75년 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 연구하는 행복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장기간 연구이다 보니, 연구자가 바뀌기도 했는데요. 그는 네 번째 책임자였습니다. 이제 이 연구자들은 2000명이 넘는 724명의 후손을 연구하기 시작한다고 하니, 얼마나 이 연구에 집념을 보이는지 알 수 있죠.
연구자들이 선택한 집단은 하버드 대학교 2학년 학생들과 보스턴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태어난 소년들의 인생을 비교하는 연구였습니다. 2년에 한 번씩 설문할 때마다 보스턴 출신의 빈민가 소년들은 왜 재미도 없는 자신을 연구하는지 물었다고 하는데요. 설문, 인터뷰, 의료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두 집단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하는 대단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의 결론은 행복은 부, 명예, 노력에 있지 않고,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관계가 주는 세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연결된 것은 유익하고, 고독은 해롭다는 점입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 등 사회적 연결이 친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며,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고립된 사람은 덜 행복하고, 덜 건강하며, 덜 장수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뢰가 높은 공동체 여부가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는 얘기죠.
둘째, 단순히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가, 안정적이고 공인된 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관계의 갈등은 우리 신체에 매우 해롭다고 하는데요. 얼마나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50대에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80대에 가장 건강했다고 하니, 말 다했죠.
셋째, 좋은 관계는 신체뿐만 아니라 뇌까지도 보호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힘들 때 의지가 되어줄 거로 생각하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기억력이 더 선명하고 오래 간다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매사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닙니다.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의지가 되는 사람과 공동체가 있는지죠.
75년간 행복의 비결을 찾기 위해 추적했던 이 연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했다는 얘기를 말하고 있는데요.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죠. 왜냐하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너무 답답하고, 일상적이며, 임팩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근사하지도 않은 이 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입니다.
2.
수다 떨었던 영상은 용납받는
공동체의 필요를 생각할 불씨
행복은 신뢰와 용납의 공동체의 여부가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과거 시끌벅적한 일상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예능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간관계가 좋은 관계로 가득했다면 이런 모습이 유행하지 않았겠죠. 아무래도 갈등 때문에 생겨난 피로, 현대인이라면 늘 달고 사는 편두통을 잠시나마 미룰 수 있는 일시적인 처방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대로 오디오가 겹치는 금기를 깨는 파격은 우리에게 신선함을 줬습니다.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서로 신뢰하고 있는지 느끼게 되는데요. 좋은 관계가 주는 행복감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기존의 관찰 예능에 질린 사람들 입장에서 반작용의 차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상을 통해 신뢰와 용납의 공동체를 지켜보는 것은 행복의 불씨에 불과합니다. 기존의 공동체를 신뢰할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변화하기 쉽지 않다면, 그러한 공동체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습니다. 행복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얘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 순간의 행복과 평생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용납의 공동체를 찾아봅시다. 자기 주변에 없다면, 아예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