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도전하라는데, 전 반대하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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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되었을 때, 새로운 도전은 과연 허용될까? 나는 당연히 새로운 도전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허용된다고 생각하고,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과연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해도 되느냐를 놓고 생각의 궤가 조금 다르다. 이십 대 초반에는 뭐든 다 시도해봐도 곧 회복탄력성이 좋으므로 금방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나이를 먹고 난 후 벌어지는 실패는 감당하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저것 아무 거나 막 시작할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은 기준을 토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얼마나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 실패해도 되는 건수가 2번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망칠 것인가, 아니면 우선순위를 세워놓고 결정할 것인가. 도전은 당신의 몫, 부디 서른이 넘었다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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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른은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나이는 아니다
서른 살이면 뭐든 다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답변해주시는 분이 많은데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합니다. 뭔가 다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분위기인데, 왠지 저 혼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갑분싸스럽게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요. 그래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들어보시는 것도 원글쓴이에게 좋을 것 같으니, 한번 용기 내서 제 생각을 말씀드려봅니다.
저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에 맞춰서 살자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한때는 꿈과 이상의 가치를 열심히 말하던 사람이었지만, 현실의 쓴맛을 여러 번 보다 보니 현타가 자주 찾아오더군요. 게다가 이상적으로 살고 싶다던 스스로의 삶이 정작 스스로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고요. 저 스스로의 삶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설득할 용기와 논리가 잘 생겨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마냥 듣기 좋은 이야기를 던지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제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소위 말해서 저는 상대방에게 와닿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와닿지도 않는 얘기는 해서 뭐하겠습니까. 입만 아프지.
저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상 뭐든 마음껏 시작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나이는 [스무 살]에서 [스물 다섯]까지로 한정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공부라는 큰 장벽이 있기 때문에 뭘 해보더라도 마음껏 해 볼 수가 없죠. 부모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나마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하는 청소년들에게 진짜 20대 초반에는 뭐든 다 해보라고 조언해 줍니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연애]는 20대 초반에 무조건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말해주는 편이죠. 20대 초반에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휴학을 해서라도 반드시 20대 초반에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해 줍니다. 이때는 정말 뭐든 아무런 고민 없이 마음껏 시작해봐도 상관없기 때문이죠.
특히, 하나를 시작해서 끝까지 해보는 경험은 앞으로 살아갈 남아 있는 인생을 사는데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시도했던 결과가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더 좋습니다. 뭐라도 망쳐봤던 경험이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훨씬 도움이 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실패의 경험도 한두 번이지, 실패의 경험이 여러 번 반복되면 무력감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무력감은 다시 일어날 힘을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하죠.
행복은 강력한 정도가 아니라 자주 찾아오는 빈도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게나마 계속 성공을 경험해보는 것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뜻이죠. 계속 실패만 하다 보면 삶에 행복감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뭐든지 시도해 보고, 뭐든 실패해 볼 수 있는 건 최대한 짧아야 하고, 회복탄력성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간을 오롯이 이십 대 초반으로 국한 짓고 싶습니다.
2.
스물 다섯살이 넘었는데도
새로운 시작이 망설여지면
그렇다면 스물 다섯 이후에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달라지길래 마음껏 시도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스물 다섯 이후부터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20대 초반처럼 하나에만 올인하는 형태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이미 앞서 5년 간 충분히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분야를 선택해서 시작해야 잘할 수 있고, 또 어떤 분야와 잘 맞는지 빠르게 판단해볼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장점을 강화하는 형태로 경험을 선택적으로 쌓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시기는 언제일까를 놓고 고민해볼 수 있겠습니다. 금수저 출신 집안이 아니라면, 일반인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서른 이후부터는 많아야 한 번, 아니면 두 번 정도 뭐든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떤 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현실적으로 두 번 밖에 기회가 없는데, 그걸 경험 쌓는다는 차원으로 생각해서 그 기회를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아끼고 또 아꼈다가 필살기로 한 번 딱 써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겠죠.
저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자신의 꿈과 관련된 직업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조언은 너무 뜬구름 잡기 식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저부터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도 했죠. 그래서 삶의 철학을 새롭게 정립한 이후 저는 생각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지금 내가 했던 선택을 돌아보았을 때, 이 선택을 후회할지 후회하지 않을지를 생각해보는 방식을 써 보는 겁니다. 이 방식을 통해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제가 해 왔던 선택을 돌아보고 접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식이 제게 잘 맞아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 방식으로 모든 선택을 돌아보니까, 그동안 저는 시작하면 반드시 끝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삶을 살았더라고요.
뭔가 하나를 하면 반드시 끝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보니, 새롭게 뭔가를 도전하는 일은 제게 부담스러운 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인생철학을 한번 재정립하고 나니, 이제 저는 새로운 도전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끝까지 할지 말지는 나중에 고민하면 되니까요.
서른은 이제 아무 거나 막 시작해도 되는 나이는 아닙니다. 그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나름의 경험을 쌓았을 건데요. 이제는 그 경험을 토대로 어떤 일을 선택하는 게 자신과 잘 맞는지,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가장 밑바탕에 반드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음]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죽음] 앞에서 [미련]이 있을지 없을지만 놓고 중요한 선택을 치릅니다. 이렇게 선택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니까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이 줄어들고, 보다 제가 바라는 방식대로 살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목록을 다 적어놓을 수 있다면 한번 쭉 적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핵심은 내가 적어둔 목록 중 못 해본 것을, 죽을 때 과연 후회할 것인지를 놓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큰 관점에서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먼저 정해놓고, 자신이 생각한 우선순위에 맞춰서 하나둘씩 시도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거나 막 시도하다가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서른이 넘어가는 시기에는 뭔가 하나를 시작할 때 이걸로 끝장을 볼지 말지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입니다. 계속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조금 간 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평생직업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서른이 넘고 나서 어설프게 실패하면, 받게 될 심리적 타격이 상당히 세집니다. 부모님이 재산이 많아서 물려줄 게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어설픈 실패가 주는 특권은 이십 대 초반 청춘들에게 물려주는 게 좋겠습니다. 서른이 넘은 사람들은 실패가 주는 좌절감을 최대한 덜 느끼도록 조율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겪었던 자신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최우선 순위를 찾아내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뭐든 시작해도 괜찮은 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압니다. 충분히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최우선 순위]가 없는 무모한 시도는 필패할 가능성이 크므로 절대 반대한다는 말을 보태고 싶네요.
3.
우선순위가 없다면
도전은 조심스럽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없는 상태라면,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자기 개발서를 통해 우리는 지켜봐 왔습니다. 꿈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말입니다. 목숨을 걸어도 될만한 일은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예 도전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크게 도전할 기회는 대충 2번 정도 남은 것 같으니 잘 써보자는 얘기죠.
돈 많은 부자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실패해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요. 심지어 50이 넘어도, 60이 넘어도 새롭게 도전하면 되고, 도전할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부자들이 실패를 하더라도 계속 도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혁신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서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전 한 번 잘못했다가 망치면, 거의 그대로 빚쟁이가 된 상태로 남은 인생이 훅 사라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뭐든지 해도 된다면서 도전을 부추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은 듣기 편한 얘기, 듣기 좋은 얘기를 해줬을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은 곧이곧대로 들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심지어 간절함만으로 저는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간절하다고 모두가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정말 간절하다면, 자신이 간절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듣는 사람에 상관없이 모두 납득할 수 있어야겠죠.
지금까지 했던 얘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무엇을 시도해서 실패하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자금력]과 [마음가짐]을 갖췄다면, 혹은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경제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이 아니라면, 저는 나이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도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가 가장 좋은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에는 별다른 자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모아서 얼마든지 다른 콘텐츠로 확장이 가능합니다. 글은 그 자체로도 큰 힘을 갖지만, 글이 다른 콘텐츠와 붙으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자랑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alookso에서 글쓰기를 도전하길 추천합니다.
서른... 서른이 넘은 지 한참 됐지만, 이제야 서른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곧 찾아올 마흔은 어떤지, 인생 선배님들께 공손히 묻고 싶네요. 부족한 글을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