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게 된 목적 :
말과 글을 이용해서 사람들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대방과 의사소통하는데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평소 소통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최근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소통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깨달았는데, 이제는 글로 한번쯤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이 내용은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쓰는 지도 포함되어 있어서 [작문] 카테고리로 넣어야 할지, [소통] 카테고리로 넣어야 할지, [행복] 카테고리로 넣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작문, 소통, 행복을 셋다 아우를 수 있는 주제는 행복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이번에는 [행복] 카테고리로 넣기로 했다. 소통이 원활하면, 아무래도 불행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소통에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속담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다. 과연 천냥 빚만 갚을까. 소통이 원활하면, 비용 뿐만 아니라 에너지도 아끼는 법이다. 원활하게 소통이 잘만 되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반대로 소통이 안 되면,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 소통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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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말 한마디에 천냥 빚만 갚을쏘냐
0.
정의와 목적과 방법
순서로 개요를 짜다
자기소개서, 이력서, 보고서, 이메일, 논문 등 살면서 신경을 많이 쓰면서 글을 써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개요를 써야 하는데요. 개요를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만, 저는 [What]-[Why]-[How] 순서에 따라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씁니다. 이 방법은 특정 소재를 정해 놓고, 집중하여 고민해서 글을 쓸 때 매우 유용합니다.
먼저, 문제 상황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문제를 정의했다면, 그다음은 왜 그 문제 상황이 발생했는지 [이유]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정의]와 [목적]을 합쳐서 하나로 쓰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강연인 사이먼 시넥의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법]에서 언급한 [Why-How-What의 골든 서클]과 유사합니다. 이 사람은 Why를 가장 먼저 생각하지만, 저는 좀 더 명확한 What을 먼저 생각하는 게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인데요. 사실,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이미 Why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제시하는 방식이나 사이먼 시넥이 말하는 방식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강연은 2009년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당시 엄청나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영상입니다. 혹시 해당 강연을 아직 못 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보시길 반드시 추천드립니다. 해당 강연이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별도로 책도 나와 있기도 하니, 그의 책 [Start with WHY]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1.
소통은 오해를 줄이려
최대한 노력하는 행동
최근 저는 소통이라는 소재를 놓고 깊게 고민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대로 한번 소통이라는 소재를 놓고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소통이란 무엇일까?
소통은 왜 해야 할까?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까?
_ 멋준오빠, [What-Why-How 기법] 소개 中
소통, 영어로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어원을 분석해 보면, com은 함께, mun은 나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통은 혼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호 간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전달]이란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달할 수 없으니, 매개체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텔레파시라도 쓰지 않는 한, 매개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도가 상대방에게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소통이란 자신의 생각을 [글/그림/소리/영상]을 매개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같은 [말/행동]을 [반복강조]하기도 하고, 술을 통해 [취중진담]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짧게 말하고 쓰면 오해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생각을 길게 [풀어쓰기] 방식을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오해의 여지가 줄어들죠.
말과 글이 짧고 긴 것은 가치중립적입니다. 대상/상황에 따라 어려운 글을 쉽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으면 길어지는 법이고, 그냥 짧게 써도 충분하면 축약해서 말하기도 하죠. 한 마디만 해도 알아듣는 사람과 상황이 있는 반면, 백 마디 말을 해도 듣는 척도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소통은 참 어렵다고 생각해요.
2.
소통이 원활하면
에너지를 아낀다
두 번째 질문, 소통은 왜 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소통은 상당히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말과 글을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오히려 심각한 상황에 접어들게 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황을 모면하는 게 좋을 때도 있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정공법으로 사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는 반면, 때로는 고집을 내려놓아야 좋을 때도 있죠. 소통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상황과 타이밍에 따른 적절한 선택이 있을 뿐이죠.
이토록 어렵기 만한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요. 저는 비용을 절약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만나는 약속을 할 때, 평소 오랜 친분을 통해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관계라면, 다음과 같이 말해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할 겁니다.
오늘 [저녁]에, 늘 보던 [거기]에서 만나자.
그런데, 별로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가는 상당히 오해를 살 수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몇 시에 누구랑 만나는 지를 놓고 다시 물어봐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의사를 전달하는 게 그나마 오해를 덜 줄이는 방식이 되겠죠.
하지만 점차 관계가 깊어질수록 위와 같이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때가 오면,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으니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관계가 충분히 쌓이기 전까지는 오히려 길게 말해주고 정확하게 짚어줘야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비용이든 에너지든 아끼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3.
소통의 핵심 뼈대
동사와 명사 중심
세 번째 질문,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소통은 [글/그림/소리/영상]을 매개로 전달하는 과정이라고 앞서 정의 내린 바 있죠. 그렇다면 소통의 가장 근본인 [말]과 [글]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저는 어렸을 때, 글을 읽는 게 참 어려웠던 학생이었는데요. 그중 영어로 된 글을 읽는 게 취약하다 못해 쥐약이었습니다.
많은 영어 선생님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읽을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언어적 감각을 [타고나야] 가능하다는 얘기, 계속 노력을 [하다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대부분이었죠. 그런 조언들이야 당시의 제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들을만한 조언이 있다면 글을 읽을 때, 뼈대를 잡아서 읽으라는 얘기였는데요. 글을 읽을 때, 문법적으로 분석해서 [주어]와 [서술어]를 찾아내서 읽으라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이 얘기도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나 맞는 조언이었어서 당시의 제겐 이 조언조차도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이 조언이 의미 있을 때가 됐고, 이제는 예전보다는 술술 잘 읽을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독해력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로라한다는 작가들도 생각보다 글을 잘 못 쓰더라고요. 그래서 작가가 글을 잘 쓸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스스로 부족한 독해력에 대한 자괴감도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늘 좋은 글을 만나려 애쓰고, 좋은 글을 만나면 그 글을 통해 배우려는 마음으로 읽곤 합니다.
4.
감칠맛 살려줄
형용사와 부사
[주어]와 [서술어] 중심으로 글의 뼈대를 찾아서 읽으라는 말을 품사 문법 기준으로 다시 설명해보면,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글을 파악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명사]와 [동사]는 문장의 핵심 품사이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줄이려면, [명사]와 [동사]로 전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전달하는 대상과 별로 안 친하면, 최대한 격식을 차려서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말하는 게 안전합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만/잘/좀] 같이 한 글자 [부사]를 자주 쓰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 세 가지 부사가 한 문장에 사용되면, 다음과 같은 예문을 만들 수 있는데요. [을]의 입장에서 부탁을 받는 상황에서는 저 말을 듣는 상상만 해도 참 아찔합니다.
미안한데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이것[만] [잘] [좀] 해줘!
_ 직장상사, 퇴근 5분 전 무리한 과제를 주면서 하는 말 中
[형용사]와 [부사]는 각각 [명사]와 [동사/형용사/부사]를 꾸며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겠죠.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장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글이나 말을 짧게 쓰려고 한다면,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5.
명사와 동사를 쓰다가
형용사와 부사 위주로
그런데 말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겠지만, 매사에 이렇게 살면 참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논문, 보고서 같이 중요한 글을 [잘] 써야 한다면, 평소에 쓰는 글과 달리 [맞춤법/교정/검토/크로스체크] 등 많은 수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alookso나 블로그에 쓰는 글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써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alookso에서 글을 쓸 때, [형용사]와 [부사]가 좀 과도해서 글이 길어져도 굳이 고치지 않고 그대로 씁니다. 그게 또 저만의 글쓰기 부캐를 드러내는 모습일 테니까요. 글 쓰는 재미가 붙는다는 건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저는 저만의 [글투/말투/글맛/말맛]을 살리면서 글을 쓰고 싶은데요. 그게 바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통을 시작할 때는 [명사/동사] 중심으로 명확하고 격식을 차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형용사/부사] 중심으로 편안하게 소통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게 좋고 나쁜지 따질 순 없겠지만, 다음 두 가지 상황만큼은 충분히 오해를 살만하다는 건 명확합니다. 굳이 둘 중에 어떤 게 더 문제가 있는지 선택해야 한다면, [전자]가 [후자]보다 더 이상한 거겠죠?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반말]로 [형용사/부사] 중심으로 말하기
충분히 친해졌음에도 [격식]을 갖춰 [명사/동사] 중심으로 말하기
_ 멋준오빠, 오해를 살만한 소통의 예시 中
6.
진실된 말 한마디에
천냥 빚만 갚을쏘냐
소통을 놓고 가장 유명한 속담이 있다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겠죠. 소통이 비용을 아낀다는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소통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일이 많았는데요. 어쩌면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진심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사에 진검 승부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 방식이 공감을 원했던 누군가에게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명사]와 [동사]라는 확실한 [해결] 중심으로 소통해야 할 때가 있는 반면, [형용사]와 [부사] 중심의 따스한 [공감] 중심으로 소통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얼마든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문제 [해결]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형용사]와 [부사] 중심으로 하게 될 [공감]하는 소통이 어렵습니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겠죠.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방식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주변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면, 잠시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는 걸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뭐라도 한다고 해서, 뭔가 시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시간을 잠시 가지면서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는 게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짚어낼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구조를 온전히 이해한다면, 스스로 얼마든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용기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소통이 잘 되려면 논리와 공감 비율이 7:3 정도일 때가 아닐까
7.
개인이 절대 공동체를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
논리적인 [뼈대]와 감성적인 [공감]이 적절한 비율로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 탄생하는 법입니다. [좋은 글]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데요. 누군가가 쓴 글을 보고 [좋은 글]이라고 느끼는 건 [좋은 글]이 가진 [뼈대]와 [공감]의 비율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글]에 대한 비율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글 역시 대중이 생각하는 [뼈대]와 [공감]의 비율을 기가 막히게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통이 어려운 까닭은 다음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논리의 기반이 되어줄 [진리]
틀릴 가능성을 인정할 [용기]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여유]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재치]
_ 멋준오빠, 소통이 어려운 까닭을 한번 모아본다면 中
한 사람이 [논리]와 [용기]와 [여유]와 [재치]를 모두 갖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저 네 가지 중에서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개인보다 조직이 위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직이 위대한 까닭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속성을 다른 사람을 통해 서로 보고 배우면서, 때로는 서로 빌려서 흉내를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