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저 더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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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 상륙한 이후, MBTI가 온라인 상에서 급격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MBTI는 이미 고등학교 때 처음 배웠고, 에니어그램은 대학생 때 익혔던 터라 사람을 패턴화 해서 이해하는 게 몸에 배어있을 정도로 익숙한 편이다. 이렇게 뒤늦게 사람들이 MBTI에 관심을 갖고, 해당 개념이 유행하는 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번 MBTI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관점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이제야 적어보게 된다. MBTI, 에니어그램을 위시한 성격검사는 사람을 [구분]하고, [유형/패턴]화해서 [경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 검사 결과로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하는 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 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문제 상황을 놓고, 누군가를 다 알 순 없지만 더 알 순 있다는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을 좀 더 확장해서 스펙트럼 이론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해보고 싶었다. 더 나아가 무리수 √2를 계산하는 과정을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노력으로 보이길 바랐다. 이 글을 통해 인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납]과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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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즐겁지만은 않은 아이
언제 배웠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납니다만, [무리수]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제가 받았어야 할 공교육 교육과정 상 중학교 3학년 때 배웠어야 했을 텐데, 모두들 알다시피 교육 과정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일절 없는 대한민국 사교육에 선행학습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제도가 있죠. 사실 언제 배웠는지가 뭐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대상을 마주할 때 받게 되는 충격과 공포가 중요하겠지요.
요즘은 공교육도 많이 발전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있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살아가는 지역에 따라 좀 다를 수 있겠죠.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될 당사자인 아이들 입장에서는 뭐가 되었든 자신의 학습 능력을 뛰어넘는 걸 배우는 건 꽤나 스트레스가 될 거라고 봅니다.
논란이 될 것 같아서 미리 엄밀하게 말해보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호기심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으니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싫지 만은 않을 겁니다. 문제는 그걸로 시험을 보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겠죠. 시험 결과에 따라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이 받는 대우가 달라지는 걸 경험하다 보면 공부라는 게 하기 싫어지는 건 인지상정일 테니 말입니다. 일단 저부터가 그랬던 아이였거든요.
잠깐 얘기하다 보니, 교육 과정에 대한 한탄이 떠오르는 바람에 딴 얘기가 길어졌네요. 원래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었죠? (슥, 위를 올려다보고 오고 나서) 맞아요. 원래 [무리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이번 문단은 아무래도 왠지 망한 것 같으니, 그냥 다음 문단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2.
자연에서 발견한 자연수
필요해서 발명해낸 실수
태어나서 손가락을 보면서 10진법의 자연수를 익힙니다. 인간은 이걸 자연스럽다고 규정해서 1, 2, 3, ... 의 숫자들을 자연수라고 부르죠. 만일 우리의 손가락이 10개가 아니라 8개였으면 8과 9는 만나보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10진법조차도 인간의 발명이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그 논의는 넘어가도록 하죠.
어느 날 문득 인간은 자연스럽지 않은 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1만큼 이익을 준 것과 1만큼 손해를 준 것이 과연 같은 개념인가를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과정에서 [음수]라는 개념이 새롭게 생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수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아무리 봐도 전혀 자연스럽지 않죠. 여기에 [0]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음, 뻔히 다 아는 얘기 하니까 좀 지루하시죠? 그냥 바로 진도 빼겠습니다. 여차 저차 해서 [실수(Real Number)]까지 수의 개념이 급격히 확장됩니다. (이봐, 작가 양반. 아무리 지루해도 이렇게까지 진도를 빨리 빼라는 건 아니었다구!) 우리가 알고 있는 수직선과 실수는 1:1 대응이 된다고 알려져 있죠. 이러한 개념 설명을 대략적으로 해주면서, 수학 시간에 처음으로 무리수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무리수는 π(파이, pi)이지만, 이건 그냥 근삿값 개념을 가져와서 3.14 랑 비슷하다고 처리합니다. 왜냐하면 중학교까지 배우는 교육과정만으로는 왜 π의 근삿값이 3.14와 비슷해지는지 설명하기가 좀 어렵거든요. 고등학교 때 배우는 극한과 적분까지 가져와야 하니까 말입니다.
음, 이번 문단도 무리수 π에 대해 설명하다가 분량을 다 썼네요.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원래 이게 아니었는데 아쉽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문단에서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할 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주시고 천천히 따라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3.
무리수의 값을
추정하는 방법
자, 앞의 두 문단의 글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오랜만에 재미없는 수학 얘기를 보고 있노라니, 혹시 머리가 살짝 아프지 않으셨나요? 어쩌면 이 문단은 읽지도 않으신 채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고등학생의 1/3 정도가 스스로 수포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요. 그 고등학생들이 커서 된 게 우리일 테니, 수학의 [수]만 얘기해도 경기를 일으킬 사람들이 은근 꽤 있다는 반증이겠죠.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부담 없이 읽어보시라고 앞에서부터 살살 꼬드기면서 이번 앞 두 문단을 구성해 본 것입니다. 이제 한 문단만 더 버텨주시면 재미없는 수학 얘기는 이번 글에서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무리수 π 다음으로 접하게 되는 무리수는 √2(루트 2, 제곱근 2)입니다. 제곱해서 4가 되는 수는 2인데,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수입니다. 무리수 π와는 달리, 무리수 √2의 값을 추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일일이 숫자들을 제곱해 보면서 계속 결과를 좁혀나가면 되거든요.
(1.4)² = 1.96, (1.5)² = 2.25 니까,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1.4와 1.5 사이에 있게 됩니다. (1.41)² = 1.9881, (1.42)² = 2.0164 니까,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1.41과 1.42 사이에 있게 되겠죠. 이런 방식으로 무한히 계속 √2의 값을 추정합니다.
이런 걸 배우는 이유는 산업 현장에서는 근삿값을 계산하는 게 필요한 곳이 많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A4용지는 가로와 세로 길이의 비율이 √2인데요. √2의 근삿값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A4용지라는 표현은 존재할 수도 없었겠죠.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거 몰라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 없습니다.
√2의 값은 1.414213562373095 ... 로 계산되고, 무한하게 전개되는 소수 표현에서는 특정 패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리수는 [순환하지 않는 순환소수]라고도 분류됩니다. 이 문단에서는 √2는 특정 패턴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 하나만 딱 기억하고 다음 문단으로 천천히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성격검사가 유행하고
부작용을 생각해보다
저는 MBTI나 에니어그램을 이미 20년 전에 배웠습니다. 이제는 척하면 척하는 수준으로 성격검사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고나 할까요. MBTI가 최근 엄청 인기를 끌어서 대중화된 것 자체가 매우 생소합니다.
저는 MBTI의 대유행은 코로나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분석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비대면으로밖에 못 만나게 되면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어려워지자 자구책으로 튀어나온 게 MBTI 유형검사라고 보는 것이죠.
덕분에 MBTI 강사 자격증을 갖고 계신 분들은 MBTI의 급격한 대유행으로 기업체, 공공기관 등을 비롯한 수많은 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MBTI 강사 자격증 좀 따 놓을 걸 그랬습니다.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서 자격증을 따 놔야 한다는 우리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뒀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MBTI나 에니어그램 같은 성격검사를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씀을 일전에 드린 바 있습니다. 이런 성격검사는 사람을 특정 유형으로 나누어서 판단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조심히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죠.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봐도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데, 그깟 단순한 유형 몇 가지로 명확하게 분류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앞에서 무리수 √2의 근삿값을 구할 때, 우리는 어떤 방식을 사용했나요? 예상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숫자를 제곱하면서 무리수의 값을 추정해 나갔습니다. 무모하긴 하지만 확실한 이 방법을 쓰지 않고, 무리수 √2의 근삿값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유형과 패턴만을 이용해서 인간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성격 검사를 활용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더 알고 싶어서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5.
잘못한 소년은 소년원
잘못한 대학생 대학원
저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유형을 구분하고, 구분된 행동유형을 분석해서 나름 가설을 세워보고 검증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한 유형을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제가 상담할 팔자인가 싶을 정도로 주변 친구/선후배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고, 저 스스로도 다양한 조언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패턴화 된 조언들이 많아져서 스스로 이론으로 정립한 이야기들이 꽤 많습니다.
제가 이런 걸 학문으로 접근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걸 혹시 상담심리학이나 임상심리학 같은 분야에서 배우려나요? 문득,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지만,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따라서 이런 걸 함부로 좋아한다는 말은 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어쨌든 저 나름대로 세운 가설을 토대로 논리 70에 감정 30을 섞어서 조언해주곤 하는데요. 제 얘기가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제가 세운 가설은 많이 틀립니다. 그러면 저는 왜 틀리는지 되묻는 방식을 통해 제 이론을 재점검하고 보완합니다. 마치 √2의 근삿값을 하나하나 계산하면서 추정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MBTI와 에니어그램 같은 성격검사를 놓고 누군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사람을 유형으로 나눠서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게 되는 부작용을 통합한 관점으로 설명해보고 싶습니다. 인간을 바라볼 때 [연속 스펙트럼] 형태로 이해해보자는 방식을 제안해보려고 하는데요.
이미지에서 보이는 색깔 스펙트럼 중 한 지점을 찍었을 때, 그게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경향 정도는 얘기할 수 있겠죠? 하지만 같은 빨강 계열의 색이라고 해도 지점이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색이잖아요. 즉, 색깔을 이해할 때, 비슷한 빨간색이더라도 분명히 다른 색이지만, 경향으로 보면 비슷하다는 개념을 가져와서 이해해 보자는 얘기입니다.
인간을 바라볼 때, [유형/패턴/경향]은 말 그대로 참고만 합시다. 80억 명이 있으면 80억 개의 생각이 존재하고,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따라서 우리 모두는 무한한 색깔로 표현되는 연속 스펙트럼 위에 한 점으로 존재하는 겁니다.
6.
틀릴 가능성을 고려할 용기
상대를 최대한 이해할 노력
앞에서 설명했던 무리수를 이용해서 표현하자면, 크게 보면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2 인 빨간색 사람도 있고, [√2+0.1]인 파란색 사람도 있으며, [√2+0.01]인 초록색 사람도 있는 데다, [√2+0.001]인 보라색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된 유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경향] 정도로 구분될 수는 있을 겁니다. 위에 쓰여 있는 숫자들 √2와 가까우니까 √2의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즉, 경향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건 가능합니다만, 자신의 예상이 무조건 맞을 거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교만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을 이해할 때는 자신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예상이 무조건 맞다는 생각이 발전되면, 자신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쉽게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개념이 최근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가스라이팅]인 것이죠. 이런 가스라이팅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을 판단할 때 경향과 유형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해두면 좋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100% 온전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걸 짚어내야 합니다. 이렇게 뭔가 비율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애매할 때 따라가면 좋은 마성의 비율인 [칠대삼 공식]에 따라 생각해 보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최소한 70%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남아 있는 30%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나 성격검사 같은 걸 통해 [경향/유형/패턴]을 이해하고 도움받아야겠죠.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날로그적인 사람을 디지털화해서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그 노력이 자칫 겉핥기 식으로 비칠 때가 많아서 오해를 받곤 하는데요. 그렇지만, √2의 근삿값을 측정하기 위해 1.4라고 생각하고, 다음번에는 1.41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다음에는 1.414가 좀 더 가까운 값임을 알게 되며, 한번 더 만나면 1.4142가 더 가까운 값이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그래서 무리수인 사람을 어떻게든 유리수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과연 이런 노력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이렇게 계속 유리수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그냥 온전히 무리수로 받아들이는 게 더 낫겠다는 시점이 오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퀀텀점프를 시도합니다. 무리수를 뒤늦게 무리수라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바로 [용납]이자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과거에 들였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노력의 과정은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때 사용하게 될 [경험]이자 [논리]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