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러려고 배운 수학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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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거듭제곱,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우는 비둘기 집의 원리를 [정치]를 설명하는데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느 날 문득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3의 거듭제곱 숫자 배열], [스타트업의 규모 이야기], [천하삼분지계의 탄생] 등의 소재가 머릿속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뭔가 재미있는 분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학으로 설명하는 정치를 한번 만들어서 글로 옮겨보았다. 이런 아이디어가 늘 떠오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연재할 자신은 없지만,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한 [수학]과 [사회]를 꾸준히 연결시켜보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 수학이야말로 세상을 설명하는 단순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게 존재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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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름 똑똑한 사람인데
도대체 왜 저러는걸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는 소재가 있습니다. [정치], [종교], [군대], 여기에 최근엔 [젠더]에 장애인 [차별] 이슈까지 보태졌는데요. 요즘은 점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예전보다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입을 잘못 열었다가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라서 말이죠. 그래서 안전한 공론장을 표방하는 alookso 플랫폼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alookso에 썼던 글을 다른 플랫폼에 옮겨 놓았다가 한번 호되게 악플을 맞았던 경험이 있기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소재는 왜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각자 갖고 있는 [신념]끼리의 대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게 되는 상황에서 개인이 주장하는 정의(Justice)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죠. 참 쉽지 않은 소재입니다.
저는 정치에 완전 문외한이었던 사람입니다. 응애응애 하고 태어날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사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죠. 그런데 저는 국회의원들이 TV에서 소리 질러가면서 싸우는 걸 볼 때마다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싸우는 사람들, 부패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계속 보다 보니 그게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는 선거 자격이 주어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선거를 안 하다가 뒤늦게 시민의 권리를 포기했다는 제 실수를 깨닫고 그때부터 투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정치를 놓고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많이 생겼어요.
우리나라 정치인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습니다. 다들 멀쩡하게 생겨서, 대부분 이름 있는 대학 나왔고, 그래도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니 똑똑한 사람들일 텐데 왜 저 모양인 걸까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역지사지로 생각했을 때, 만일 제가 저 사람들의 상황이었다면 크게 달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만일 국회의원이었고, 정치인이었다면 기존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대동소이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렇게 똑똑했던 정치인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왜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걸까를 한번 짚어보고 싶습니다. 일단 처음부터 바로 여의도 정치 얘기를 할 생각이 없으므로 저는 일상의 정치 영역에서부터 한번 차곡차곡 쌓아 올려보겠습니다.
2.
원래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는 정치인
정치의 정만 생각해도 사실 소름이 돋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일상에도 이미 정치가 녹아 있습니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함께 노는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 [따돌림]을 시키기도 하죠. [파벌]을 만들어서 회사 조직을 장악한다는 얘기를 한번 신문 기사에서 들어본 적도 있으실 겁니다.
방금 말했던 단어들, [끼리끼리], [따돌림], [파벌] 모두 대놓고 정치적인 용어들인 셈이죠. 정치는 어려우니 내심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손사래를 칠 게 아니라 이미 자신도 정치의 세계에 몸 담고 있는 정치인인 걸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저 우리가 여의도 정치인이 아닐 뿐이죠. 멋준 양반!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내가 정치인이었다니!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정치인이었던 것일까요? 정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존재가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2명이 모이면 둘 중의 강한 한 명이 약한 한 명을 찍어 누를 수밖에 없으므로 정치가 성립할 수 없죠. 하지만 아무리 한 명이 강하더라도 다른 두 명이 연맹을 맺어버리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삼국지의 천재 책사 제갈공명이 자신을 삼고초려하여 찾아온 유비에게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인 천하삼분지계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죠.
예능 [런닝맨]을 봐도 정말 숱하게 볼 수 있는 예시입니다. 해당 예능에서 세계관 최강자인 김종국이 아무리 스스로 강하더라도 유재석과 다른 캐릭터가 힘을 합치면 그의 등에 붙어있는 이름표는 어느새 순삭되어 뜯겨 버리기 때문이죠. 따라서 최소한 3명의 존재가 있을 때부터 비로소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씀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이미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가족 구성원인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 모여도 정치가 이미 시작된 겁니다. 부모만 고려할 문제가 아니죠. 부모님이 없는 날엔 형제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니, 형제라도 있는 집안이라면 매일의 삶이 치열한 경쟁의 연속입니다.
사실 이미 정자/난자 수준일 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리한 정자가 된 게 우리니까 그때부터 이미 우리는 엄청난 정치/경쟁/음모/술책 등을 통해 승리한 경험을 갖고 태어났었는지도 모릅니다.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이미 정치인입니다.
3.
팽팽한 안정을
상징하는 숫자
저는 [숫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일상에서의 정치 얘기를 생각하면서도 유독 숫자 3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전도서 4:12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뭇가지 하나는 가볍게 꺾이지만, 나뭇가지가 세 개만 되어도 모아 놓고 한번 부러뜨리려고 하면 쉽지 않죠. 물론 반례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3이라는 숫자는 팽팽한 안정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성격이 너무 안 맞는 3명을 모아두었다고 해볼게요. 처음에는 성격이 안 맞으니 서로 싸우겠지만, 이내 정치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마치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처럼, 지금 내가 어설프게 싸우다가 영혼까지 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겠죠. 그러다 보면 셋은 서로 성격이 너무 안 맞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서로 싫어하지만 이기기 위해 포섭하려고 애쓰는 광경, 정말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어색한 장면을 정치인을 통해 너무 자주 보지 않았던가요? 이와 같이 정치란 서로 싸워서 승리하기 위해, 어색하지만 적과도 악수를 해야 하는 겁니다. 저도 일상에서 늘 정치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요. 정치인들은 이런 정치를 직업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습니까. 그러니 정치인이 조금 얄밉긴 해도 너무 미워하진 말아야겠습니다.
3명이 4명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의 세 명은 어떻게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영입 경쟁을 펼치게 될 겁니다. 둘씩 둘씩 나눠져서 힘의 균형을 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숫자가 늘어다가 최대 9명이 될 때까지는 서로 성격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3명씩 3개의 그룹으로 무리 지으면 또다시 팽팽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4.
나는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인 사람인데
저는 성격검사로 알려진 MBTI와 에니어그램을 이용해서 인간관계를 맺는데 도움을 많이 얻는 편인데요. 내가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이해하고, 상대방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이해하면 예상보다 충돌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도 터득하기도 하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이론적으로 정리해둬서 나쁠 건 없죠.
MBTI는 총 네 가지의 상황을 각각 2개씩으로 나누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2⁴ = 16 가지로 사람의 성격을 나눠서 이해합니다. 저는 MBTI를 보면서 이분법적 접근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E 성향을 가진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I 성향을 가진 내향적인 사람도 있지만,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E도 아니고, I도 아닌 상태까지 고려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다면, 3⁴ = 81가지로 사람을 구분했겠지만 말이에요.
에니어그램은 사람을 나눌 때 에너지의 근원이 [머리/가슴/장] 중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의 상황에서 에너지의 균형이 안으로 들어오는지, 균형을 이루는지, 밖으로 나가는지 총 세 가지로 구분하여 3² = 9 가지로 사람을 나눠서 이해합니다. MBTI에서 한번 설명한 것처럼 이렇게 세 가지씩 나눠서 접근하는 방식이 저는 좀 더 안정적이고 최대한 많은 경우를 포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딱딱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저 경향을 놓고 구분할 뿐이겠죠. 그런데 사람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집단으로 본다고 하면 이렇게 경향을 나눠서 이해하는 건 꽤 많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회사를 경영하거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MBTI나 에니어그램을 적극 활용하여 인력 구성을 생각하거나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하는 게 바로 여기에서 옵니다. 어쨌든 사장님은 인력을 활용해서 이익만 내면 그만이고,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만 얻으면 그만이니까요.
5.
비둘기 집의 원리를
정치에서 볼 줄이야
학교, 학원, 종교, 동아리, 기업, 정치 모두 사람의 관계를 다루는 건 전부 똑같습니다만, 그래도 좀 더 와닿는 예시를 위해 기업 얘기로,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을 예시로 들어보려고 합니다. 기업 얘기로 잘 상상이 안 되는 분들은 출석하시는 교회/성당/사찰을 생각하시거나, 자주 방문하는 동아리/동호회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은 작은 정당, 큰 정당의 차이를 놓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이도 저도 다 귀찮으면 그냥 alookso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왜 학교가 이 예시에 해당되지 않느냐면, 구성원의 숫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학교는 일반적으로 학생의 숫자에 맞춰서 나누잖아요. 그러니까 3명만 있는 반, 60명이 있는 반이 한 학교에 존재하지 않죠. 그래서 규모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유형을 관찰하기에 적절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우리는 3이 안정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생각했는데요. 3² = 9 까지는 서로 다른 존재가 최대한 파벌 없이 운영이 가능한 숫자라고 했었죠. 이런 내용을 조금 뒷받침해 주는 에 이론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함부로 칼로 딱 잘라서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냥 경향을 살펴본다는 의미만 생각해서 9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이때 10명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간에 어렴풋이 봤던 [비둘기 집의 원리]를 기억하시나요. 10명을 9개의 유형으로 나눠 넣으면, 하나의 유형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이것이 바로 [비둘기 집의 원리]를 사용한 것이고, 이 [비둘기 집의 원리]를 정치에서 만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마는.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서 회식을 한다던지,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서로 취향이 비슷한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있어야 알아볼 수 있겠죠.
이러한 이유로 인원이 계속 증가할수록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소위 말하는 깐부를 맺게 되면서 끼리끼리 문화는 점점 강화되겠죠. 이렇게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이 3명씩 뭉치는 경우를 고려한다면 최대 3³ = 27명에 도달했을 때, 조직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안정을 이루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27명을 넘는 28명이 되는 순간, 마찬가지로 또다시 [비둘기 집의 원리]에 따라 9개의 유형으로 나눴을 때, 한 유형에 4명이 존재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겠죠. 이제부터 파벌과 텃세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이 될 겁니다. 기존의 안정적인 모델이 깨지게 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 권력자에게 줄을 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에 텃세를 부리게 되겠죠.
6.
거듭제곱으로 설명한
일상에서의 정치구조
지금까지 앞에서 다룬 얘기를 들어보면 어떠신가요? 숫자를 가지고 말장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실 것 같습니다. 약간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주변에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를 키워나갈 때 주의해야 할 숫자가 있다고 해요.
이게 주장하는 사람마다 정확한 숫자는 다 다른데요. 보통 10명, 30명, 100명, 200명 단위로 규모를 키워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숫자만 따지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비단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겠죠. 종교, 동호회 등 각종 모임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이런 숫자 규모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성장 단계별 인력 계획 수립 전략이라는 약간 딱딱한 형태의 문서를 소개합니다. 이 문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기업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읽으면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기에서도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3~30명, 50~100명, 130~200명, 250~400명 등 숫자를 언급하고 있죠. 해당 인원을 지나갈 때쯤 회사가 스스로 변신하지 못하면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단순히 드러나는 현상만 보고, 숫자를 고민하기보다는 왜 저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지를 고민해보고 싶은데요. 이게 바로 지금까지 얘기했던 이야기입니다. 안정을 상징하는 3을 거듭제곱한 숫자를 놓고 생각해보고 싶은데요. 3, 9, 27, 81, 243, ... 어떻습니까? 조직 규모를 따지고 보았을 때 앞 문서에서 언급한 숫자와 비교해봤을 때, 얼추 위험한 지점과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계속 유입되는 구조를 생각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숫자 배열이 3의 거듭제곱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반대로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규모를 계속 늘려나가는 경우, 힘의 균형을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게 될 테니 갈등이 조금 늦게 찾아오게 될 뿐이겠죠. 일반적으로는 제가 말씀드렸던 가장 이상적인 경우와 정반대 케이스 중간에 놓이게 될 테니, 3~30명처럼 크게 범위로 설정해서 분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7.
언제쯤 토론을 스포츠로
수용할 가능성이 생길까
지금까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분 모두가 원래부터 정치하고 있었고, 이미 정치하고 있는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설득력을 갖췄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차피 정치할 수밖에 없다면,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손자병법에도 나오듯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만 한다면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겠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토론하는 문화가 마치 스포츠처럼 잘 정착되는 게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토론할 때는 진짜 치열하게 의견을 얘기하다가도, 토론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악수하고 상한 감정을 서로 치유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온라인 상에서 과연 이런 공간이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소위 온라인 게임에서 캐삭빵이라는 단어가 있죠. 캐릭터 삭제를 걸고 싸움을 벌이는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캐삭빵이 자주 일어나는 온라인 공간이 있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많이 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캐삭빵 정도까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안전한 토론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안 제시 없이 문제 제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이네요.
명확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각자 만의 방식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2021년을 핫하게 다뤘던 키워드 중 하나였던 [멈춰] 프로젝트를 한번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이 [멈춰]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웃음을 제조해 내곤 했는데요. 프로파일러이자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표창원 전 의원이 [멈춰] 프로젝트를 놓고 얘기한 영상이 있어서 일부 발췌해서 공유해 봅니다.
표창원 : 멈춰!의 원조는 노르웨이입니다...(중략)... 다만 그냥 그 모양만 한다고 해서 실제 본질이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건 아니죠.
강유미 : 노르웨이에서는 그러면 실제로 멈춰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었나요?
표창원 : 네, 그럼요. 2년 사이 학교폭력이 50%나 감소했죠.
이종혁 : 하다 보니 익숙해졌나?
표창원 : 멈춰! 만 한 게 아니니까 그렇죠. 아이들은 이미 눈높이에 맞게 방관자 효과에 대한 교육을 받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어떻게 위계가 생기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어떻게 조종, 착취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소수라는 걸 알게 돼요.
_ 표창원, 학생들에게조차 웃음거리가 된 한국의 “멈춰!”와 다른 해외의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 中 발췌
8.
어른이 되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분들은 어느 순간 어린이를 벗고 어른이 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거쳐 깎이고 깎여 어른이라는 무거운 한 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를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구분해보고 싶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멈추라는 욕망을 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빵을 집어먹다가 홀라당 입천장을 데었던 기억이 있네요.
저도 아직도 개구쟁이 같은 구석이 남아있는 [어른]이라 완전하게 어른이 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어른]이라면 [기다림]을 배웠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멈추라고 할 때 한번 더 고민해보고, 멈출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저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싸움에는 언제나 마지막에 선생님이 나서서 억지로 손잡게 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상상됩니다. 이게 비단 어린이들만의 문제는 아닌 게,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인 야구 선수 조인성과 심수창 선수가 한바탕 크게 싸우고 나서 화해한 척한 사진을 보십시오. 저 사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두 사람이 화해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자르겠다고 극대노를 했었다고 하죠. 그러니까 어른들의 싸움도 말리려면 어른들의 선생님이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어른의 싸움은 심판이 없죠. 심판이 없는 싸움터에서 모두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멈추는 게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른이 되는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다 보니, 과연 어른이 되는 교육이 존재할까 싶기도 해요.
앞서 소개한 영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서열 구조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면 참 좋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이런 유의미한 교육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오리라 믿으며, 머릿속에 들었던 고민과 생각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