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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으로 목적을 정당화해도 되나

지도자라면 답답한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 바로가기 : https://alook.so/posts/q1t2nj


- 글을 쓰게 된 목적 :


지하철 플랫폼 전체에 사람이 꽉 찬 풍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무리 출근길에 사람이 미어터진다지만, 플랫폼을 넘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에 사람이 쭉 서 있었을 정도이니, 이건 무슨 심각한 사망 사고가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내가 지각하는 건 둘째 치고,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장애인 단체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요구하느라 벌인 시위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게 오늘만 있었던 게 아니라 몇 개월간 꾸준히 벌여온 듯한데, 나는 오늘에서야 이 사태를 처음으로 맞닿뜨리게 되었다. 이 사태를 보면서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분노'와 당사자들이 겪을 답답함에 대한 '연민'이 동시에 들었다. 하루빨리 해결책을 찾아나가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구체적으로 사건을 소개하는 글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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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으로 목적을 정당화해도 되나


출퇴근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일반적으로 집을 회사 근처로 잡는데 반해, 저는 회사를 가고 나서 보니 집 근처였던 행운아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평소 걸어서 출퇴근하는데요. 어젯밤에 급히 고향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오늘 새벽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 역에 도착했습니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려는 순간, 지하철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지하철 플랫폼 안에 사람이 꽉 차 있는 것은 둘째 치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까지 사람이 꽉 차 있었는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출퇴근해본 적이 없어서 원래 출퇴근할 때 이런 수준까지 막히는 건가 생각했는데요.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렸으면 좀 더 명약관화했을 텐데, 저도 급한 마음에 9호선이라도 타고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 후, 버스라도 타야겠다 싶어서 이동하다 보니 사진을 찍진 못했네요.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 지하철에 문제가 생겨서 지연된 수준으로 상당히 심각해 보였습니다. 일단 이동하면서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았는데, 3호선만 검색해도 바로 기사가 나타나더군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라고 하는 단체가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이동권 시위를 벌여 출근길 열차 운행을 지연시켰다고 합니다. 해당 단체의 페이스북을 찾아가서 어떤 식으로 시위를 벌이는지 봤더니, 휠체어를 타고 출근길 지하철에 탑승하여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요. 이 부분까지는 충분히 자신들이 가진 생각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휠체어가 지하철에 들어오면 그 공간만큼 사람들이 덜 탑승하게 되어 불편하겠지만, 그 정도는 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휠체어를 승하차 플랫폼에 고정시키면서 계속 시간을 지연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승하차 플랫폼 사이 간격은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도 자칫 발을 잘못 헛디디면 다칠 수도 있는데요. 휠체어를 승하차 플랫폼에 알박기해서 문이 닫히지 않게 함으로써 해당 지하철이 출발하지 못하게 되고, 해당 지하철이 출발하지 못하니 사고를 막기 위해 3호선 전체가 마비가 일어나게 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지하철에서 하차한 다음 다시 지하철에 탑승하여 똑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합니다.


일단 기사와 영상을 통해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해보았을 때 들었던 감정은 '분노'였는데요. 아무리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혀가면서까지 전달하는 게 과연 정당한 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쁜 출퇴근길에 장애인이 휠체어를 이용해서 탑승하는 것, 일반인 입장에서 그들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에 불편하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인 저도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반인과 장애인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승하차 플랫폼 특정 구간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바퀴가 빠질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다소 위험한 방식으로 시위하면서 지하철 하나를 못 움직이도록 막는 행위, 그렇게 10분간 지하철 전체를 마비시키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형태로 시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정당하다면, 이 방법은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이든 이런 방식으로 시위해도 된다고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요? 광화문에 가면 볼 수 있는 1인 시위자들도 힘들게 혼자 서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하철을 마비시키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도 되는 거 아닐까요?


한동안 감정을 가라앉힌 후 들었던 다른 감정은 '연민'이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까지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벌인 일이겠지요.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일단 지하철 플랫폼에서 휠체어로 이동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꽉 찬 출근길 지하철에 장애인 분이 탑승하려면 공간이 많지 않아서 탑승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대표적인 환승역인 교대역을 기준으로 장애인이 일반인에 비해 환승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이야기하는 기사가 있어서 소개해 봅니다.


교대역의 경우는 장애인 승객이 교통약자를 위해 설치된 승강기를 이용해 한 번에 환승하는 것이 불가능해 교통약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략)

교대역의 경우는 승강기에서 내리면 휠체어가 내려갈 수 없는 보통 층계의 절반 수준에 준하여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경사로 또한 없어서 휠체어를 탄 승객의 환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략)

통상적으로 지하철 도착시간 어플에서 알려주는 환승시간은 2분 내외다.

(중략)

이렇게 이동한 후 소요시간을 확인했더니 약 8분 정도가 소요되어 일반적인 환승 소요시간보다 약 3-4배 가까이 차이 나는 것으로 확인했다.

 

휠체어를 타고 환승하는데 일반인에 비해 4배나 걸리며, 그것도 역무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장애인을 배려한 형태의 시설 확충은 확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일을 계기로 장애인의 지하철 승하차 및 환승 관련 인권을 생각해 보게 된 셈인데, 생각보다 대안을 만들기 쉽지 않군요.


1) 지하철 환승 간에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환승 엘리베이터를 필수적으로 설치한다.

2) 지하철 전체에서 양쪽 끝을 장애인 전용 칸으로 만들어서 장애인 분들만 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일단 급하게 생각해본 결과로는 이런 형태의 대안이 생각나는데요. 1)은 나름 대안이 될 수 있겠으나, 2)는 역차별로 다가올 수 있으니, 마땅한 대안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한번 같이 고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대안을 고민하는 것과 별개로 지금과 같은 폭력적인 방식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당했던 고통, 너도 한번 당해봐!' 같은 방식은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분노만 낳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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