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프르의 부엌 Chow kit Market

by Mori


한국에 오는 건데? 거기가 그렇게 좋냐?”


일 년 있다가 곧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저 버리고 사 년째 쿠알라룸프르(KL)에 눌러앉아 살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은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가자면서 고만 돌아오라고 꼬신다.

내가 한국에 안 돌아가는 이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의 여러 가지 부담스럽고, 불편함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는데, 그런데 어쩌면 두리안을 못 먹어서 일수도 있겠다 싶다.


두리안

5월이 되면 두리안을 실컷 먹어야지 하고 일 년을 버텼는데 이 놈의 코비드 때문에 사정이 예년 같지 않지만 곧 두리안 뷔페에라도 찾아갈 참이다.

그래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과일을 만나러 이곳에 왔을 수도 있겠다.

작년까지 난 두리안과 망고스틴 등 열대과일을 사러 곧잘 동네 인근에 있는 Chow Kit마켓에 갔었다.


“준, 주말에 뭐했어?

“응 나 쵸우킷 마켓에 갔었어.”

“왜 거기 갔어? 혼자 갔어?”

“너 혼자 가기 위험한데, 뭐 샀는데?”

“응 두리안 사러”

이런 대화를 나누면 동료들은 어김없이 너 진짜 두리안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거긴 혼자 가면 절대 안 되니까 꼭 낮에 가고 친구랑 같이 가라며 니가 원하면 주말에 같이 가주겠다고 덧붙인다.


Chow kit Market은 KL의 Pudu Market과 더불어 KL의 가장 큰 재래 상설시장이다. 1950년대에 시작된 이 시장의 이름은 말레이시아 근대 초기 주석광산으로 큰돈을 번 Loke Chow Kit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위치는 KL의 테헤란로 격인 Jalan Raja Laut와 Jalan Tuanku Abdul Rahman 사이에 있고 큰 블록 하나가 다 시장인 꽤 규모가 큰 시장이다. 몇 해 전부터 말레이시아도 인근 나라인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왔고 노동력이 필요한 시장수요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쵸우킷 시장 근처에 이들의 집단거주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동료 선생님들은 내가 거기 갔다고 하면 위험하다는 잔소리를 심심치 않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호기심 많고 신기한 거 좋아하는 나는 이 시장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아 주말에 별일 없으면 식료품 구매를 핑계 삼아 현지 친구들과 이곳 방문하기를 즐겼다.


쵸우킷 시장은 과일은 물론이고 생선과 고기, 향신료 등 없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KL의 부엌이다.

부임 첫해에는 선생님들이 하도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덕에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인 이 시장에 가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를 못 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케이엘 모노레일을 타고 가다가(모노레일에서 이 시장이 내려다보인다) 시장 입구 노점에 두리안이 쌓여있는 걸 보고 뭐에 홀린 듯 Chow Kit 역에서 내려 두리안을 샀더랬다.


Ini Berapa Ringit?”(이니 브라파 링깃) 이거 얼마예요?

Ikg 28” (사뚜케이지 두아블라스라빤) 일킬로에 이십팔 링깃

saya mahu membeli ini”(사야 마후 믄벌리 이니) 이거 사고 싶은데요?

tolong potong”(똘롱 포똥) 깎아 주세요.

tidak, tidak” (띠닥, 띠닥) 안돼, 안돼

tolong tolong” (똘롱 똘롱) 깎아주세요~


재래시장에 갈 때는 잘 못하는 말레이어지만 말레이어가 쓰고 싶어 진다. 시장상인들과 말레이어로 되지도 않는 흥정을 하고 있으면 뭔가 뿌듯하고 진짜 로컬화가 된 것 같은 재미가 있다.

One Kg, 26 OK?”

OK, terima kasih” (뜨리마 까시) 감사합니다.

dari mana?””dari Korea?” (다리 마나? 다리 코레아? )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흔쾌히 2링깃(한화 600원 정도)을 깎아 주시며, 나름 바주꾸롱도 입고 현지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했건만 시장 아저씨들은 또 귀신같이 내가 한국사람임을 알아차리신다. 그리고 “안녕핫쎄요”, “캄사합니다”하며 환한 미소와 함께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신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좋아진다.


초우킷마켓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할아버지 죽집이 있다. 넷플릭스의 로컬 다큐멘터리 “제이슨, 시장에 가다(Jason’s market trails)_ Chow kit market”편을 보고 꼭 가봐야겠다 싶어 찾아나섰다가 구글맵과 함께 시장을 몇 바퀴 돌고 나서 겨우 이층 구석에 있는 이 죽집을 발견했다. 1956년에 시작해서 아직까지 시장상인들과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침을 팔고 계신 주인 할아버지는 80세가 넘으셨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영업을 하는 덕에 서두르지 않으면 재료가 없거나 문을 닫아 맛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 죽집의 메뉴는 하이난 식 돼지고기죽과 생선죽 두 개밖에 없다. 물게 끓인 흰 쌀죽에 야채와 생선을 으깨어 만든 피쉬볼을 넣고 끓여내서 송송 썬 파와 잘게 썬 생강 고명, 마늘 후레이크를 얹고 특제 간장 양념이 무심한 듯 휘릭릭 뿌려 나온다.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 먹고 있자면 시장 고양이들이 발 밑에 와서 느긋한 잠을 청한다.

죽 한 그릇을 뚝딱 든든히 먹고 시장 뒷골목으로 돌아 나오면 이 시장이 얼마나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켰는지를 한눈에 알게 하는 낡은 건물들 속에 러닝 차림에 부지런히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두서너 사람이 모여 낡은 철제 찻잔에 테 따릭을 마시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시장의 구조는 골목골목 야채와 과일을 파는 라인과 고기와 생선을 파는 라인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뒷골목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몇십 년을 한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판 순수하고 감칠맛 나는 숨은 맛집들이 즐비하다. 뒷골목에 들어서면 나오는 하카식 돼지고기 튀김을 넣은 나시르막 집도 내 단골가게 중 하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이 나시르막 집은 내가 아는 최고로 맛있는 나시르막 집이다. 무슬림 국가에서 돼지고기를 넣은 나시르막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입에서 녹아 사라지는 돼지고기 맛은 정말 일품이다. 포장해 달라고 하면 신문지 위에 비닐을 한 장 깔고 밥과 고기, 오이 그리고 깐꿍(모닝글로리 볶음)을 둘둘 말아 준다. 가격은 7링깃이다.

시장 뒷골목에 있는 상점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좁은 통로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과일과 야채가게를 지날 때면 모르는 야채와 향신료 투성이다. ‘아 이것도 먹는구나, 감자가 이렇게 종류가 많구나, 이건 무슨 과일이지?’ 눈이 휙휙 돌아가며 한 바퀴 돌고 나면 언제 샀는지 양쪽 어깨에 맨 시장바구니에 과일과 야채가 가득하다. 하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어시장 쪽으로 향한다. 한국에서도 생선이름은 모르는 게 투성인 데다가 잘못 사서 비려서 실패한 경험을 하고 난 후로는 생선은 주로 현지 친구들의 추천을 받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현지 생선은 ‘Talapia mera’. 생긴 건 도미같이 생겼는데 이름이 ‘딸라 삐아’라서 그런지 둘리가 살던 ‘깐다삐아’랑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붉은색의 이 생선은 친근하고 맛도 담백하다.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를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얼마나 좁았나를 깨닫게 되고 그 다양성을 눈과 마음에 담고 존중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빨리 코비드가 종식되어서 초우 킷에 두리안 사러 가야 하는데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씁쓸한 맛으로 중독성강한 약콩 petai와 최애생선 talapia mera
무엇에 쓰는 식재료인고? 감탄과 두리번을 부르는 다양한 식재료의 천국. 맨 왼쪽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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