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길은 하나, 회전교차로와 오래된 건물을 사랑하는 쿠알라룸푸르
나는 지름길을 좋아한다. 가급적이면 빠른 길, 목적지까지 가능한 한 빨리 가기 위해 늘 첩경을 찾는 편이다. 길을 찾을 때도 구글맵을 켜거나 가장 빠른 길이 뭔지, 안 막히는 길이 어딘지 본능적으로 체크해서 최대한 빨리 가려한다. 한국인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왜 이럴까를 되 집어 보면 아마도 급한 성격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의 이 조급한 성격은 한국에 살 땐 큰 불편 없었고, 때론 일 처리가 빠르다는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급한 성격이 말레이시아에서는 제대로 제동이 걸렸다. 그 이유는 쿠알라룸프르의 대부분의 길은 ‘One way’이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보면 중간에 한 번쯤 우회전, 좌회전이 있어야 하는데, “아니 어찌 된 일인가” 그곳엔 길이 없다. 따라서 회전교차로는 너무 많고,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한 참을 올라가 유턴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엔 운전석이 오른쪽이라서 그런가? 아니 아니 아니지, 영국이랑 일본도 오른쪽인데… 거긴 안 그런데. 아니 여기서 좌회전 신호를 만들면 쉬울 것을 왜?!!라는 생각에 성격 급한 이 한국인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더 환장할 노릇은 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게 문제다. 왜 길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길을 새로 안 닦고 옛날 길을 그대로 사용할까? 한국이라면 벌써 고가를 만들고 뚝딱뚝딱 빨리 가는 길을 만들었을 텐데……라는 어쭙잖은 불평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다행히도 이들의 life style을 보며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어떤 상황에도 서두를 이유가 없는 이곳의 느긋함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자면 약속시간에 한 시간쯤 늦는 것은 그냥 애교로 봐줄 정도로 이 나라 사람들은 느긋하다. 늘 ‘천천히’, ‘여유 있게’가 몸에 베인 듯하다. 수업에 늦지 않으려 교실로 뛰어가는 나를 보면 선생님들은 “뛰지 마! 괜찮아, 더워~ 뛰지 마!”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실제로 교정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뛰는 사람이 있으면 백이면 백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때 되면 주렁주렁 망고, 두리안, 람부탄 등 맛난 과일들이 지천으로 열리고 날씨는 따뜻하고, 이들에게 뛸 만큼 서두를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게으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오래된 것, 이미 누군가 만들어 오랜 시간 사용한 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것 들에 큰 가치를 두는 것 같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건물 외벽엔 이 건물이 지어진 건축연도가 적힌 건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1910~70년대 사이에 지어져 건물 외벽에 건축연도가 아로새겨진 건물들은 마천루와 더불어 꽤 멋진 이야깃거리를 상상하게 한다. 낡고 오래된 것,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고 손때가 뭍은 것에 귀함을 아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8-90년대에 세워진 낡은 건물은 서둘러 새 옷을 갈아입는 빨리 가는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에 이야기를 더해주는 케이엘의 건물들을 보며 또 다른 의심을 품는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돈이 없어서 길을 못 만들었을지도 몰라 흠, 그래서 옛 건물을 그냥 사용하는 걸 수도 있어"라는 소심한 의심을 해 보니 말이다 .
영국과, 포르투갈, 네덜란드, 일본의 식민시대를 거친 이 나라의 건물은 그 colonial heritage를 그대로 담고 있다.
중국, 인디아, 말레이계가 함께 살아가고 있어 , Penang, Malaca, Ipho, taipin 등의 중국인들 중심 도시에는 중국사람들의 정서가 남겨진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