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 나는 나’ 그리고 따로 또 같이, 다민족이 만들어가는 하모니
2018.04.
언니들을 기다리러 공항에 왔다.
아까부터 사리를 둘러 입으신 인디아 계 아주머니는 무슨 말 인지 “싸파르 푸땅라~~ 트리야 ~” 어쩌고 저쩌고 “오케 오케” 만 알아들을 수 있는 타밀어로 통화 중 이시다.
노란색 터번을 두른 옆자리 아저씨께서는 남다른 아우라로 금방이라도 코브라를 불러들이실 듯 흰 수염을 쓰다듬고 계시다. 공항 대합실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열 시 반에 도착한다던 언니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언니들이 한 시간째 안 나온다.
‘그…… 그렇지 이 나라가 공항 안에서도 한참 걸리지’ 애써 위로하며 이 밤에 Grab택시는 어찌 잡을지, KL시내에 있는 집에 도착하면 거의 한시는 되겠지 생각하니 문득 걱정이 앞선다.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저마다 전광판 Landed싸인과 휴대폰 시계를 번갈아 확인하며 나올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 왜 연락도 안되고
입국장 Gate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건지,
그러다 국적 기 승무원들의 유니폼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 이제 나오기 시작하겠구나’ 안심이 된다.
이 안도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단일민족, 백의민족이 대단한 자랑인양
교과서에서 듣고 배운 내게 이 인종의 용광로 같은 말레이시아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였음을
알게 해 주었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한가득인 말레이시아
KLIA(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 공항은 그야말로 인종의 ‘Melting Pot’이다. 무거운 배낭을 앞 뒤로 메고 짧은 반바지 차림의 유럽 backpacker들도, 아 저 색깔이 ‘Indian pink’로 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쨍한 원색의 전통의상 인디언 가족들도, 아이를 앞으로 안고 눈 빼고 온 몸을 검은색 브르카(burka)로 가린 채 남편을 따라가는 아랍 여인도 이곳에서는 모두 자연스럽다.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를 생각하며 온갖 종류의 나라말이 이곳의 쨍한 햇빛처럼 내려꽂이는 시끌벅쩍한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사람들 관찰하기에도 빠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끌어안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은 모두 비슷해’ 생각하고 있는데 아! 저기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같은 아저씨 뒤로 언니들이 보인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너는 어디서 왔니? 응 나 레바논, 나는 예멘, 나는 시리아
헐~~~ 중동의 어느 나라라고는 사우디밖에 모르는 나에게 이웃으로 만나는 이 낯선 나라의 친구들은 금요일엔 긴 원피스처럼 생긴 흰옷을 입고 기도하러 모스크에 간다.
친한 동료 교사 푸(FOO) 선생님의 조상은 중국 학카(HAKKA)족 출신으로 자기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나를 멘토링 해 주시는 바산타(VASATHA) 선생님은 인디아 계로 말레이어보다는 영어를 더 편하게 사용한다.
이방인의 나라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말레이계, 인디언계 그리고 중국계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큰 카테고리가 그렇고 한 교실에 앉아 있는 한국어 반 아이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제 각각이다.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짙은 KELANTAN출신 ‘아미라’는 할아버지는 태국 사람, 할머니는 인디아 계 말레이 사람이라 했다. 태국과의 국경이 있는 KELANTAN지역에서는 흔한 일이라 한다.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가늘고 긴 눈을 가진 사라는 할머니가 중국계 말레이 인이고 보르네오 섬에 있는 도시 KUCHING 출신이다. KUCHING은 특별히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인도네시아와 국경이 접해있어 종교적으로나 문화면에서 많은 차이가 느껴지는 도시이다. 포카혼타스를 닮은 1학년 나타샤는 ‘오랑아슬리(ORNANG ASLI)라 불리는 원주민 출신이다.
이런 가족력때문인지 말레이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늘 관대하고 쉽게 다가선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정도로 대부분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하고 평소엔 말레이어를 쓰며 가족의 역사에 따라 중국어, 아랍어, 태국어, 타밀어 등을 한다. 시내 간판에는 늘 중국어 한문과 말레이어, 아랍어, 힌디어가 병용 표기되어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한국어만 사용하는 한국 사람인 나는 왜 이들이 함께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책에서 찾아본 말레이시아 이주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 이후 주석과 고무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광산자원을 개발할 목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인들은 착하고 느린 성품의 말레이인들 보다 부지런하고 경제관념이 있는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을 이민자로 불러들여 주석광산 등을 개발했다. 주석이 풍부한 Perak지역의 Ipoh와 Taiping에 영국 식민지 시절 건설된 선교사 이름을 딴 학교와 교회 등이 남아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주석광산개발 노동자로 일하며 큰 부를 축척하였고 경제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그 예로 우리나라의 충무로나 세종로처럼 Jalan Yap An Loy, Jalan Tun H.S.Lee, Jalan Loke Yew (Jalan은 말레이어로 ‘길’이란 의미)등 중국계 개척자들의 이름을 딴 대로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SUNWAY나 BERJAYA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팜 오일로 돈을 번 중국인들이다.
인도인들은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 구사하여 경찰이나 군인 같은 전문직을 차지했고 지금도 인도인들은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반면 영국 식민정부는 토착 말레이인들을 각 주의 이슬람 통치자들 휘하에 두고 농업에 종사하도록해 농촌에 발을 묶어두는 분리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나중에 인종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말레이 전체 인구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인과 인도인 다아스포라와 의 뿌리 깊은 인종갈등은 토착 말레이인들에게는 역차별로 중국계와 인도인들에게는 차별로 느껴지는 듯하다. 말레이 정부는 1970년대부터 말레이계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Bumiputra policy)을 실시하여 다양한 세금 면제 혜택으로 이들을 달랬었다. 하지만 이 정책의 역효과로 말레이계는 점점 더 게을러져 중국계, 인도계와 빈부차가 커졌다. 최근 등장한 사투 말레이시아 정책(Satu Malaysia_하나의 말레이시아)은 또 하나의 융합정책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만나는 중국과 인도인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조상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디아스포라로서 자신들의 조상이 개척자임을 자부하는 것 같다. 2018년도엔 UN에서 부미푸트라가 인도계 중국계에 대한 역차별 정책이라 축소 폐지를 요구했고 이에 정부의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말레이계의 대대적인 집회가 있었다. 집 앞으로 Masjid Jamek 모스크를 향해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절을 하며 행진하는 평화 시위를 목격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민족 간의 갈등이 골이 깊다고 느껴졌다. 또 한국이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한국도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고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고 살아온 덕분인지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갈등을 완화하는 그들만의 하모니를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이 만들어낸 융합의 문화는 낯선 이방인에게 큰 이질 감 없이 이 땅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가져다준다. 이 땅의 말레이인들에게는 내 가족 중 누군가는 이방인이기에 더 관대하고 포용하게 되는 걸까?
좁은 동네 골목에 힌두 템플과 불교 사찰, 모스크가 항상 같이 있고 일 년에 휴일이 60일이 넘을 정도로 각 민족의 명절을 다 지킨다.(외노자로 이 부분은 참 고마운 일이다) 코비드가 극성임에도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나 미얀마와 시리아, 예멘 등 난민들을 위한 우호 정책과 난민학교, Food bank 등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이들이 이 땅에서 함께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종교적 선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이방인의 눈에는 대단해 보인다. 예멘 난민 오백 명에 나라 전체가 시끌했던 대한민국을 아마도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