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Feb 26. 2022

폴란드행 야간 버스

푸틴 너 그러다가 총 맞는다 feat by June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뒤숭숭한 뉴스를 접하고 잠시 폴란드행을 취소할까 생각했다.

  두 달 전부터 이미 동료 선생님들과 재외국민 투표 신청을 하고 버스와 숙소를 예약해 두었던 일정인데, 선뜻 나서기에 오늘 뉴스는 너무 슬프고 속상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빌니우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응원한다는 평화의 메시지로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자국의 국기를 두르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동유럽 국가들의 연대 소식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자니 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눈앞에서 일어난 역사의 반복과 아픔이 속상함을 넘어 분노로 바뀌어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시내 곳곳엔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함께 내걸고 행진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뉴스를 보고 있자니 한 편으로는 재외국민 투표가 뭐라고 옆 국가에서 일촉즉발의 포탄이 터지고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말 그대로 난리가 났는데 국경을 넘는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리-폴 겸임 대사관이 있는 폴란드 대사관은 연락이 안 되고 괜한 이동을 했다가 제3 국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는데 기우 아닌 기우를 하다가  아직까진 크게 변동사항이 없을 거란 연락을 받고서야 작은 배낭에 짐을 꾸렸다.

겨우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캄캄해졌다.

‘이건 뭐지?’

서둘러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단지 내 아파트 전부가 정전이 된 상태다.

몇 번 정전을 경험한지라 침착하게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초에 불을 붙였다. 절대 고독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거 어쩌지’

침침한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참 없다.

별안간 전쟁의 소식을 듣고 있었던 터라 옆 나라인 이곳도 역시 안전할 수 없고 만의 하나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나는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들을 하다가 다 집어치우고 잠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했다. 인간은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궁극적인 위로는 신에게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게 다시 한번 깨달아지는 순간이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정전에 앞동 사람들도 옆집 사람들도 불안한지 이제야 휴대폰의 불빛을 밝히고 주위를 돌아본다. 한국이라면 벌써 관리사무소에 연락하고 왜 이런 거냐, 언제 불이 들어올 예정이다 방송하고 난리 났을 텐데 이 나라 사람들 참 무던하네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데 한 시간 남짓 후에 겨우 전기가 들어왔다.


 폴란드행 버스는 시내 panorama 백화점 옆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물론 기차역에서도 탈 수 있지만 아마도 도심공항 터미널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서울의 삼성동이나 남부 터미널 같은 터미널을 생각하면 안 된다. 아주 작고 ‘여기가 맞겠지? ‘라는 충분한 의심이 들만한 버스 정류장에 ‘바르샤바행’이라는 아주 작은 표지판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름 이곳에서 탈린이나 바르샤바 같은 인접국의 국로로 연결되는 국외 시외버스를 탈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버스는 밤 10시 50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출발 새벽 6:00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 도착이다.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한국의 공항버스를 그리워하며 꼬리뼈에 금이 가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두 번의 입국심사를 위해 여권을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하면 겨우 국경을 넘어 폴란드에 도착한다.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 이층에 맥도널드는 발견하고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영혼이 이끄는 데로 들어가서 앉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깨끗한 화장실이 이용 가능하리란 계산이었다.

그런데 웬걸 화장실에는 돈을 넣어야 들어가는 바가 설치되어있었다.

‘이런 된장’

유로국이지만 아직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즈워티를 사용하는데 2즈워티(600원 정도)를 넣어야 ‘열려라 참깨’처럼 화장실로 들어가는 바가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화장실을 가려면 내려가서 ATM기를 찾아 돈을 찾아, 돈을 동전으로 바꿔서, 다시 올라와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이거 참 난감하네’

하고 있는데 내가 처한 상황을 ‘이심전심’했는지 폴란드 청년 하나가 영수증을 보여주며 이 버튼을 누르면 열린다고 영수증 밑에 있는 화장실 비밀번호를 알려 준다.

아하 “징꾸에 바르죠(정말 고마워요)” 대학시절 외워 두웠던 폴란드어가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 청년은 돌아가다가 다시 와서 #버튼도 마지막에 눌러야 하다며 갈 곳을 잃은 나의 시선과 비루한 손가락을 대신해 버튼을 꼭꼭 눌러준다. 참으로 착한 청년일쎄

바르죠 도브제(정말 고마워요)”

“열려라 참깨” 드디어 화장실 문이 열렸다.

화장실에 간다더니 함흥차사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겨우 맥모닝을 입에 넣는다. 해쉬브라운에 케첩을 듬뿍 얹어 맥모닝 사이에 끼워 한 입 베어 물으니 꿀맛이다.


폴란드 대사관

재외국민 선거는 이번이 세 번째 해외에서 살면서 재외국민 선거마저 안 하면 이상하게 영영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의 약속을 어긴 것처럼 미안스러워서 의무니 뭐니를 떠나 꼭 하러 갔었다. 이번처럼 대사관이 없는 나라에 거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 참에 폴란드 한 번 가보는 거지 모’ 하며 야간버스에 올랐다. 야간 버스를 타고 꼬리뼈가 아작 나는 것 같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겨우 이건 ‘대단한 애국심’이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여정이란 생각을 했다.

정말 선택하기 어려웠던 후보들 중 겨우 선택을 하고 대사관을 나서는데 흐렸던 날씨가 개면서 찬란한 햇빛이 보인다.

대사관 정원에서 태극기와 손등에 찍어서 남긴 투표 인증사진도 선생님들이랑 찍고 쇼팽을 만나러 쇼팽 박물관으로 향한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국로로 가는 : 럭스 익스프레스라는 버스가 연결되어있다. 비용은 왕복 50유로 내외,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이 있고  좌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버스 안에 음료수와 화장실이 제공된다. 소요시간은 7시간. 야간 버스이다. https://luxexpress.eu/en/

이전 19화 나의 리투아니아어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