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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Oct 20. 2022

말모이

열 명이서 함께 걷는 한 걸음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학생들과 '말모이'를 함께 봤다. 분명 개봉 연도인 2019년도에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심지어 말모이를 넣어 구글 아이디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다시 보고 있자니 이 영화는 몇 가지 놀라운 점이 있었다.  

우선 나의 배우 조현철 씨가 주요 배역인 '봉두'역할로 처음부터 나와 나의 눈을 즐겁게 한 점과 나의 사랑 유해진 씨가 마치 1940년대로 타임슬립 한 것처럼 너무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는 점(feat 사과 탕자), 그 외에도 당시에는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 김선영 배우, 이정은 배우, 이성욱 배우, 최귀화 배우 등 눈부신 조연들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었다. 엄유나 감독의 배우를 고르는 능력과 혜안에 놀라 마지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다지 중요할 게 없어 보이는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인물들이다. 가위를 가세, 가우, 가시개로 부추를 정구지, 부초, 덩구지, 소풀 등으로 발음하는 각 지역의 방언을 모아 공청회를 열고 조선어 사전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니 언어를 공부하는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어쩌면 이런 소소하고 미비한 것들까지도 주의 깊게 살피고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지켜진 한글이 지금 전 세계 속에 퍼져나가고 있음은 분명 이분들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 기록된 한 줄, 책 한 권을 가지고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또 그 이야기를 오랜 시간 소중히 간직하고 공감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감독과 배우들의 천착에 박수를 보낸다. 



  

  교육학 용어 중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용어가 있다. 오래전 배운 내용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수업 중 학습자가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이나 교사가 학습자의 질문 등을 통해 학습자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말하자면 '아하'의 순간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의 한국어 수업은 시종일관 '결정적 순간'으로 채워져 있다. 


"어제 뭐 했어요?"

"어제 발레를 했어요."

"아, 카롤리나 씨 발레를 배워요?"

"......"

"아! 빨래를 했어요~"

빨래를 발레로 발음하는 카롤리나 씨의 발음을 고쳐준다. 된소리가 만들어지는 조음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지고 목구멍 쪽부터 나오는 강한 소리라고 부연 설명하지만 초급 한국어 학습자들에겐 제대로 된 발음을 기대하기에 어림도 없다. 자신들의 모국어에 없는 발음이기에 가장 많이 실수하는 우리말의 거센소리 ㅋ,ㅌ,ㅍ,ㅊ 그리고 ㄲ,ㄸ,ㅃ,ㅆ,ㅉ의 된소리 발음은 초급 학습자들에게 늘 넘어야 할 산이다.  '비가 와요'를 '피가 와요', '사다와 싸다', '자다와 짜다', '차다', '개와 게', '계' 비슷한 다른 듯한 발음의 향연에 초급 학습자들 아니라 중, 고급 학습자들도 애를 먹기 일쑤다.

그뿐이랴 

"선생님, '오늘'과 '날'의 차이는 뭐예요?"

"골라서 쓰세요"는 되는데 왜 "고르고 쓰세요"는 안 돼요?

"왜 시계 읽을 때  한 시 삼십 분이에요?" 

'시'와 '분' 앞에 아라비아 숫자를 읽는 방법이 다르기에 숫자를 배울 때 초급 학습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다. 

"옛날에 한국사람들이 시계가 만들어 지기 전부터 시간의 개념이 있었어요."

"시계가 발명된 후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분 개념을 읽기 위해 Sino Korean Numbers를 사용해요. 그래서 달라요" 

'물건을 쌓아 놓다'와 '쌓아 두다'는 무슨 차이가 있으며  '참가하다', '참여하다', '참석하다'는 어떻게 다른지, 예의가 있다, 없다는 되는데 예절이 있다, 없다는 되고 예절을 지키다는 되는지 골머리를 앓는다. 금 지하다와 금기하다는 뭐가 다른지 ㄷ,ㅎ,ㅂ, 르, 으....... 불규칙은 왜 이렇게 많으며 어미변화를 할 때마다 의미와 화용은 달라진다. 아마 한국어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나조차 모르고 지나쳤을 귀한 나의 모국어 단어들이다.

마치 현미경을 들고 달을 관찰하듯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매력이 터지는 나의 모국어, 한국어. 

 

요즘 세종 1 학생들은 동사의 과거 표현을 배운다. '동생가 있어요.' '선생님 한 명과 학생 세 명가 있어요.' 

'첵이 있어요.' '마크시가 집빡에 있어요. 마크씨가 집빢에 있어요.' 

학습자들의 과제는 늘 나를 웃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한국어를 향한 정성에 감동받기 일쑤다. 

 

요즘 나는 마치 십 년 입은 코트를 죄다 뜯어서 안감은 뭘로 만들었고 다트는 어떻게 넣었으며, 어디에 심지가 들어가 있는지, 단추는 어느 위치에 어느 바느질로 달았는지 죄다 확인한 후 다시 옷을 만드는 테일러가 된 기분이다. 그동안 평생을 써 온 나의 모국어가 이런 말이었는지 다시 진단하고 확인하고 배우고 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주시경(1876~1914) 선생의 ‘말모이 원고’와 이를 바탕으로 조선어학회가 사전 편찬을 준비했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1945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돼 1957년 ‘큰 사전’ 발간의 기초가 됐다. 

*결정적 순간은 또한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1908~2004년)이 포착한 순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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