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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Feb 16. 2022

나의 리투아니아어 시간

슬픈 외국어 feat by 무라카미 하루키

“June~, 아르 뚜 칼비 리에투비쉬카이?”(주운~, 리투아니아어를 할 수 있어요?)

타입, 아쉬...... ....부... 리에투....비쉬카이”(, 저는... 리투아니아어를 .... .... 있어요)


거짓말이다. 대화문에 나온 그대로 띄엄띄엄 따라서 대답했지만, 나의 솔직한 대답은 ‘아니요, 리투아니아어를 할 수 없어요, 리투아니아어는 너무 어려워요ㅠㅠ’였다. 이건 뭐 마치 “하우알유”에 “파인 땡큐 앤유”로 대답하는 거나 다름없다. ‘리에투비쉬카이, 앵글리쉬카이, 야포니쉬카이’ 입에 붙지 않는 ‘~쉬카이’발음을 연습하고 있는데 줌 너머 선생님이 또 말을 거신다.    

  

“June, 이쉬 쿠르 투 에시”(주운~ 어디에서 왔어요?)

“아쉬 에수.... 이쉬 코레.....요스”(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게라이, 게라이”(좋아요, 잘했어요)


지난 시간에 혼자 안드로메다에 여러 번 다녀온 뒤라 복습을 철저히 하고 오늘 전투적으로 수업에 임했던지라 좀 버벅 거리긴 했지만 무사히 선생님 질문을 방어했다. 선생님도 조금 느껴지셨는지 오늘은 계속 두 번째 순서에 나를 시키신다. 리투아니아어로 잘했다고 하시는데 내 귀에는 “에라이, 에라이”처럼 들린다.

이렇게 리투아니아어 강좌 참석 두 번째 시간 만에 나는 지진아가 되었다.

언어 선생님들은 학습자들에게 시키는 순서를 메긴다. 예문을 설명하고 듣고 말하기 연습을 시킬 때 가장 잘하는 학생에서 제일 못하는 학생 순으로 시키는데 지난 시간에 난 우리 반에서 제일 꼴지로 대답하는 학생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강좌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 리투아니아어 처음 배운다고 했지만 프랑스나 인접국인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학생들은 곧잘 따라 한다. 마치 한국인이 일본어나 중국어를 서양사람들보다 쉽게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려나......??

 ‘뭐지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잘하지?’

 수업에서 유일한 동양인이니까 자존심을 걸고 잘해보고 싶지만 ‘바쥐뉘오유에’같은 이중모음 천지, ‘데쉬티토야우’ 같이 자음이 연속으로 ‘다다다’ 나오는 단어는 읽기조차 여럽고 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낯선 단어들에 나의 뇌는 자꾸 멈춰 버리고 생전 처음 접한 발음들이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다.

‘아 난 왜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인가’

하지만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유르가’

나의 첫 리투아니아 선생님.

분명 첫 시간에 알파벳부터 배운다고 했는데 알파벳 송 들려주시더니 유르가 선생님은 무슨 단어가 들리냐고 물어보셨다. 나를 제외한 학생들이 이것저것 대답하니 또 “ 게라이, 게라이 라바이 게라이(좋아요, 좋아요, 아주 잘했어요)”하시고 알파벳을 슬쩍 넘어가셨다. 헉, 나 발음도 모르는데, 당황함을 애써 감추고 있었는데, 리투아니아어는 전치사에 따라 변화하는 명사 어미가 일곱 개가 있다고 하시며 한번 읽어 주시더니 바로 연습문제를 막 시키셨다. 이제 겨우 영어로 따지면 I am, You are 같은 be 동사 외우고 있는데 폭격기 같은 동사 변화 질문 공세에 나는 인지, 너는 인지, 그 인지, 그녀 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괜히 선생님이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셔서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소용없다. 말 안 듣는 혓바닥에 리투아니아어를 한 땀 한 땀 연습시키며 숙제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ㅠㅠ 어차피 언어 습득은 노력이니까 ㅠㅠ     


  난 언어 선생이니까 뭐...... 어떻게든 따라가겠지. 막연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리투아니아어는 발음이 몹시 어려웠고 단어가 길었고, 어미변화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언어였다. 그래도 두 번의 리투아니아어 강좌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내 수업을 돌아보고 깊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다. 나의 학생들은 이렇게 어려운 모어를 구사하는 학생들 이었던 거야? 수업에 잘 못 따라오는 학생들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타산지석, 역지사지 이런 말들을 머음에 새기고 있다. 사람은 정말 타인의 입장이 되어 봐야 그나마 조금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건가?     


   나에게 '제2외국어'란 단어는 고질병처럼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동반자였다. 어릴 때부터 좋은 관찰력을 가지고 흉내를 잘 내는 아이였던 나는 막연하게 언어에 관심이 많았었고 아무 외국어라도 좋으니 그냥 외국어를 전공하고 싶은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으로 언어 전공자가 되었다. 전형적인 E 타입 인간인지라 완벽한 문장 따윈 잘 만들지 않고 먼저 말을 시작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 버리는 무모함은 언어 학습의 두려움을 없애 주어선지 비교적 쉽게 외국어를 습득하게 했고 그 덕에 일본어를 가르치며 꽤 오랜시간 '제2외국어'선생으로 밥 벌이를 했다. 그리고 한국어 선생이 된 나는 나라를 옮겨 다닐 때마다 스프링노트를 하나 장만해서 꼼꼼히 그 나라 단어들을 빼곡하게 적으며 미지의 언어에 대한 옛날 스타일 언어 학습을 시작한다. 많은 언어를 접하진 않았지만 막상 그 나라 언어를 기초라도 배우게 되면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남다른 애정이 생긴다. 하지만 연구 가치가 있는 라틴어 계열의 발트어라는 리투아니아어는 만만하게 배울 언어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낙심하고 있는 참이다. 그래도 꾹 참으며 언젠가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는 날이 있겠지 막연한 기대를 해 본다.


   일본어를 전공할 때 하루키를 좋아해서 언젠가 하루키 소설을 원서로 읽어야지 야무진 꿈을 꾸며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서점에 들러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하루키의 문고본을 사서 모았다. 하지만 그 책들은 결국 한 권도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책 테두리가 노랗게 변색된 채 책장 여기저기 꽂혀 민망함만 선사하고 있다. 그래도 그때는 스페인, 보스턴 등 각종 마라톤을 참여하며 세상 이곳저곳에서 멋진 삶을 꾸려가는 무라키미 하루키의 하루하루가 내겐 동경이었다. 하지만 ‘슬픈 외국어’라 는 하루키의 책 제목처럼 일본어로 소설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나라의 말뿐 아니라 정서와 맥락을 읽어내는 일은 그래서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오랜 숙제인지도 모른다. 마치 언어는 뜨개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는 것처럼 표나지 않는 일을 한 땀 한 땀 무한 반복해야 겨우 겨우 조금씩 내 안에 쌓여 내 생각을 겨우겨우 그림일기 처럼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고 비로소 흉내가 가능하게 된다.


내가 유창하게 말할 수 없다는 걸 변명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어를 술술 할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해서 개인과 개인의 마음이 쉽게 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막힘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할수록 절망감이 더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더듬거리며 대화를 나눌 때 마음이 더 잘 통하는 경우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슬픈 외국어]   
  

외국어를 한다는 것,

그 나라 말로 그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한다는 것,

하나의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지만 전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나같이 알고 있는 최소한의 표현만을 즐겨 사용하는 외국어 학습자는 그게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학습자들은 “선생님, 아쉽다와 아깝다가 어떤 차이가 있죠?”, “선생님 섭섭해요, 속상해요, 시원 섭섭해요 무슨 차이가 있어요?” 혹은 ‘일찍 자느라고 피곤하지 않았어요’ 같은 비문을 만들어와 ‘일찍 자서 피곤하지 않아요’와의 차이를 물어보곤 한다.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학생들이다.

이들의 언어적 발견과 노력에 손뼉 치면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지 생각하면 몇 마디의 칭찬으론 턱 없이 부족한 귀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초보 리투아니아어 학습자인 나는 언젠가 나도 말하고 싶은 말을 리투아니아어로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해 보다가 바로 유창하게를 지우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부해야지 하고 한계 설정을 다시한다.  그동안 나와 함께 동거했던 외국어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다만 오늘도 난 공책에 내 이름은 준이에요. 저는 빌뉴스에 살아요. 직업은 선생님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를 또박또박 쓰며 리투아니아어 숙제를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 동상과  동상 앞을 흐르는 빌니아 강(아담 미츠키에비츠가 마치 말을 걸어 오는 듯 상체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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