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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Oct 03. 2022

나는 가끔 '리가(Riga)'에 간다.

feat by 한식당이 없는 빌뉴스


"거기는 어때?"

"응, 좋아. 나라가 정적인데 품위가 있어."


  사는 곳에 대한 평가는 늘 후하다. 하지만 살아봐야지만 알게 되는 단점이 왜 없겠는가.

마라톤도 참여해 보고 나름의 노력을 해 보지만 화려함 대신 신비함을 선택한 듯한 리투아니아는 어딜 가나 깊은 숲과 호수와 평원으로 뒤덮여있다. 또 14-16세기(1236년 ~ 1569년) 대공국을 만들었던 역사의 흔적인 듯 중세의 흔적들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마치 중세의 마법사가 써놓은 듯한 펼치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숲 속 요정의 마법책'같은 나라이다. 빌뉴스 올드타운의 골목골목은 여전히 중세시대 때부터 사용했다는 족히 오백 년은 넘은 듯한 돌바닥이 사람들의 발자국을 고스란히 담고 건재하다. 꽁꽁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스러진 도심의 보도블록은 이곳의 수 백 년 전 건물들과 꽤나 잘 어울리며 나름의 정취를 만들어 낸다. 방사선 모양으로 흩어진 도심의 작은 골목 안 식당 안을 고개를 구부리고 겨우 들어가 방사선의 계단을 뱅글뱅글 내려가 보면 몇 백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근사하고 안락한 신비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 궁궐이나 오랜 고택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아우라가 빌뉴스의 여느 건물이든 움푹 파인 나무계단과 함께 남아있고 곰팡이 냄새인지 사람 냄새인지 모를 독특한 냄새와 함께 부서진 건물벽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모든 것들이 이곳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하지만 도시의 기운에 함께 어울리며 기운을 얻고 바쁘게 살아가는 게 정답인 내게는 이 정적은 이곳의 추위만큼이나 힘들고 가끔은 무척이나 답답하다. 


  9월이 되기도 전에 이미 10도 이하로 떨어진 기온은 습하고 차가운 발트해의 공기를 가득 데리고 온 거 같다. "아, 뭐 벌써 이렇게 추운 거야"

활짝 펴 보지 못하고 떨어진 꽃을 바라보듯 이미 낙엽에 되어 뒹구는 나뭇잎들은 머지않아 또 겨울이 오고 있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듯' 넌지시 알려준다. 


  가을이 막 시작된 요즘 아침 풍경은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신령이 나올 것만 같은 동네숲이거나 그 숲을 조용히 반려견과 함께 사부작사부작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을과 함께 오페라 공연과 수많은 예술공연들이 쏟아지고 보헤미안들처럼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만의 이 정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리투아니아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은 많지만 나는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자연의 신비함이 가득한 나라'로 정의하고 싶다. 조용히 산책하기를 즐기고  '절대 침묵'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처럼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것을 이토록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토록 근사한 이곳에는 안타깝게도 한식당이 없다. 음식이 주는 위로가 삶의 절반 이상인 내게는 이곳 생활에서 가장 가혹한 부분이다. 겨우 마트에 들어온 신라면과 너구리에 만족하며 향수병을 달래기에는 변변한 아시안 마트 하나 없는 이곳은 분명 관세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을 거라고 투덜대지 않을 수 없다. 공항 가는 길 찾기 힘든 골목 어디에 있다는 도심 외곽의 아시안 마트는 이상하게 찾아가고 싶지 않다. 가을 겨울의 날씨는 흐림, 비 옴, 눈 옴이 전부 인, 오늘처럼 쓸쓸함이 100% 채워진 가을날엔 수제비가 그만인데. 삼청동을 걷다가 쌀쌀함을 피해 들어가 먹게 되는 얇은 피가 입천장을 위로하는 삼청동 수제비를 후후 불며 한 입 입안 가득 담고 단순하지만 제대로인 열무김치로 함께 먹던 그날의 기억들,  그 길 건너에 있는 두 번째로 맛있는 단팥죽집에서 고명으로 얻어진 대추를 냉큼 집어먹으며 한 술 뜨게 되는 단팥죽과 함께하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그뿐인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시원한 물김치와 군고구마의 기가 막히는 조화와 길거리 트럭에서 사 먹던 어묵꼬치와 붕어빵을 친구 삼아 보내던 겨울의 로망은 북유럽 발트의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사람의 기억은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듯 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날리던 그날의 기억과 냄새, 분위기를 통째로 소환한다. 


감자 뇨끼 수제비와 루꼴라 파전 

  한 식당은 없지만 향수를 달래기 위해 요즘 즐겨 만들어 먹는 요리가 있다. 이름하여 '감자 뇨끼 수제비'

리투아니아는 감자로 요리 어디까지 할 수 있니를 묻는 것처럼 수만 가지의 감자요리가 있는 나라이다. 

 뇨끼의 스펠링이 'Gnnochi'라는 걸 여기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어 이거 뇨끼인데' 

마트에서 작은 반죽에 포크 무늬를 넣은 앙증맞은 뇨키를 한 봉지 사 가지고 왔다. 감자와 양파를 듬뿍 넣고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나름 맛난 수제비를 만든다. 두절 새우를 넣으면 더 감칠맛이 난다. 

부추 대신 루꼴라를 넣어 전을 부쳐 먹으면 쌉쌀한 맛 대신 부추전과 흡사한 맛이 난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테두리를 뜯어먹으며 받는 위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리투아니아 전통 감자팬케이크(bulvė blynas)와 감자뇨끼 수제비

한식당에 가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면 뭘 또 그렇게 까지 하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 한식당에서 식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 번이라도 해외에 거주하며 한국음식을 찾아 도시 외곽에 있는 아시안 마트를 찾아 헤메 본 사람들이라면 나의 이 절실함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빌뉴스의 가장 고급 백화점인 파노라마 앞에서는 발트 3국의 수도 리가, 탈린 그리고 바르샤바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 처음에 바르샤바행 야간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여기가 맞는 건가', 달랑 허허벌판 주차장에 표지판 하나 있는 이정표를 보고 반신 반의 했지만 이젠 이것도 익숙하다. 리가는 버스로 4시간, 바르샤바는 7시간 반 정도면 국경수비대가 여권 검사를 가끔 할 때도 있지만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다. 그저 그동안 굶주렸던 한식 세포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한식당 방문만을 위해 찾았던 리가는 도시를 따라 흐르는 발트해와  다우가바강(Daugava)만으로도 충분히 눈호강을 할 수 있는 도시였다. 독일과 스웨덴, 러시아의 점령 시기를 거치면서 힘들게 버텨온 역사의 흔적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이 도시는 애잔하고 슬프다기보다는 강 때문인지 세련된 매력이 느껴진다. 리가의 버스터미널 바로 옆의 돔 형태의 중앙시장은 네 개의 시장이 각각 청과, 빵과 치즈, 고기, 생선시장으로 특화되어 있는데 빌뉴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신선한 해산물을 살 수 있다. 생물 생선뿐 아니라 마른 멸치와 장어, 말린 가자미도 살 수 있는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무기창고로 만들었던 것을 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했다. 리가 중앙 시장 옆에는 geto지역이 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전히 북한 선전물에서 만날 법한 조형물과 뾰족한 첨탑은 러시아연방의 흔적을 느끼게 하지만, 꽤나 근사한 성당 'Riga Dome'과 검은 머리 전당'Black Head's House', 삼 형제의 집 그리고 고양이 House 첨탑 위의 앙증맞은 고양이 조형물을 만나면 이곳 라트비아 사람들의 위트와 유머스러움, 그리고 지난한 역사에도 자부심을 잃지 않고 건사해온 도시의 풍경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번 리가 여행에서도 리가의 한식당 설악산의 육개장과 잡채, 비빔밥은 그 어떤 오페라의 노래보다도 큰 위로를 내게 주었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을 먹고, 내가 무엇을 찾는가에 방점이 있음을 다시 깨닫게 했다. 

리가 대성당과 리가 중앙시장
아름다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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