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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Jun 29. 2023

오존층은 아직 뚫려있다.

환경은 유행을 탄다. 나는 그렇지 않고 싶다.

남극에 구멍이 뚫렸다.

여러분은 최근 '오존층이 파괴된다.'라는 말을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온실가스, 태양광, 풍력, 원자력 등의 이슈로 가득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오존층이 파괴되어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암등이 발생하기 쉬워진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이 의아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문제가 조금은 호전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험도가 낮아졌으니, 그만큼 덜 이슈화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바로, 환경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환경 문제는 그 사태의 중요성 보단, 유행에 더욱 민감하다.



오존층에 대해 가볍게 설명을 드리고 시작해 볼까 합니다.

'오존'이라는 것은 대기 중에 떠있는 물질 중 하나입니다.

이게 꽤나 두텁게 쌓여있는데, 태양에서 오는 유해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오존층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유해한 자외선을 막아줄 방패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오존층이 사라져 구멍이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바로 '몬트리올 의정서'라는 것을 통해 말이죠.


이는 꽤나 효과적이었습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의 사용을 차단했습니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오존 파괴 물질을 규제한 결과 북극은 2045년, 남극은 2066년 정도면 1980년대 이전 수준으로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말은 즉슨. 회복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뚫려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중환자실의 환자가 낫고 있다고 해서 완치된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어느덧 오존층이란 키워드는 옛것이 되었고, 구시대의 산물이 된 것만 같습니다.

왜일까요. 아직도 봉합되지 않은 상처와 같은데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의 순서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조금은 씁쓸해지는 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직 괜찮지 않은데, 모두가 괜찮은 줄로만 아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이 흐름에서 떳떳하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대기 오염이라는 것 때문에 처음으로 환경이라는 직무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때만 해도 항상 뿌연 하늘, 매캐한 연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 약간은 저물어가는 해처럼 보였고, 유망하다는 탄소, 온실가스 분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저부터가 환경오염을 환경오염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닌, 유망한 직종만을 좇아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지금입니다.

잊혀 가는 것들이 가끔 생각날 때면 찾아보고, '아직 괜찮아진 것은 아니구나' 하고 넘어갈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느낄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있겠지.'

저 같은 이른바 '유사 공학자'가 아닌 어릴 적 꿈꿔온 진짜 과학자 분들 말입니다.

한 순간의 트렌드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본인이 연구해 온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선구자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경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는 온실가스의 흐름도 저물 때가 올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만을 위해 달려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전혀 예측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을 대비할 수는 있는 걸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저는 그저 제가 있는 자리에서, 남들이 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아가고 싶습니다.

만약 상처가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라면, 끝까지 돌보며 지내야겠지요.

혹여 상처가 다 나아, 건강한 상태가 된다면 거기까지가 제 역할이 아닐까요.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문제를 끝없이 탐구하고, 개척하고 결국은 해결해 내는 것까지.

죽기 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러고 싶을 뿐입니다.


문제를 유행처럼 따라가지 않는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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