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을 다시 읽으며 곰곰이 고민해 봤다. 우리는 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 둘 간의 케미인가?
어찌 됐든 내가 공통분모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개선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셀 수 없이 반복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체력이 국력'이라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업무에서 오는 피로와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반복적인 좌절감은 나를 지탱하고 있던 모든 것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렸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각국 규제당국의 실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지난 2년간 분기마다 한 번의 실사를 치러냈는데, 단거리 경주를 연속해서 달려내는 느낌과 흡사 비슷했다. 폐는 찢어질 것 같은데, 내 팔다리가 움직여서 그냥 따라가고 있는 우스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뒤돌면 쳐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쳐내도 쳐내도 줄어들지 않는.. 말 그대로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시기였다. 제약 산업에서의 실사란 우리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짓는 요소와도 같아서 회사도 직원도 모두 예민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니어뿐인 팀을 이끌며 실사 대응을 하다 보니, 제일 먼저 포기한 부분이 팀원들의 감정을 살피는 부분이었다.
훌륭한 리더라면 스스로 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한다. 팀원들을 믿고 업무를 내려야 팀원들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세상의 말에 따르면, 나는 팀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 그 자체이다. 그렇지만 나야말로 팀원의 성장을 간절히 기원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다. 업무를 팀원들이 하게 해야 내가 롱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이미 나를 갈아 넣다 못해, 내가 부족했던 것을 곱씹느라 밤에 잠에 들지도 못했다. 신경쇠약 비슷한 것이 온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니어와 주니어 간 기준이 다른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현재 진행 중인 급하지 않은 일을 내려두고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곤 했다. 첫 번째 경우는 신입들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급한 일임을 언급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급한지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급한 상황에서 내가 하면 빨리 끝내는 일을 신입이 하도록 기다려 준다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이건 내가 완벽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신입은 숙달되지 않아 과제를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를 기다렸다가는 기한 내에 제출이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같이 하고 있어야 된다는 뜻이고, 신입이 해 온 업무에 피드백도 줘야 하고, 수정해서 기한 내에 제출도 해야 하고.. 몸이 네 개라도 모자라다.
두 번째의 경우는, 신입들은 아직도 대학시절 팀 과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정도만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인즉슨, 그들은 본인이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의 예로 돌아가서, 급한 업무를 부탁한 와중에 하등 중요하지 않은 메일을 주고받고 있는 팀원이 있었다. 아까 부탁한 업무는 마무리가 되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기다렸다. 그렇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감무소식이었고, 마침내 내가 물었을 때는 상대방의 회신이 오지 않아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 만약 급한 일을 처리할 때 문제가 발생하면 가능한 한 빨리 공유가 필요하다는 말과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언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 같지만,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니 매번 기한에 맞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신입이 입사하긴 했지만, 오히려 내 업무는 두 세배가 되는 것이다.
몸과 뇌가 지쳐가고, 마음은 점점 삐뚤어져만 갔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대부분의 일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에도 화가 나고, 여러 차례 같은 얘기를 하게 하는 팀원들에게도 마음이 상한다. 거기에 피드백도 이쁘게 말하려 하니 왜?라는 마음이 불쑥 삐져나온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3년을 아등바등 댔다.
세상에는 다양한 조직이 있고 각자 사정 또한 다양하다. 근데 비전을 제공해야 한다는 둥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등의 속 편한 얘기만 하는 세상에 그리고 아무것도 조치도 취해주지 않는 우리 회사에 화가 났다. 아니, 피드백을 주긴 했는데, 그런 피드백은 이미 시도 다 해봤습니다. 90년생이 오는데, 회사에 충성하던 80년대 생에 기반한 피드백을 주시면 안 먹힙니다. 그들도 MZ를 경험하지 못해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도 터무니없는 탁상공론에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