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극복기 (2)

by Earnest

내가 재직했던 회사는 초대졸과 대졸이 담당하는 업무가 다르고, 채용부터 승진, 급여까지 별도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초대졸 직원들이 대졸 직무로 노선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능력 있는 초대졸 사원들을 키우고 사기를 증진시키고자 함이 목표였는데, 대졸로 인정받기 위해 야간 대학도 다녀야 하고, 회사 자체 시험도 치러야 하고, 그동안 받았던 고과도 좋아야 하는 등 조건이 너무 빡셌다. 한마디로, 제도는 존재하지만, 이 제도를 뚫고 성공한 사람이 전사에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대졸 사원으로 직무변경을 한 직원이 우리 팀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매우 호감형인 데다 예의도 바르고, 사람을 잘 챙겼다. 그리고 목적의식도 뛰어나서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편입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온 후 석사까지 마쳤다. 주중에는 저녁 수업을 가거나 야근을 하고, 주말엔 과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머리만 대면 잤다는 그녀의 치열한 삶은, 회사만 간신히 다녀와서 침대에 몸을 뉘는 내가 무척이나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업무를 같이 하면서 그동안 동료로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선, 그녀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셌는데,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는데 미숙했다. 나도 한 자존심 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센 사람들에 대해서 나름 잘 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쪼가 있고, 마땅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책임이 없음을 피력하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그 대화가 잘잘못을 따지려는 목적의 대화가 아님에도, 자기의 잘못이 아닌 이유부터 설명하거나, 가끔은 자기 잘못이 명백할 때도 자기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말을 바꾸다 보니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모든 상황에서 본인을 피해자화 하는 모습이 의아함과 동시에, 내가 업무적인 피드백을 주면 0.1초 만에 "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읽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한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피하고 싶은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가 아니라 정확한 심정을 알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실수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싫다면, 실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법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단순히 자기 실수를 남이 발견하는 상황을 외면하려고만 했다.


또, 말을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였다. 별 걸로 트집을 잡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은 청산유수인데 비해 업무 퍼포먼스는 현저히 낮았다. 즉, 그녀는 다른 사람과 일을 할 때 빛이 났는데,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팀원이 붙어있어야만 업무의 완성도가 있었다. 그녀도 이를 인지하고 같이 일하는 팀원을 어르고 달래 가며 했던 것 같은데, 이런 형태가 길어지자 팀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왜 일하는 사람 따로 공을 가져가는 사람이 따로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일하기를 기피했다. 그녀는 몰랐지만.


마지막으로, 영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리 팀은 거의 모든 업무를 영어로 진행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영어를 한마디도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대본도 만들어보고, 그녀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오면 내가 답변하는 등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공황장애 비슷한 통증을 호소했다. 영어가 부족할 수 있다. 그래도 부딪혀 보느냐에 아니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만 입 밖으로 한마디도 뱉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이 있다면,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에도 한계가 있다. 내가 항상 그녀와 함께 할 수는 없으니.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그녀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방법을 여러 방면으로 구상해 보고 있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같은 직급인 사람들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업무 수준이 낮았다. 그리고 영어로 인해 정해진 업무만 줄 수 있으니, 정해진 업무 영역도 너무 좁은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 그녀가 회사 몰래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야근은 고사하고, 9-6시 근무도 휘청대는 와중에 박사라니!


그리고는 알았다. 그녀는 목표 지향적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학벌이라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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