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서 배워가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와 부딪힐 때의 나를 보며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다시금 놀란다.
즉, 내가 적극적이라는 것도, 목표 지향적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하루를 살아가지만, 나보다는 덜 적극적인 사람들을 마주하며 내가 조금 극성인가?를 되묻곤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적극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을 살아내는데 누가 소극적이겠는가. 다만, 인생은 주관적. 누구에게는 적극적인 삶의 모습이, 나와 비교했을 때는 소극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입들이 입사하고 난 뒤, 함께 해외 법인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K 드라마 붐 덕분인지 법인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했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우리와 한국어로 대화해 보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미팅에 끌려다니며, 신입들에게 법인 사람들과 잘 어울려보라는 미션을 하사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업무를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인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게 출장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이후 수개월의 출장 중, 그들은 법인의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다. 이유는 해외 법인 직원들이 우리 팀원들보다 활발한 게 이유였다. 팀원들은 그들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은 그들끼리만 붙어 다녔다. 점심시간에도 둘은 홀연히 사라졌고, 업무 후 식사 자리 초대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며 도망가곤 했다.
물론 당시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도. 이렇게 친해지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 아닌가? 아니, 백번 양보해서 성향이 달라서 부담스럽다고 치자. 그렇지만, 이건 업무적인 네트워킹 아닌가. 개인적으로 친해져서 MBTI나 취미활동을 공유하라는 것이 아니다. 업무적으로 소통이 용이하도록 서로 알아갈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내게는 부담스러움은 핑계이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다양한 우리가 만난 사회라는 공간에서, 누군가 내 기대만큼 적극적이길 기도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같은 조직 내 머무는 이상,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개성이나 성향이라 불리는 것들이 고려되어야겠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그들이 조직의 목표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정말 마음이 거기까지 밖에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사회는 이 경우에도 리더가 더 잘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팀원들이 조직의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것도 리더가 비전을 잘 제시하지 못한 것이고, 마음이 거기까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더래도 리더가 각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사람이 가장 최선의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완성형으로 만난다. 즉, 내가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들도 그들이 따라올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정해져 있지 않다고,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게 리더의 역량이라고 하는 사람은 꽃길만 걸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근데 이게 모두 나의 책임이 되어버리니 나의 어깨는 항상 무겁다. 그리고 왜 세상은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지, 왜 팀원들에게는 이렇게 엄격한 잣대가 요구되지 않는지, 화도 났다가 죄책감도 들었다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