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
나의 승진은 조금 특별했다.
내가 팀을 옮기면서 팀장이 되긴 했지만, 원래 팀에 일 잘하는 직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팀장감"이라고 지목되던 팀원이 있었다. 그렇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고 했다. 징계 위원회가 열릴 만큼. 그래서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녀는 당시 3개월 동안 휴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쉬는 3개월 동안 살이 정말 많이 빠져왔는데, 어떻게 살이 이렇게 많이 빠졌냐 했더니, 술을 끊은 탓이라고 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그녀는 우리 부서에 소문난 일 중독자였다. 야근도 8-9시가 아닌 새벽 1-2시를 넘겼고, 그녀를 스쳐지나기만 해도 공기 중에 스트레스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름 친절했는데, 은연중에 느껴지는 무기력함이 그녀를 다가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니 잠이 들기 위해 술을 마셨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고, 쉬는 동안 감정이 회복되며 살도 빠졌겠거니 했다.
팀장 발령 공지가 나간 날,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달달 떠느라 그녀의 감정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팀에서 목소리가 큰, 불만을 얘기할 것 같은 주동자들의 눈치만 살폈고, 며칠 뒤 그녀는 아무 예고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면담을 요청하여 팀장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렇지만 그녀는 바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나는 메일함을 통해 그녀가 사직원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알 수 없는 불쾌감에 휩싸였다. "미리 언질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참 못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자기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놓친 자리에 내가 앉은 건데, 나한테 괜스레 화풀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한번 마음이 삐뚤어지자, 퇴직 면접에서 보인 그녀의 눈물이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이 어리석은 자여...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내가 배운 바로는, 그녀는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선 일을 해왔다. 그래서 여러 번 퇴사 의지를 밝혔던 것 같은데, 그 당시 팀장님이 믿을 곳은 그녀밖에 없어서 그녀를 놓아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회사에 모든 것을 갈아 넣었는데, (과정은 어찌 됐든) 회사는 그녀를 놓아버린 셈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그녀가 떠나가고, 그녀가 담당하던 일은 다 내 차지가 됐다. 이 모든 걸 끌어안고 있었던 그녀가 대단하기도 했다가 안쓰럽기도 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수십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공지가 나간 그날의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됐다.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를 쏟아부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말걸 후회되었을까. 아님 본인을 그렇게 취급한 회사에 배신감이 들었을까. 그녀는 훨씬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는데 나는 단지 통보 방식의 결례에만 분개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지식뿐 아니라 감정에도 해당한다. 나처럼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미리 갖추는 게 중요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태풍을 지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