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
팀원도 아니고 팀장도 아닌 상태로 3-4개월을 어영부영 보냈다.
그렇지만 진전은 있었다. 팀원들과 일정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팀원들과 거리를 두는 게 뭐가 어렵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팀원들 간의 연차가 촘촘했던 조직 사정 상, 모두가 친구고, 언니고, 동생이었던 상황으로, 갑자기 팀장이 되어 멀어진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한 두 달간의 일이고, 한 일이라고는 반말하다가 존댓말로 넘어간 것, 인스타 팔로우를 끊은 것 (나름 팀원들을 배려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사적인 질문 ("연차 때 무엇을 하는지")을 의식적으로 참았던 것과 같이 같이 하등 대단한 게 없는 일들인데,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고 외롭게 지나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던 와중, 고과 평가 기간이 도래했고, 팀원들의 개인 평가서가 내 메일함에 도착했다.
평가서를 가득히 채운 지난 1년간의 업무 기록을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평가하는 이와 평가받는 이의 간극이었다.
팀원일 때는 나와 팀장의 관계가 1:1이지만, 팀장과 팀원의 관계는 1: 多이다. 따라서, 본인 자신만을 바라보며 평가한 팀원과 팀원 전체를 평가하는 팀장의 의견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본인이 올해 팀에서 가장 많은 일을 처리했다고 했다- 야근을 불사하며 열심히 했고, 본인이 애정을 들여 해온 부분이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지만 팀장은 여러 명을 보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보다 조금 더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일에 대한 태도나 업무의 완성도 부분도 팀원 모두 상위 점수로 본인을 평가했다. 그렇지만, 점수를 줘야 하는 입장에서 줄을 세워보자면, 100의 업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80%를 하고 업무를 완수했다고 여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120%까지 챙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감당 가능한 선까지만 업무를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과감히 도전해 보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팀장이 보기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상대적인 수치로, 본인의 입장에서는 100%를 다 한 것이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본인을 평가할 때는 언제나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고, 얼마 전까지 나도 그랬다.
이와 같이 본인들의 평가를 최고로 작성해 낸 사람들에게,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팀장으로서 내가 준 고과의 적정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초보 팀장에게, 그리고 예쁘게 포장하기에 약한 ISTP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벌이 아닐 수 없다.
역시나 팀원들의 반발은 거셌다. 이유인즉슨, 내가 오고 나서 일이 급격히 줄어, 본인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는 시기에 평가가 이루어진 게 불공평하다는 것이었고, 올해 본인들이 수행했던 일들을 빠짐없이 적어 추가로 제출해 왔다.
그렇지만 나는 조직의 평가가 일의 양과 정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양의 업무를 소화했다는 것은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지만, 평가서 내에는 담길 수 없는 부분 (업무를 대하는 태도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나는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일은 많이 하지만 독불장군이어서 협업이 어렵거나, 일잘러지만 논의 없이 혼자 의사 결정을 내리고 공유를 해주지 않는 사람은, 조직의 핵심 인재가 아니라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풀어서 설명해야 했고, 내가 이만큼 일을 했다에 대한 어필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조직에 어떤 가치를 더했는지에 대한 어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갑자기 팀장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지난날 나의 모습을 반성한다. 나도 엊그제까지 저랬는데, 팀장님이 지금 나와 같은 말을 할 때 섭섭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니.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그냥 내 기준이 이상한 건가. 일 많이 한 친구들도 분명 당근은 필요한데, 내가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 친구들이 우리 팀을 떠나 다른 팀에 가면 인정을 받을 친구들 일지. 평가를 하고도 내가 괴로운 날들이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