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되다. 은설이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눕기까지 정말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침대방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엄마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읊조리니 은설이는 쿨하게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예요.”라 한다.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 그럴 것 같았다. 씁쓸했다. 침대에 누워서 이제 좀 쉬는 건가 했는데 은설이는 팔베개를 해달라고 한다. 기꺼이 해주던 것이 오늘은 참으로 버겁게 느껴지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졌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은설아. 엄마가 너무 힘든데 그냥 자면 안 될까” 은설이는 곧장 “네 알겠어요”라고 나지막이 말하더니 울먹이며 “아빠 보고 싶어요.”라고 한다. 나는 더 크게 한숨을 내쉰다. 탄식과 짜증이 함께 섞여서 나온다. 내 반응을 듣고는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내 귀에 바로 대고 크게 우는 은설이를 나는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서 은설이가 있는 쪽 귀를 손으로 막았다. 폭발하지 않으려고 정신줄을 붙잡는다. 심호흡을 해본다. 천장이 이렇게 가까웠나 싶어진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귓전에 흘러내린다. 끄억끄억 울음을 삼켜보지만 은설이는 내 반응이 이상했는지 제 울음을 멈추고는 나를 살핀다. “진정하는 거예요?” “응” 나도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은설이는 나로 인해 불안하고 두려우면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운다. 내가 은설이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면 듣는 말이다. 나도 은설이처럼 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우면 내일이 그려지지 않고 막막하면 보고 싶다고 말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없다. 그러곤 기도한다.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어머니. 하고 불러본다. 울고 있는 두 모녀에게 찾아와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으면 하고 바란다. 불쌍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불러본다. 사는 건 왜 이리 버거울까. 나는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하다고 느낀다. 멀쩡할 땐 와 나 멀쩡한가 싶은 맘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가 이렇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는 역시나 콘크리트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기분이다. 역시. 그럼 그렇지. 꿈꾸긴 뭘. 은설이랑 옆으로 마주 보고 누워서는 소리 없이 울었다. 휴지를 둘둘 말아서 내 눈 한 번 닦고 은설이 눈 한 번 닦고. 은설이 눈에서 불안함이 보인다. 이렇게 엄마 감정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아이를 보자니 억장이 무너진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같은 엄마 만나서... 다른 엄마들도 이런가. 은설이는 어떻게 자랄까. 그 와중에 우는 모습이 너무 아가 같고 예뻐서 씨익 웃었더니 덩달아 따라 웃는다. 같이 웃은 게 재밌다고 말한다. 엄마가 맘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데, 은설이는 엄마가 이렇게 휘청대니 얼마나 불안할까. 내 불안을 같이 먹고 자라는 은설이는 나처럼 고장 난 채로 자라지는 않을까 무서워졌다. 애써 ‘괜찮을 거야. 다 지나갈 거야. 하나님이 우리 은설이 지켜주실 거야.’ 속으로 주문을 외듯 다짐하며 은설이를 다독였다. 울고 나니 후련해진다. 은설이는 잠들었고 나는 마저 울며 쓴다. 약을 먹을 걸 그랬나. 병원에서는 언젠가 끊을 거라면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싶을 때 그렇게 유지해보고 힘들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새벽에 은설이가 깨는 바람에 잠이 부족해서 그러겠지. 바깥활동이 적어서 그러겠지. 집이 엉망이어서 그러겠지. 그러다가 결국은 원래 그렇지 뭐. 하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는 삶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난 이상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안심이 된다. “결국에 가서는 피하려고 했던 그 고통보다 피하려는 마음이 더 고통스러워진다.”라고 하던데. 무엇을 피하는 건지... 건져 올려지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맞는지... 봐야겠다. 정신이 좀 든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쓰다 보니 후련해지고 한결 가벼워졌다.
11.26.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