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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Dec 29. 2020

보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나


이름을 붙이는  내게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고서는 제목을 붙이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냥 제목 없이 날짜만 덩그러니 올려놓고 쓴다. 가끔씩 내가  글을 찾아보려  때에 헤맨다. 어디다가 무슨 내용을 적어두었는지 잊어버린다.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을  과제  하나가 ‘저널이었다. 나만의 저널을 만들고 일주일의 일기, 강의 내용, 느낀 점, 묵상 등을 여러 형식으로 자유롭게 쓰는 과제가 있었다. 연습장 하나에 겉표지를 만들고 거기에 저널에 이름을 붙이고 꾸미는  처음의 과제였는데, 나는 너무 어려웠다. 이름을 붙이면 사라질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나와 내가 쓰는 저널에 이름을 붙이다니. 여러 모습이 있는데 하나에 이름을 붙이면 다른 나머지가 날아가버릴  같았다. 모두  포함하는 이름을 붙이자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듯하고, 내가 모르는 나에는 어떻게 이름을 붙이나 싶어서 이도 저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여러 잡지들 중에 소설가 이청준의 인터뷰 부분을 오려 붙여 통으로 연습장 앞뒷면을 메꿔버렸다. 이청준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당신들의 천국책을 앞부분? 중간쯤? 읽다  것이 전부였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저널의 표지를 그분의 사진과 인터뷰 내용으로 덮다니. 종종 간사님들이 포스트잇에 피드백으로 이런저런 짧은 한마디를 적어주셨는데   질문이 있었다. 표지의 뜻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할  없었다. 몰랐기 때문이다.

이름 붙이기 어렵고, 다루기 어려운 사건이 코앞에서 알짱거린다. 무시하고 지나가고 싶은데   되고, 부정하고 싶고 지우고 싶지만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다. 분열된 자아가 이런 걸까. 상담 초기에  부분을 다루긴 했었다. 그래도  말하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괴로웠다. 어물쩡 넘어갔다. 괴로워하면, 다시 그러지 않으면, 지금도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면, 그러면 용서를 받을  있을  같기도 했다.  모르겠다. 나는 무능했다. 그리고 무감각해져 갔다.

 안의 폭력성은 어린 때에도 있었다. 짓궂다고 말하기에는 과한, 그런 괴롭힘을 즐겼다. 동생에게 그랬다. 동생은 뾰족한 끝을 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나는 약점을 알고 공략했다. 장미꽃 한 송이가  집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송이 포장하면 끝이 뾰족한데  부분을 일부러 보라고 얼굴에 디밀었다. 싫다고 표현해도 계속 웃으면서  찌를 테니까 보기만 하라고 종용했다. 놀리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의 심정을 안다. 괴로워하고 반응이 크면  재밌어지기 마련이다. 한 번은 부엌칼을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정색을 하면서 누나  그러냐고 항변하는, 아무리 나이가 많았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되는 동생에게 그렇게 놀려댔다.

초등학교 저학년   짝꿍이 특수학급 아이였다. 이름도 기억이 난다. 외모도 기억이 난다. 목소리는 헬륨가스를 마신 것처럼 앙칼지고 얇았다. 작은 키였던 나처럼 키도 작았다. 덩치는 너무 작아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말랐었다. 살이 너무 없어서였나 조금 주름진  같은 얼굴이었고 머리칼도 밝은 갈색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손가락을 보면 앙상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를 괴롭혔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바지를 내렸다. 바지만 내리려고 했는데 실수로 속옷까지 내려졌다. 아니, 실수였을까. 나는 괴롭히는 데에 있어서 대범했다.  아이는 누가 봐도 약자였다. 나는 강자는 아니었지만 비열했다. 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우는 아이에게 웃으면서  아이의 말을 따라 했다. 친구는 자리에 주저앉아 엎드려 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의수를  친구가  짝꿍이 되기도 했었다.  친구는 더운 여름에  씻지 않아서 냄새가 났다. 자연스럽지 못한 의수를 착용해야 해서 땀이 찼을 수도 있다. 의수는 더러워 보였다. 냄새가 난다고 핀잔을 주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었다.

키가 작은, 왜소증이라고 하나, 키가 많이 작고 팔다리도 짧은 친구가  짝꿍이 되기도 했었다.  친구는 내가 괴롭히던 약점이 빤히 보이던 친구들과는 달랐다. 공부도 잘했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 항상 당당해 보였다. 결정적인 것처럼 느껴진 것은 등하교 시간에  아이의 엄마를 자주 마주쳤었다. 나에게 말도 걸어줬던  같다. 나는 착한 아이처럼  어머님에게 인사를 하고 전혀 괴롭히지 않을 것처럼 안심시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나였을까. 내가 괴롭히던 많은 친구들, 그리고  아이들 말이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안에 약하고 모자라고 병신같이 보이는 모습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런 식으로 흘러나간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이를 때리고 째려보고 한심하게 대하면서 속으로 수없이 내뱉었던 , 병신 같아. 더러워.  말이 돌아와서 나에게 꽂힌다.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제야  말은 주인을 찾았다. 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느 곳에서도 용납받지 못하고, 그럴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벌어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웠다. 겉으론 무탈해 보여도 속으로 곪아 터져 가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뺨을 갈겨대며 말했었다. 벽에 머리를 박으며 속으로 새겼다. 죽어. 등신아. 하등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사냐.

 아빠 탓을 하고 싶은 나다. 내가 들은 거라곤 그런 메시지뿐 아니었나. 내가 아무리 나의 세계를 세워보려고 해도 아빠의  한마디, 아니 한숨  번에 소리 없이 스러지는 오두막  되었다. 나는 어떤 소리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자꾸만 아빠의 말이 진리처럼 들렸다. 어제도 아빠와 통화를 했다. “부채가 얼마나 되냐, 아빠가 도와줄까?”  말에 대출금이 얼마인지 말했더니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 그러고 사냐.” ..  그러고 사냐니. 아빠는 내게 “재밌게 살아? 느그들이 재밌게 살면 그걸로 됐어.”라고 한다. 나는 욱해서 말한다. “ 재밌게 살아. 목숨 붙어있으니까 사는 거지. 아빠도 맨날 그랬잖아. 죽지 못해 산다고. 나라고  달라?” 머쓱한지 아빠는 웃는다.  말이 맞다고 한다. 죽지 못해 사는 괴로움을 알면서... 야속하다. 아빠의 한마디는  세계를 이루는 주춧돌이 되었다.  집을 부수고 싶다. 짐을 싸들고 나와서 서성인다. 어디에  집을 지을까. 춥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안의 약한 모습을 죽이고 싶었던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품지 못하고 애꿎은 아이들을, 존재로 내게 가르쳐주는  아이들을, 몰라보고 자꾸만 죽이려고 들었다. 헨리 나우엔이 라르쉬 공동체에서 아담을 만나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그들을 만나서 친구가 되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진 세상과 다를  없는 나의 세계가 그들에게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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