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시간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사생대회에서 글쓰기로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의외였다. 상을 받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썼던 첫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비 오는 날,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러고는 스스로 답을 하며 글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나중에 제출했던 종이를 다시 받았을 때 첫 부분의 자문자답 형식에 선생님이 동그라미 표시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이 부분 때문에 장려상을 받은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다른 아이 엄마들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북적북적한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실내화를 신발주머니에 넣고 나서는 나는 기다렸다. 오지 않을 엄마를. 우르르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나처럼 엄마가 오지 않아서 비를 맞고 하교하는 몇몇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걸음을 떼었다. 운동장에는 여기저기 물 웅덩이가 크고 작게 생겼다. 세찬 비였다. 마치 영상처럼 각인되어있는 기억이다.
나는 그때 괜한 부끄러움에 엄마를 기다리는 ‘척’을 했던 걸까.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희망을 걸고 기다려 본 걸까. 글쎄, 나는 그저 보고 있었다. 엄마와 우산을 함께 쓰거나 건네주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삼삼오오 친구들과 우산을 나눠 쓰고 깔깔깔 웃으며 돌아가는 아이들을. 그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홀로 비를 맞고 재빨리 혹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몇몇의 아이들을 보고 나서야 천천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는 그때 그렇게 나를 인식했나 보다.
고등학생 때였나. 하굣길에 비가 쏟아져서 집에 전화를 해 엄마한테 와달라고 했다. 짜증 섞인 잔소리만 듣고 끊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냥 빨리 집에 뛰어오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서운하고 화가 나는 마음으로 ‘청승맞게 비를 맞고’ 집 주변을 한참 배회하다가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세찬 빗줄기가 눈을 뜨고 앞을 제대로 못 보게 하기도 해서 꼬질꼬질 젖어버린 내 발끝만 보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참 이상하지 싶다. 이렇게 비에 관련된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비를 좋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꾸리꾸리 한 날씨가 퍽 좋기도 했고 비가 오면 금상첨화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비로 위로를 받았던 듯싶다. 엄마는 곁에 없었지만 친구도 곁에 없었지만 비는 나와 가까이 있었다. 내 피부로 와 직접 떨어지는 빗줄기는 내 감각을 살아나게 했다. 내가 숨을 쉬는지 인식하게 된다. 으스스 추워져 소름이라도 돋으면 내 안의 열기가 확인된다. 젖은 모래알을 밟을 때 나는 사그락 사그락 소리에 귀가 열린다.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빗소리를 들으면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될 뿐이다. 어디 그뿐이랴, 비에 젖은 모든 만물은 색이 선명해진다. 희뿌연 회색 빛의 아스팔트도 반짝반짝 짙은 회색으로 빛이 난다. 달리는 자동차의 희미한 불빛도 비에 젖으면 쨍하게 그 빛깔이 드러난다. 말해 무엇하나. 자연은 정말 살아 움직인다. 비에 젖은 나뭇잎은 각자 싱그러운 연둣빛을 내뿜고, 가뭄에 쩍쩍 벌어진 논바닥처럼 바짝 말라 보이는 나무기둥은 물을 흠뻑 머금고 고유의 빛깔을 찬란하게 보여준다. 살아있던 거지만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본연의 모습이 이토록 아름답다고 비로소 위상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고맙게도 아이도 비를 좋아한다. 비만 오면 ‘와~ 엄마가 좋아하는 비 온다.’ 하며 콧노래 부르는 내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참 다른 아이와 나의 얼마 없는 교차점이다.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산책을 간다. 물 웅덩이를 발견하면 이내 달려가 참방참방 장화 신은 발로 동동거린다. 햇살 쨍쨍한 날보다야 훨씬 즐거운 산책이 된다. 아이는 물 웅덩이에 집중하고 나는 오롯이 비에 집중할 수 있다.
내리는 비는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나를 불러내어 또 다른 세계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비가 고마운 이유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세상살이는 고달프고 버겁기만 한데, 마침내 내리는 비는 목마른 채로 하염없이 걷던 나에게 해갈을 선물한다. 다시금 비를 기다린다. 그때까지 또 열심히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