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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웅 Nov 16. 2018

"제사를 함께 지낼 형제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

제가 종손이랍니다. 제 처는 결혼한 후 그 많은 기일과 명절가례를 불평 한 마디 없이 (자학적 농담은 많이 ㅠㅠ) 척척 치렀습니다. 우리집 제사와 가례는 기독교식이지만, 일단 식구가 모이면 대단한 규모가 되기에 어머니를 포함한 며느리들의 초인적 희생이 없이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제사 개혁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개혁론은 아버지 형제 연합의 반대에 막혀 주로 실패로 돌아갔죠. 아버지 형제는 네 분이십니다. 저는 착한 남동생이 한 명 있구요. 저는 또한 아들 하나 두고 있습니다. 3대를 보면, 남자 형제가 넷, 둘, 하나로 줄고 있네요.  

제사 및 명절가례 개혁론?

명절마다 흘러나오는 며느리 하소연을 듣다보면, 이게 남자들이 나서서 돕고말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 노동력 동원이란 문제가 가족 경제와 전래 규범이 얽힌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의 결단으로 추석에 해외여행 갔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화적일 뿐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뭔가 제도적 개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첫째, 체계적 개혁안이 제시된 바 없습니다. 누가 제사 개혁론을 체계적으로 논변으로 만들어 설득에 나선 적 있었는지요? 개별 종교의 관점에서 개혁론이나 여성주의적 관점의 탄원만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보편적 이념이나 가치에 근거해서 개혁안을 제기했을 법도 한데,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여성주의 관점의 비판이 대세죠. 그러나 제사와 명절 가례를 대폭 간소화하거나, 일괄 폐지하거나, 아니면 시가처가 공평대우론과 같은 대규모 개혁론이 성공한다고 해도 여성의 심원한 원망을 해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제사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가중하는 요인이지만,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은 아닙니다. 제사 없이도 여성은 얼마든지 차별받고 억압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 생각은 일종의 사회변동론이면서 동시에 소통 전략적 관점을 포함합니다. 제 생각의 전반부는 ‘제사의 제도적, 정신적 기반 붕괴론’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요컨대, 가족관계가 변하기에 제사를 지탱하는 물질적 제도와 유대감이 급속하게 소멸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이 전반부 주장을 수용하는 순간 ‘제사를 의례로 지속할 수 있을까' 염려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런 염려와 더불어 ‘제사의 의미에 대한 반성’이 제사와 명절 가례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의심, 염려, 반성이 의례의 구속성을 허물기 때문입니다.

제사의 기반 붕괴  

제사와 명절 가례는 가족이란 제도를 유지하는 의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농경사회의 친족, 즉 (가) 농지와 선산이라는 제한된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나) 농경사회에서 귀한 생산요소인 노동력을 동원하고, (다) 멸문 같은 재생산 위기요인을 통제하는 친족을 의미합니다.(*) 이를 전통가족이라고 부릅시다.

전통가족은 자산, 위험, 노동력을 관리하기 위해 연대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은 물론 세밀한 도덕규범으로 구성원을 규율합니다. 자산, 노동력, 위험을 공동 관리하는 남자형제들의 협동이 전통가족이라는 제도를 지탱하는 뼈대입니다. 종손과 그의 동렬 형제들이 수행하는 제사와 가례는 친족간 유대감을 재생산하는 근육 활동입니다. (따라서 명절에 친족이 모여 결혼과 출산 가능성을 묻고 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남자 형제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 자녀 가정이 대세입니다. 또는 두 자녀 남매나 자매, 또는 아예 자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 형제가 없으면 결국 삼촌이 없어집니다. 삼촌이 없으면 사촌이 불가능합니다. 이는 곧 할아버지 제사를 함께 모실 친사촌 형제가 없는 것은 물론, 아버지 제사마저 함께 모실 남자 형제가 없는 집이 압도적 다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까운 미래의 가장은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남자가 있더라도 공부나 취업준비로 정신없는 미혼 아들이거나, 아니면 따로 살며 ‘티 나게’ 며느리 눈치를 보는 기혼 아들일 겁니다. 자신이 죽은 후 기일과 명절에 며느리가 꼬박 제삿밥을 차릴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장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가장은 함께 제사를 지낼 형제가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그가 처나 며느리에게 명절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자고 주장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청이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와 2011년 장래인구추계를 이용해서 추계한 장래 가구변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족구조의 변화는 이미 극적으로 변화했고 앞으로도 같은 추세가 계속됩니다. 가구 내 평균 가구원 수가 줄고, 1인 가구가 늘고, 가구주의 미혼 및 이혼자 비율은 늘고 있습니다. 1인가구와 부부가구의 노령화가 압도적인데, 특히 이중 70대 이상 가장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0년 현재 1천735만 가구 중에 1인가구와 비친족가구를 제외한 친족 가구는 1천300만 가구인 75%입니다. 이 중에서 자녀가 없거나 1자녀인 경우 6백2십만 가구, 2자녀 이상인 경우가 4백만 가구라고 합니다. 2자녀 이상 가구 중 남자형제가 1/4이 넘는다고 후하게 추정하더라도, 전체 가구의 8% 이하, 전체 2인 이상 친족 가구의 10%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2035년이 되면 이 비율이 각각 3.5%와 5%가 됩니다.

조상신의 표정

가족 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가족은 이제 형제간 자산, 노동력, 위험을 공동 관리하는 단위라기보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투자를 관리하는 단위로 기능하게 됩니다. 자녀에 대한 투자는 과거 전통가족에서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친족이 공동관리했습니다. 지금처럼 부부가 모험적이며 총력적인 방식으로 투자하는 성격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제 부모자식 간 투자와 보상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가족 내 다른 어떤 상호작용보다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이사 다니고, 과외비를 마련하고, 얼굴과 피부까지 고쳐주며 친애함을 과시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투자에 답하여 입학, 취직, 결혼으로 가치를 실현하는데, 흥미롭게도 부모에게 직접 보상하기보다 그의 자식에 대한 재투자로 가치사슬을 확대합니다. 저는 이를 가족 내 친애의 재생산의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 해석하고 싶습니다. 과거 전통가족 내에서 ‘제한된 자산과 모호한 위험을 엄격히 관리하던’ 부자지간에서 ‘친애를 재생산하는’ 부자 내지 부녀지간이 되는 겁니다.

친애의 재생산이 의미하는 바가 심오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상신이란 결국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형제들의 귀신을 의미합니다. 전통가족의 조상신은 과거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후대에게 말했던 방식으로 후손을 대했습니다. 때로 엄하게, 주로 무뚝뚝하게 말입니다. 할아버지나 작은 아버지 앞에서 자식에게 도저히 살갑게 다가설 수 없었던 과거 아버지들의 아들에 대한 소통방식이기도 합니다. 제사를 지낼 때 후손이 느끼는 엄숙함이란 이런 조상신들이 후손에 대해 짓는 표정에 대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애함이 유전하는 새로운 가족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후손이 조상신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 태도는 조상신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도 복종심도 아니고 의례적 효도나 존경과 같은 과시적 감성도 아닙니다. 친애함을 전하는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가 달라졌듯이, 조상신의 표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그것은 디지털 앨범과 동영상, 블로그와 카톡 사진 등과 같은 새로운 양상의 상징물로 유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전통가족이 치르는 제사가 남자형제가 자산과 위험을 관리하던 시대의 엄한 부자지간의 소통양식을 반영한다면, 새로운 가족의 제사를 포함한 가례는 친애한 부자 및 부녀지간의 소통양식을 반영합니다. 당연히 귀신과 소통하는 방식도 변하게 됩니다.

제사의 구조적 변화

제사가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의 요점이 의례의 필수요소인 표현성 자체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제사의 요점은 ‘함께 모신다’는 데 있습니다. '함께' 제사를 지낼 친족이 없는 제사란 표현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제사입니다.  

홀로 지내는 제사란 사실 '기도'와 유사한 어떤 것이 되고 맙니다. 제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가족 내 표현적이며, 과시적이며, 연행적인 수평적 소통’이 없어집니다. 가족 내 소통은 제사가 아닌 다른 행사에서 기능적으로 대체됩니다. 제사를 수행하는 주체가 이 변화를 눈치채는 순간 제사는 그 마법과 같은 효력을 잃고 맙니다.

여기 미래의 한 가장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홀로 제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마 몇 번은 제사를 모실 겁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될 겁니다. 홀로 지내는 제사란 요점이 없다는 것을.

http://kostat.go.kr/portal/korea/kor_nw/2/2/6/index.board?bmode=read&bSeq=&aSeq=255176&pageNo=1&rowNum=10&navCount=10&currPg=&sTarget=title&sTxt=

* 제 관찰에 따르면 선산이 자산에 포함되어 기능하는 바가 매우 중요합니다. 동원 노동력에 며느리의 가사노동이 결정적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조선후기 양반의 양자 입양이 주로 친족집단 내에서 계자선택으로 이루어졌던 까닭도 생각해 봅시다.
** 5인 이상 가구 내 자녀수에 대한 통계가 없어서, 제가 어림법으로 추산했습니다. 2035년 추계가구 내 비율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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