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결혼

2021년 4월 우리의 결혼식

by 열심히

“결혼했어요?, 몇 살이에요? 어려 보이는데”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2021년 4월. 서른을 앞두고 우리는 10년 연애를 마치며 결혼을 했다.

신혼인 친구들은 “어서와~ 웰컴 유부월드~”라고 환영을 해주고, 결혼한 언니들은 “더 놀아야지 너무 빨라. 천천히 오너라. 아직은 어려 어려.”라는 말을 했다.

언니들은 왜 천천히 결혼을 하라는 걸까? 사실 이유는 알고 있지만 난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기간 연애로 나에게는 11년 연애는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코시국에 우리의 9주년이 지났고 10주년을 앞두고 우리는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가 원하는 데로 결혼식 준비를 하라고 노관심 모드셨다.

처음에는 ‘우리의 결혼식’ 우리 둘이 하고 싶은 데로 하자! 생각으로 모든 게 신나고 설렘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 준비가 처음이었다. 관심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이 규정 때문에 제대로 된 상견례도 못하고 우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결혼을 위해 양가 간 상견례 모임을 하는 경우 예외.라는 점. 코로나가 괜히 미워졌다.


웨딩플래너 없이 시작한 결혼 준비는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켜있었다. 우리는 첫 번째로 결혼식장을 알아보았다. 예약 없이 무작정 웨딩홀 상담실로 찾아갔다.

“어떻게 알아보고 오셨어요?” 직원분께서 물어보셨다.

“홈페이지에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상담하러 왔어요.”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직원분이 당황하셨다. “웨딩플래너 없이 무작정 찾아오는 신부님은 처음이에요.”라면서 웃으면서 상담을 시작했다. 파워 J인 나는 예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서 무대보로 결혼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웨딩홀을 투어를 했다.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다른 웨딩홀은 투어 가기 전에 꼭 전화로 문의해 보고 가세요.” 알려주셨다. 5곳 정도 웨딩홀 투어를 하고 우리는 첫 번째 웨딩홀을 선택했다. 무대보 상담이 아닌 가계약하러 예약하고 상담실에 방문했다. 직원분이 나를 너무 잘 기억하고 계셨다. 이런 신부님은 처럼이라면서 홀 대여비며 식비며 과감하게 할인을 해주셨다. “쉿! 어디 가서 이 가격에 했다고 말하면 안 돼요.” 당부 말을 남기셨다.


웨딩홀 하나가 끝났다. 하지만 예물, 예복, 부모님 한복, 신혼집 등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리스트는 아직이다. 한 번뿐인 결혼식이니깐 다 좋은 걸로 하자보다는 가성비를 생각하며 적당히라는 선으로 결혼식을 하고 남은 돈은 잘 모아두는 걸로 우리는 말했었다. 그래서 웨딩홀 패키지로 스드메를 한 번에 해결했다. 그때까지는 패키지가 좋았다. 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지금은 솔직히 후회가 남는다. 욕심 없는 내가 아쉽다는 건 다른 모든 신부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웨딩플래너 없이 일을 하면서 결혼 준비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다. 다들 결혼 준비를 1년 전부터 하는 걸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덧 결혼식 4개월 전 스튜디오 촬영을 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토탈로 이루어지는 곳이었는데 나는 공주 공주보다는 캐주얼 털털한 스타일이어서 메이크업도 드레스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안경 쓰는 나에게는 렌즈 끼고 있는 하루가 걱정될 뿐이었고 렌즈가 돌아가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드레스를 고르고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도 스튜디오에서 만난 헬퍼 이모님을 잘 만나서 편하게 촬영을 했다. 모든 나를 좋게 봐주셨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몰랐다. 스튜디오 사진에 가장 후회가 될 거라고는…

쉽게 쉽게 생각했다. 패키지 결혼 준비는 선택 장애인 나에게는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준비를 하면서 보는 게 많아지고 점점 나의 눈은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점점 우리의 결혼식이 다가오는데 예복과 예물 아무것도 우리는 완료한 게 없는 시점에서 웨딩잡지 하나를 구독하였다.

웨딩잡지를 받아보는 과정에서 웨딩 박람회를 가보게 되고, 그냥 구경만 하고 오자는 게 예복이면 예물이며 예약을 걸었다. 신중한 우리는 귀신에 홀리듯 계약금을 결제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의 결혼 준비에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구나. 이미 박람회를 왔을 때는 우리는 스튜디오 촬영이 끝난 뒤였는데 예물과 예복을 알아보는데 스튜디오 촬영할 때 많은 걸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것. 이걸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점점 결혼 준비를 하는데 지쳐가고 있었다. 모든 선택을 할 때면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라는 답을 고민도 없이 말했다. 혼자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가성비로 결혼식을 준비하자는 처음의 말과 다르게 예물은 청담동에서 예복은 압구정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웨딩플래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래도 지금 와서 결혼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후회는 없다. 다시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이생에 결혼은 한 번 뿐이라면서 두 번은 안된다고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찍자고 그때 이번에 못한 거 다하라고 위로했다.

우당탕탕 결혼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맞이했다.



20살 봄에 꽃잎처럼 찾아온 소중한 인연

모든 순간을 같이하며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부부라는 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귀한 발걸음 하시어 저희의 새로운 시작에

행복한 꽃길만 있기를 응원해 주세요.



생각한 거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결혼식 주간에 급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부모님 손님들은 대부분 오시지 못하셨고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가족과 함께 결혼식을 진행했다. 평소 안경 쓰는 나는 결혼식 당일에도 렌즈가 돌아가서 앞이 잘 안 보였고 사실 잘 보이지 않으면서 계속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문득 결혼식을 생각하다 보면 신부는 왜 대기실에만 앉아있어야 하죠?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나도 손님 반갑게 뛰어다니면서 맞이하고 싶었다. 축하해 주러 오신 감사한 분들. 신부 대기실에서 밖에 상황은 알지 못한 채 마네킹이 된 거만 같았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결혼식인데 내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신부 대기실에 있는 현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결혼식 당일에는 긴장감과 떨림에 아무것도 못했다.

정말 정직하게 지킨 코로나 방역 수칙. 웨딩홀 인원 99명, 연회장 인원 150명 인원 제한. 너무 칼같이 지켜주셔서 친동생마저도 앞에서 가로막았다. ‘저기 아저씨 가족은 막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사진 촬영 무조건 마스크 착용! 그렇게 친지 가족 외에 모두 마스크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우리는 코시국에 결혼식을 잘한 걸까?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우리 결혼식에 대해서 만족했다고 말한다. 다들 우리 결혼식 이야기하면 음식 너무 맛있었다고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고 그러고 보니 축하해 주신 분이 모두 좋은 평을 남겨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코시국이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사실 후회는 없다. 11년 연애는 싫었고 하지만 연애 9년 차에는 아직 아니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국에 결혼한 모든 부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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