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한 달간의 기록
✒️ 정담훈 (Jung Dam-Hoon)
오늘로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딱 한 달이다.
승인 메일을 받던 그 순간,
나는 마치 작은 깃발을 손에 쥔 탐험가처럼 들떴다.
그 깃발을 세울 땅이 ‘글’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건 노동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축복이었고,
의무가 아니라 매일의 축제였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은 춤을 추고, 감정은 피어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도파민도, 엔돌핀도
모두 내 문장에서 솟아나는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생명력 전체가 한 번에 터지는 경험이었다.
시, 칼럼, 소설, 에세이.
나는 여러 도시를 걷듯 장르를 거닐었다.
골목마다 언어의 냄새가 다르고,
건물마다 문장의 높낮이가 다르다.
때론 익숙한 동네에 눌러앉고 싶어지기도 했고,
때론 생경한 언어의 풍경에 눈이 머물기도 했다.
어디에 정착해야 할까.
혹은 떠돌며 기록하는 방식이
나의 글쓰기일지도 모르겠다.
플랫폼은 끊임없이 숫자를 던진다.
좋아요, 구독자 수, 조회수.
그 숫자들은 때때로
내 글의 맥박보다 더 큰 소리로 뛰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좋아요 하나가, 종종 책 한 권의 리뷰보다 깊을 수 있다는 것을.
공감은 도달률이 아니라,
한 사람의 머뭇거림 속에서 태어난다.
누군가 내 글을 붙들고
다시 한번 읽어준다면,
그건 클릭이 아니라 응시다.
그래서 나는,
라이킷에 연연하지 않는 작가들과의 연결이 소중하다.
보여주기보다 건네기를 택한 사람들,
그들의 문장은 오래 남는다.
“책 안 냈으면 작가도 아니지.”
“브런치? 그냥 블로그 아닌가?”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작가란, 반드시 활자의 인쇄소를 통과해야 하는 존재인가.
굵은 등번호를 등에 붙이고
정식 무대에 올라야만
진짜 선수라 불릴 수 있는가.
침묵 속에 글을 쓰고,
누구도 모르게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작가는 단지 출판 여부로 구분되는 직함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방식’이다.
자기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매일 깎고, 다듬고, 견디는 태도.
하루 한 줄이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말을
세상에 조심스레 건네는 사람,
그 문장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귀를 기울여 준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작가다.
책은 글의 정장이다.
제대로 재단된 말과 편집된 시간 속에서
무대를 갖춘 형식이다.
하지만 글의 본질은 늘 맨살에 가까운 곳에 있다.
날것의 감정, 다듬어지지 않은 떨림,
때론 비문처럼 일그러진 문장 속에서
가장 깊은 ‘진짜’가 나온다.
반팔 티를 입었다고
그 글이 덜 진짜인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글일수록
몸에 가장 가까이 닿는다.
작가란, 출판의 외피가 아니라
매일 글 앞에 앉는 태도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체성이다.
"작가"라는 단어 앞에서 주춤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면 ‘작가’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을 내야만 작가인가? 상을 받아야 작가인가? 누군가가 불러줘야 비로소 작가인가?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자격’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방식’입니다.
작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낸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어떤 사람은 말로, 어떤 사람은 눈빛으로,
그리고 어떤 사람은 글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 글이 짧은 SNS 글이든, 일기든, 메모장이든
당신이 감정을 붙잡고, 사라질 기억을 적어두려는 순간
이미 당신은 작가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브런치는 나에게 아직 미완의 실험실 같다.
매일 새로운 시도들이 쏟아지고,
무수한 문장들이 실험대 위에 놓인다.
그 문장들은 각기 다른 체온과 방향을 가진 채
서로를 밀고 당기며
이 작은 생태계 안을 부유한다.
여기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완전한 작가는 되지 못한다.
멤버십 기능이라는 이름 아래
기회의 문이 열린 듯 보이지만,
그 문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기준과 유리벽 너머의 구조에 닫혀 있다.
알고리즘은 조용히 작가를 선별하고,
우리는 그 판단의 로직을 모른 채
글이 아닌 ‘노출’과 ‘구간’에 흔들린다.
작가들 사이엔 묘한 기압 차가 흐른다.
누군가는 정중하게 거리를 두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빛을 건네며
서로의 글을 관찰한다.
대화보다 더 예민한 언어가
이곳에선 ‘침묵’으로 전달된다.
그럼에도 브런치는
여전히 살아 있는 플랫폼이다.
왜냐하면,
단 한 편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흐릿한 순간에
한 문장이 흘러들어와
그 사람을 붙잡는 순간이 있다.
그 조용한 충돌이,
이곳의 가장 강력한 움직임이다.
우리는 다만,
각자의 노를 저어 같은 강을 흐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서두르고,
어떤 이는 천천히 흔들리며 나아가고,
어떤 이는 잠시 노를 멈춘다.
그러나 모든 움직임에는 글이 남는다.
흔적이 되고, 결이 되고, 물결이 된다.
그 잔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브런치를 이루고 있다.
글로 서로를 향해 실험하고,
글로 서로를 관찰하며,
우리는 이 실험실 안에서
매일 ‘작가’라는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다.
글을 쓴지는 좀되었지만 세상에 내보낸건
브런치를 통해서다.
글을 쓰는 것은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흔들리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작가로 산다는 건
완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이 문장은 정말 나를 닮았는가.’
‘내 글을 기다릴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까.’
‘나는 오늘, 어떤 감정을 입고 세상 앞에 설 것인가.’
그 질문들은 날마다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내 안의 가장 연약한 층을 건드린다.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의심하고, 지우고, 다시 쓰고, 다시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문장이 된다면,
그 떨림이 누군가의 마음과 공명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이 되지 않을까.
불안은 정지의 징조가 아니다.
그건 방향이 있는 떨림이다.
멈추지 않기 위해 흔들리는 것.
글은 그 불안을 연료 삼아 나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다.
우리는 그 도구로 마음을 꿰매고,
기억을 수선하며,
결국 자신을 써 내려간다.
오늘도 나는,
글 앞에 조용히 앉는다.
좋아요가 하나라도,
그 하나의 눌림은 누군가의 ‘숨’이자 ‘응시’다.
나는 지금,
글이라는 숨결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숨이 이어지는 한,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작가는 수천 명 앞에 서기 전,
한 사람의 마음에 먼저 닿아야 한다.
브런치에서, 오늘도...
✒️ 정담훈 (Jung Dam-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