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연애학 - 기대

사랑을 기다리는 설렘

by 정담훈

15화. 기대 감각 — 사랑을 기다리는 설렘


✒️ 정담훈 (Jung Dam-Hoon)


기대란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먼저 꺼내어 가슴속에 살아보는 일이다.


약속이 있는 전날 밤, 불 꺼진 방에 누워 있으면

눈은 감겼는데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내일 마주할 얼굴,

웃을 때 입술 끝이 오르는 모양,

카페 유리창에 번질 빛까지 미리 그려 넣으며

가슴은 내일을 선물처럼 앞당겨 꺼내 쓴다.


기대는 꽃봉오리와도 같다.

아직 닫혀 있지만, 이미 안쪽에서 피어날 준비를 한다.

우리는 그 속에 담긴 향기와 색을

먼저 상상으로 꺼내어 즐긴다.

그래서 피지도 않은 꽃이

마음속에서는 먼저 활짝 피어난다.


길 위의 기다림은 더욱 생생하다.

카페 창가에 앉아 괜히 시계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김 서린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본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들어

올라오는 발걸음들 사이에서 그 얼굴을 찾는다.

발소리 하나에도 심장은 두근거리고,

휴대폰 불빛이 켜지는 순간에도

‘혹시 그 사람 일까?’ 하고 가슴이 출렁인다.

기대는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짧은 눈빛 하나로 하루 전체를 환하게 바꿔놓는다.


기대는 편지와도 닮았다.

아직 열어보지 않았는데도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미리 상상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선물을 받은 듯하다.

글자를 읽기도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느껴버린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달콤하지만은 않다.

버스가 늦게 오고, 메시지는 한참 동안 오지 않는다.

짧은 대답 하나에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랑은 늘,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 흔드는

진자(振子) 위에 놓여 있다.

그 흔들림이 때로는 아프지만,

멈추지 않기에 사랑이 살아 있음을 알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기대한다.

한 줄의 안부,

“잘 들어갔어”라는 짧은 말,

잠들기 전 건네는 고마움 한마디.

그 작은 순간들이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대는 음악처럼 다가온다.

공연장 불이 꺼지고, 첫 음이 울리기 전의 침묵.

불안과 설렘이 겹쳐진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이미

노래를 시작한다.

사랑도 그렇다.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우리는 수백 번 가슴속에서

연주한다.


기대는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지닌다.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빛은 더 선명해지고,

기다림이 길수록 만남의 순간은 뜨겁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진동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랑은 결국,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을

수없이 마음속에서 먼저 살아내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설렘이야말로

우리를 내일로 이끄는 가장 아름다운 힘이다.


기대란, 다가오지 않은 사랑을

미리 꺼내어 쓰는 작은 기적이다.

흔들림 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진자(振子)의 리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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