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은 타지 않기 위해 눌러앉는 것이다

by 정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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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격살》9화. 인내심은 타지 않기 위해 눌러앉는 것이다


✒️ Written by 정담훈


오늘 구워볼 부위: 돼지껍질


인내심 [忍耐心 / Endurance]

참는다는 건,
벼랑 끝에 선 감정을
한 걸음 물러나 눌러 앉히는 일이다.


참는다는 건, 벼랑 끝에 선 감정을

한 걸음 물러나 눌러 앉히는 일이다.

그 한 걸음이 없으면, 우리는 쉽게 타버린다.

불길처럼 치솟는 말 한마디,

순간의 분노가 쏟아낸 표정 하나가

관계 전체를 태워버린다.

인내란 그 불 앞에서

조용히 자리를 옮겨 앉는 능력이다.

뜨거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름이 튀어도 판을 뒤엎지 않고,

그저 묵묵히 눌러앉아 있는 마음.

익는다는 건, 결국 견디는 일이다.

겉은 금세 타오를 수 있어도, 속은 시간이 필요하다.

삶이란 불판 위에서

가장 얇고, 가장 늦게 익으며, 그럼에도 가장 고소한 걸

사람들은 ‘껍데기’라 부른다.

껍데기는 얇다.

그래서 쉽게 찢어질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질기다.

불판 위에서 가장 늦게까지 버티며,

끝내는 가장 오래 기억되는 맛을 남긴다.

인내심도 그렇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그 속엔 누구보다 단단한 힘이 숨어 있다.

남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자리에서

끝까지 눌러앉아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서만 풍기는 고소한 향.

그것이 바로 인내의 맛이다.


돼지껍질을 처음 마주한 사람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걸 진짜 먹는다고?”

겉은 번들거리고, 익는 속도는 더디며,

먹는 방식마저 까다롭다.

그러나 고기를 아는 사람은 안다.

껍데기는 ‘가장 마지막에 굽는 고기’이자,

‘가장 오래 기억되는 맛’이라는 걸.

껍데기는 겉이다.

근육도 아니고, 내장도 아니고,

살코기의 본질을 감싸고 있는 외피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겉이

불판 위에선 가장 늦게까지 남는다.

타인의 시선에 가장 먼저 노출되면서도

끝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자리.


껍데기를 굽는 일은 인내를 굽는 일과 닮았다.

센 불 앞에 성급히 젓가락을 들이대면

껍데기는 질겨지고,

기름은 튀어 판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눌러주며 오래 기다리면,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사람의 인내도 그렇다.

서둘러 꺼내 보이면 미성숙해지고,

억지로 누르면 터져버린다.

그러나 묵묵히 눌러 담아

스스로 익혀낸 감정은

결국 자신만의 향을 품게 된다.


가족 모임에서 무례한 말이 나를 찔렀을 때,

곧바로 맞받아치지 않고

미소 한 조각으로 넘기는 사람.

회의 중 내 의견이 무시되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가도

펜을 꾹 눌러쓰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삶의 불 앞에서 껍데기처럼 조용히 익어가는 사람이다.


인내는 뭔가를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껍데기가 얇다고 쉽게 찢어지는 게 아니듯,

겉으로 온순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감정을 눌러 담고 살아간다.

세상은 그걸 약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얇은 것이 가장 질기다.

그리고, 가장 질긴 것이 가장 늦게 익는다.

그렇기에 가장 오래 남는다.


오늘도 누군가 조용히

껍데기를 굽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기름이 튀어도 허둥대지 않고,

불길이 세져도 자리를 지킨다.

누구보다 뜨겁고,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그 겉을 익히고 있다.

그게 바로 인내심이다.

쉽게 터지지 않는 겉, 그러나 결코 타지 않는 속.

익어가면서도 끝내 고소함을 지켜내는 시간.

인내심은 참는 흉내가 아니다.

버티는 동안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고,

마지막에 남아 자신만의 향을 내는 힘이다.

고소해지기까지 결코 서두르지 않는 시간.

그 기다림이 쌓일수록

사람은 얇아 보이지만 질겨지고,

겉은 흔들려도 속은 단단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을 믿는다.

불판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기름 튀는 삶 앞에서도 판을 엎지 않고,

묵묵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남보다 먼저 젓가락을 들지 않고,

자신의 몫을 끝까지 지켜내며,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

그런 당신을, 나는 고소하다고 느낀다.

눈에 확 띄는 불꽃은 아니어도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 남는 향.

그 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맡으면 다시 찾게 되고,

한 번 맛보면 오래 그리워진다.

사람 사이의 믿음도 그렇다.

한순간의 화려한 불길보다,

오래 지펴온 은근한 불이

끝내 마음을 데운다.


나는 그런 믿음을 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남기는 고소한 향이,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스며든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그 향을 따라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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