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

by 정담훈
처녀치마 (Heloniopsis koreana)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처녀치마〉


정담훈


가장 먼저 벗은 것은

입이 아니라, 잎이었다

그늘진 흙 위에

겹겹이 펼쳐놓은 몸

바람은 스치기만 했고

빛은 조용히 눌러앉았

네 이름은

부르지 않아도 발음되었다

누구의 입도 열리지 않았지만

기억 깊은 쪽에서

낮은음처럼 떠올랐다

치마 끝에서

겹쳐진 안쪽을

들여다봤다


한 송이 꽃이

숨을 삼키듯

몸을 들어 올리고

피는 건

자기를 낮추는 일이었고

선다는 건

그 낮춤 위에

한 겹 더 자신을 겹치는 일

너는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존재


그래서 너를

처녀라 부르지 않아도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치마 끝 하나도

허락받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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