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만 젖는 비

by 정담훈

(정담훈 / Jung Dam-Hoon)


가만히 있어보면

비는 언제나 둘 다 젖게 만든다.

그게 관계다.

같은 길을 걷는다면,

누군가만 홀로 젖는 일은 없다.


하지만 어떤 비는,

오직 나만 젖게 만든다.

그 사람은 우산을 쓰고 있었던 거다.

혹은, 비가 오는 줄도 몰랐던 거고.


나는 매번 먼저 말을 걸었다.

안부를 묻고,

조심스레 다가가고,

침묵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내 마음을 꺼냈다.

그 사람은 대답은 했지만,

한 번도 먼저 비를 맞으러 나오진 않았다.


어떤 관계는

마치 스스로 피를 공급해야만 살아남는 관엽식물 같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햇빛이 없으면 죽어간다.

그 식물이 나에게 꽃을 피운 적은 없었다.

나는 줄곧 ‘정성’이라는 이름의 영양제를 쏟아부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가끔 생각나는 이름’ 정도였던 건 아닐까.

내가 멈추면

그 관계는 숨도 쉬지 못하고 그대로 멈춘다.

마치 시계의 태엽을 내가 매번 감아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묻는다.

이 비는,

내가 혼자 맞아도 되는 비인가.

이 우산 없는 거리는,

끝까지 나만 걷게 될 길인가.


연락이 뜸한 사람과의 거리는,

사실 연락이 아니라 마음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지표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은

한밤중에도 불쑥 생각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손이 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이 없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바빠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마음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비를 함께 맞아줄 사람을 기다릴 거라고.

내가 먼저 뛰어나가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우산을 펼쳐주는 사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


이제는,

‘연락 없으면 그만인 관계’를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이 느껴지는 관계’로 바꾸고 싶다.


그래서 정리했다.

비 오는 날, 나만 젖는 관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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