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입상?

어느 심사 끝의 전화 한 통

by 정담훈

어느 심사 끝의 전화 한 통


공모에 글을 보낼 때마다

나는 작은 병 속에 쪽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그 병을 열어봐 주기를 바라면서도,

대부분은 어딘가 조용히 가라앉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심사 결과는 언제 발표될지도 모르고

기대라기보단 거의 잊고 지내던 어느 오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담훈 선생님 맞으시죠?

보내주신 작품, 심사위원들 평가가 좋았습니다.

시도 좋았고, 수필도 감동적이었어요.

세 편 모두 당선되셨습니다.”

그 말은

작은 칭찬이 아니라

내가 여태껏 견뎌온 날들을 잠시 위로해 주는

가볍지만 따뜻한 손길처럼 들렸다.


그래,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는 찰나였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곧 낯선 온도로 식기 시작했다.


“등단 절차가 있는데요,

심사위원 분들께 드리는 소정의 비용이 포함돼 있고,

연말쯤 호텔에서 뷔페와 함께 등단식이 있습니다.

등단비는 60만 원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는 말없이 그 설명을 들었다.

마치 내 글을 사고파는 방식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심사위원에게 주는 ‘감사의 비용’,

작품집 제작을 위한 ‘절차’,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인 ‘호텔 뷔페’까지.

이건 문학이라는 단어의 옷을 입은

상업적 계약의 안내였다.

물론 거절했다.


도대체 무엇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만들었을까.

정말로 내 문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60만 원을 낼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사비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줬다면,

그것은 돈이 오가는 구조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울림이 되어 돌아와야 하는 거라고 믿는다.

문학은 시장이 아니다.

작가란, 돈으로 구매하는 직함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등단은,

누군가가 정말로 내 문장을 읽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꺼내 들고,

그 글을 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그런 과정의 끝에서 불리는 이름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보내준 글보다

지갑의 여백을 더 먼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전화를 끊고

내가 쓴 시를 다시 읽었다.

그 시엔

심사비도, 뷔페도, 등단식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고 싶었던 하루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조심스럽게 눌러쓴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믿는다.

문학은 진심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작가는,

자기 글을 팔지 않는 사람이라고.


✒️ 정담훈 (Jung Dam-Hoon)

《나는 아직, 나를 고치는 중이다》 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쪽만 젖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