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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Jun 20. 2021

[영화, 보고 / 데이비드 게일]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본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던 영화를 넷플릭스라는 문명의 이기로 다시 꺼내본다. 

'데이비드 게일'

긴장감 넘치는 영화란 속 "사형제를 비판하던 교수가 사형에 처하게 됐다"는 소개는 토요일 밤 12시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구성하는 인물은 주인공 '데이비드 게일'과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기자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인공의 사형집행을 앞두고 취재원 보호에 열정적인 기자(비치)에게 단독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다. 주인공은 비치에게 자신이 왜 이곳에 앉아있는지 수수께끼를 던지듯 인생을 소회 한다. 

비치는 3번의 재판을 통해 유죄(강간 및 살인)를 언도받은 게일의 말에 빠져들고 스스로 사건의 중심에 선다.

영화 특성상 반전을 보는 재미가 있기에 영화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다만 왜 주인공과 주변 인물이 결말에 이르는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득이 되진 못했다.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본다

영화는 시종일관 '사형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영화의 소재부터 결말까지 사형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영화는 그 나름대로 해석을 해낸다. 

2003년 영화에서 던지는 물음은 사실상 지금 현대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도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인 사형폐지 국가' 군에 속하지만 여전히 형법에서는 최고형으로 '사형'이라는 두 글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사형을 집행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당위성을 3심 제도 조차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사형이 절대로 다른 범죄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반면 사형을 찬성하는 입장의 얘기는 단돈 몇십 달러로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영화가 사형을 반대하는 논거로 들은 '잘못된 판단'에 대해 한층 더 들어가 누구에게, 어떤 죄를 물어 '사형'을 내릴 수 있느냐다. 게다가 '사형'에는 감형이 없다.


여전히 강간 등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은 시민들 입에서 입으로 댓글에서 댓글로 이어진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는 게 분노의 논리다.

하지만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 즉 짐승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1명을 살해했다면 짐승일까, 3명부터 짐승일까. 강간, 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면 짐승일까. 이런 분류는 누가 할까. 법으로 정했다고 한다면 그 합의는 어떻게 된 것일까. 단순이 돈이 사라지고, 억압받는 것에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버리는 이 논쟁을 어떻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인간의 한없이 불완전한데, 그런 불완전한 결정으로 하나의 생명을 끝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과거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이제는 사형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다.


사형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든 다시 피어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사회는 여전히 복잡하고, 헌법은 '사형'을 용인한다.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을까. AI는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 있을까. 


#평점 5점 만점 (4점)

데이비드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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