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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Jun 21. 2021

[소설] 강점기 (1)

쾅!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소리에 압도되어 잠시간 울렁거리는 두통을 어찌하지 못했다. 이번이 두 번째. 성공이었을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실패로 끝난 것일까. 수십 번 연습하고 되뇌었지만 성공을 가늠하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쿵쾅거리며 가쁘게 뛰는 심장이 비단 굉음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단장님 단장님” 무열이는 얼빠진 나를 흔들었다.     


“무열아 일은 어떻게 됐느냐? 스티븐슨에게 제대로 적중했느냐?”     


“단장님, 성공했습니다. 그놈의 팔다리가 찢겨 나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제 뭐라 했습니까. 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선 이곳을 떠나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열이는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허겁지겁 뛰는 나와달리 그렇게 또렷하고 강직한 눈으로 그놈의 죽음을 알렸다.     


무열이가 이곳에 온 지 어언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꾀죄죄한 얼굴에 증오에 찬 눈빛만을 가졌던 강렬했던 첫인상. 일본 놈들, 쪽발이 새끼들이라며 거칠게 욕을 내뱉고는 왕창 울음을 터뜨렸다. 으레 그렇듯 일본의 횡포 속에서 고통받는 조선인의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년 내내 농사를 지어도 내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소작료를 제하고 나면 몇 말 되지 않았다. 겨울은 고사하고 당장의 빚더미를 해결할 수 없게 되는 악마의 순환고리로 농민들을 옥죄었다. 높은 소작료를 감당할 수 없어 산으로 만주로 넘어오게 된 농민은 꽝꽝하게 얼어붙은 만주 벌판을 깊숙이 파내고 씨를 뿌렸다. 조선 민초의 끈질긴 삶처럼 깊게 묻힌 씨앗은 동토를 뚫고 움트기 시작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에서도 솟아나는 초록의 줄기까지 어찌할 순 없었다. 민초의 삶은 그렇게 처절했고 쇠심줄같이 질겼다.     


무열이는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일본 순사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아버지를 보며 무열이는 끓어올랐다. 결국 사달이 났다. 조선인을 희롱하던 일본 순사를 제지하려다 개처럼 맞았다. 옳고 그름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힘만이 존재했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리고 며칠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장독으로 숨을 거두자 어머니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무열이에게 “같이 죽자. 죽자” 타박하던 어머니는 끝내 자신의 목숨만을 거두고 말았다. 안방 기둥에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무열이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따뜻한 품이 아닌 오직 증오와 고통으로 가득했다. 기둥에 매달려 있는 어머니는 혀를 주욱 내밀고 있었고 방안에는 똥오줌이 낭자했다. 역겨운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무열이는 어머니를 받쳐 들고 목을 죄고 있는 새끼를 풀고자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새끼는 목을 더욱 죄였다. 어머니의 입에서 떨어지는 토사물이 무열이의 머리 위로 툭툭 떨어졌다. 눈물과 똥오줌으로 토사물로 방안은 어지럽게, 어지럽게 흐트러져가고 있었다. 무열이는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식민지라는 조국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했다.     


신속하게 경성 바닥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남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두리번거릴수록 사람들이 자신들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긴 장검을 차고 말은 탄 순사들이 옆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착착 거리는 군화소리가 숨에 가쁜 심장을 더욱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골목길로 다다라 지나가는 순사를 힐끗 쳐다본 뒤에서 야 숨을 내쉬었다.     


“열아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구나”     


“예 단장님 헌데, 아까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신 겁니까?”     


“아니다. 네 어찌하고 있나 살펴보다 그리됐다.”     


“예 단장님, 이제 저도 폭탄 제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폭탄도 잘 던질 수 있습니다.”     


“좋아할 게 아니다. 이제 네 얼굴은 만천하에 드러난 거야. 이제 너는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삶은 살 수 없게 된 거다 이놈아.”     


그런  아무렴 상관없어요. 저는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장독으로 돌아가신 순간. 아닌 어머니가 목을 매달아 세상을 하직한 순간, 저는 어떻게 살지  정해져 있었습니다. 단장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있다면 저에게 사명을 주신  아니겠습니까?”     


딱 부러진 무열이의 대답에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들어온 이 의사단(義死團)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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