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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Jul 10. 2021

[소설] 강점기(2)

1919년 3월 민족 전체가 일제에 항거한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꺾여버린 뒤, 독립운동은 평화적이며 외교적인 방법을 버리고 해외기지 건설과 군대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모여들어 외쳐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홧발에 짖발혔고 총칼에 가슴이 찔리고 다리가 꺾였다.


제암리에서 만세운동을 하던 많은 장성들은 교회 안에 가두어져 화염 속에 타들어갔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울부짖었을 조국의 해방, 목이 찢어져라 외쳤던 만세는 불길 속으로 그대로 타들어가 버렸다. 타닥타닥 거리는 살타는 소리가 귀를 찢었고, 그 냄새가 주변지역을 가득 메웠다. 가슴 찢어지는 그 냄새는 제암리 마을 주변을 돌고 돌아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코를 싸매고 다니는 이가 없었고, 코 흘리게 어린아이 조차 코를 움켜쥐지 않았다.

비단 이것뿐만 이랴. 화수리에서는 만세운동을 하던 조선인을 구타하고 사살한 순사 한 놈을 분노에 못 이겨 돌로 쳐 죽여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의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일본 순사는 마을로 들이닥쳤다. 마을에 상주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쏘고 총구 앞에 달린 긴 장검을 휘둘렀다. 300명 가까이 되던 마을 사람들은 일본군이 다녀간 뒤로 100여 명 남 남았다. 굶는이 하나 보기 힘들다던 그 마을은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해 흉악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의사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선이 해방할 수 있는 길은 이제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었다. 폭력에는 그보다 더한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맞는 이치요 야만적인 제국주의 세력에 돌이라도 던져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최선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주먹을 내지르면 저들은 총, 칼을 내지르니. 내가 총, 칼보다 더 강한 폭탄을 내지르면 어떠하랴. 이렇게 의기투합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두 모인 곳은 조선땅이 아닌 청나라 땅이었다. 신흥 무관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하나둘 속속 길림으로 모여들었다. 고구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길림에서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 옛날 광개토대왕이 만주를 호령하고 고구려의 정신이 남아있듯 우리들의 가슴속은 뜨거움으로 가득했다.

     

5 척살 5 파괴 목표를 세웠다.

친일파를 단죄하고 조선 총독 이하 고관들을 단죄하는 것에 뜻을 모았다. 매국적 대상은 모두 다 척살 대상이 됐다. 조선총독부도 매일신보사도 우리의 목표가 되었다. 3.1 운동 이후 꺼져가던 민족 독립의 불씨를 살리고자 모인 이들은 그 이름을 의열단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창단 작업을 끝냈다. 15인의 단원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죽음에 한발 다가섰다. 그 죽음의 의미가 무언지 모르는 아이처럼 우리는 얼싸안고 우리들의 독립운동 그 자체를 기뻐했다. 우리가 일본군의 심장을 뚫는 총탄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우리들은 고통받고 찢어지는 고문을 당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얼굴엔 의연함의 웃음이 만발했다.  


새벽동이 틀 무렵 이종암이 벌떡 일어서며 우두머리를 정하자고 제안했다.     

“ 냉철하게 판단하고, 죽음의 길로 가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오. 나는 그 인물로 김대지 동지가 적합하다 생각되오”     

곽재기 동지가 이 말을 받았다.     

“ 내 20 인생 그리 길지 않소. 하지만 내 한 목숨을 누군가에 내 맡긴 다면 그 일을 김대지 동지에게 일임하고 싶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 어찌 그들을 사지로 내몰 수 있으랴. 내 어찌 내손으로 죽음으로 향하라고 등 떠밀 수 있

으랴. 순간 떠밀려왔던 무한한 책임감과, 그들의 가족들이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어찌 그대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소, 하지만..”     


이종암은 나를 향해 두 무릎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내 말을 잘랐다. 이종암의 행동에 곽재기, 서 상랑과 배동선은 적잖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사이 다른 단원들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이들을 물리칠 수 없었다. 아니 이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요,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버릴 수 없었다.     


“내 그대들의 뜻을 받겠소. 이 대한 조국을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릴 것은 물론이요. 내 목숨을 비롯한 여러분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겠나이다. 그대가 바닥이 꿇었던 그 무릎은 이제 이번 한 번으로 족할 것 이외다. 그다음의 그 무릎이 땅에 닿는 곳은 이곳 길림이 아니라 우리 조국 대한이 될 것이요. 그대들과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오. 내 이 탁자 위에 놓인 술잔에 피를 쏟음으로써 그대들과 하나 됨을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닌 조국의 것임을 맹세하겠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 검지를 단검으로 베어냈다. 만주 벌판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내 손을 타고 붉은 피는 흘러내렸다. 단원들 모두 단검을 빼내어 술독에 한 방울의 선혈을 내렸다. 우리는 뜨거운 술을 마시며, 아니 뜨거운 피를 마시며 동지애를 다졌다. 이제는 너와 내가 가족이고 너와 내가 조국이며, 너와 나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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