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Aug 17. 2021

[소설] 강점기(3)

한 잔의 술은 뜨거웠고, 길림의 혹독한 추위는 얼음장처럼 찼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들도 있었고,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올라온 이도 있었다. 하나로 묶는 무언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체계 잡인 생활이 먼저였다.

신흥무관학교를 거친 이들은 혹독한 훈련과 배고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기 충분했다. 이종암과 곽재기를 중심으로 해 훈련 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한편 약산을 시켜 주변 사람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우리 목표가 일본 제국주의인 만큼 중국의 열망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약산은 중국에서 유명한 칼잡이를 데리고 왔다. 우리의 몰골이 꾀죄죄하고 초라했지만, 그 노인의 모습도 우리 못지않았다. 반면 엉클어진 머리와 찢어진 외투는 그 칼잡이를 초라하게 보이게 했지만 그의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에는 충분했다.

노인에게 칼을 쥐어주자 순식간에 던져 보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사이 칼은 건너 책상에 꼿꼿하게 박혔다. 노인에게 단검을 다루는 것과 그 나름의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단원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겠느냐 부탁했다. 우리의 결의를 듣고, 우리의 목표를 확인했다. 그는 칼을 던지는 손이 아닌 동지애를 담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뜨거운 손은 맞잡을 수 있었다. 그와 맞잡은 그 손이 훗날 단원들을 치욕에서 건져낼, 고통 속에서 구원해줄 하나의 밀알이 될 것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주변은 적막했다. 황량한 대지의 만주 벌판과는 다르게 길림은 곳곳에 낮은 봉우리와 산들이 있었다. 낙타의 고운 허리 능선을 닮은 듯 산재한 산으로 우리의 거취를 옮겼다. 의열투쟁비용으로 각출된 7만 불의 돈은 큰 자산이었다. 이종암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며 2만 불의 거금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나 또한 가지고 있던 전재산 1만 불을 내놓았다. 가진 것 없이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러 온 이들 모두 주머니의 모든 돈을 꺼내어 보였다. 그들에게 돈은 이제 돈으로서의 가치를 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신흥 무관학교에서 행했던 대로 체조로 시작했다. 아침체조를 마친 후 아침식사는 거르고 칼잡이 훈련이 시작됐다. 십여 명의 의열단원들은 일제히 서서 10미터 거리에 있는 목탑을 향해 칼을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칼들은 일제히 꼽히는가 싶더니 신철휴의 칼만은 허공을 가르고 얼어붙은 땅으로 떨어졌다. 칼잡이 노인은 철휴의 자세를 바로잡고 허공으로 던지는 흉내를 시켰다. 나도 그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나도 의열단원으로 의백의 자리 단장의 자리를 함께하기 위해서 모든 훈련을 함께 받기로 했다.


          

김성도의 70만 원 송금으로 의열단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폭탄제조자 왕길인(王吉人)을 섭외할 수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폭탄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폭탄이라 하는 것이 부르는 게 값이기에 도저히 그 돈을 마련할 재간이 없었다. 왕길인을 중심으로 이종암과 최수봉은 폭탄 제조방법을 전수받게 되었다. 나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트리 느티로 톨루엔이라고 부르는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 상해에 있는 안전가옥을 빌렸다. 우리가 그 가옥으로 다가서자 안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전문가들은 우리보다 주변의 감시망을 먼저 살폈다. 이 일이 얼마나 촉박함을 다루고 있는지 몸으로 느껴졌다. 질산암모늄으로 만든 폭약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만드는 과정뿐이었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전수해 주진 않았다. 때 마침 김익선이라는 자가 의열단을 찾아와 폭탄을 제조하는 것을 돕겠다 나섰다.


“김 단장이 의열단을 조직하고 폭탄도 직접 제작한다고 들었소, 내 힘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두 팔 걷어붙이고 돕겠소이다.”     


“고맙소 김익선 동지. 지금 우리 몇몇 청년들이 이 폭탄 제조법을 아는 것보다 우리 의열단 청년 전체가 모두 이를 배웠으면 좋겠소. 어려운 부탁일 수 있으나 길림으로 가 우리 청년단원들에게 모두 교육해 줄 수는 없겠소?”     


“내 그리하리다. 내심 김 단장이 내게 임무를 주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소이다.”     


“고맙소 김익선 동지 그대의 그 열정과 능력이 대한 조국의 독립을 하루하루 앞당길 것 이외다.”     


폭탄 제조방법을 전수받은 이종암과 최수봉은 직접 폭탄을 제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문제였다. 길림으로 이동해 인적이 드문 야산을 살폈다. 숙소와 20~30리 떨어진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어붙은 대지가 움트고 있음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폭약을 실험했다. 다양한 모양의 폭약을 설치하고, 던져보기도 하며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종암은 나를 채근했다.     


“김 단장님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몇몇 결함이 있으나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충분히 고려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부족했다. 만에 하나 이들 폭탄이 불발탄이 된다면, 혹은 오발탄이 된다면 그 피해를 감수하기엔 의열단원들의 얼굴이 내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오발탄으로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미리 결의했던 그 많은 사항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폭탄이 들킨다 해도 절대 민가에 폭탄을 전가시키지 않고, 혹은 일본인이라고 해서 아무 이유 없이 죽일 이유는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고 우리가 처단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였다. 인본주의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폭약 구입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는 위험하네. 확실한 대응 없이 섣부른 공격은 오히려 화를 부를 테니.”     


이종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익산도 이에 응한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곽재기를 시켜 무기와 폭약을 구입하도록 했다. 리볼버 13정과 3발의 폭탄을 구입했다. 대부분의 군자금이 무기 구입으로 빠졌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단원들에게 피죽 한 그릇 제대로 주지 못했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보다 누군가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그 삶은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기를 구입하고 누군가를 죽여야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나보다는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의 무기가 필요했다.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필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입한 폭약을 어떻게 안전하게 조선으로 밀반출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종암과 곽재기는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곽재기가 스스럼없이 나섰다.     


“제가 김세직이라는 미곡상을 알고 있는데, 그에게 부탁하면 살포대에 넣어 조선으로 보내줄 것입니다.”     


“그건 김세직이라는 자를 너무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한발 물러났다.     


“아닙니다 단장님. 김세직이라는 자는 항상 독립을 마음속으로 열망했던 제 어릴 적 친구입니다. 그에게 부탁한다면 오히려 반색을 하고 맞을 것입니다.”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3.1 운동으로 부러진 날개가 되어버린 독립의지를 다시 훨훨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미리 구입했던 폭탄과 무기를 미곡상으로 보냈다. 두툼하게 올려진 쌀포대 사이로 폭약과 권총을 미리 넣어놓고 넌지시 돈을 건넸다. 경기도로 보내질 미곡상에는 조선인이었던 김세직이 큰 일을 담당했다. 자칫 발견되면 그에 목숨도 날아갈 판국이었다. 밀양경찰서를 폭발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곽재기를 먼저 밀양으로 보냈다. 먼저 시찰을 하고 그 반응을 살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뒤따라 최수봉을 이끌고 조선땅으로 향했다.     


조선땅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지난날의 독립운동 경력을 문제 삼고 일본 순사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위조된 증명서를 들고 배로 향했다. 누군가 쳐다볼까 노심초사하며 이층 구석에 쪼그리고 누웠다. 쪼그리고 누워 어두워진 표정의 최수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학아 고향을 다시 밟는 것이 어떠하냐?” 수봉의 본래 쓰던 이름이었다.     


“단장님 뜨겁습니다. 제가 숭실학교 3학년인 당신 일제에 의해 조선이 병탈당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의 동생들 까지. 1916년 남만주로 이주하기 전에 저는 조국에 대고 말했습니다. 내 어떤 명분이 있지 않는 한 다시 이 땅에 이 조국을 밟지 않겠다고. 그때는 그 명분이 독립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명분이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발걸음이라 뜨겁습니다.”     


“내 너와 많이 다르지 않다. 내 너와 겨우 5년 터울이지만 내가 먼저 얻은 것 일고는 신흥무관학교의 생활과 조금 더 일찍 행동했다는 것일 뿐. 너의 뜨거움이 무엇인지도 안다. 내가 조국을 잃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울분 임도 이해한다. 하지만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나가 있다. 냉철해라. 가슴을 뜨거울지언정 머리는 누구보다도 얼음장처럼 차야한다. 너의 손에 우리 조국이 달려있다 생각해라. 너의 입에 우리 의열단이 달려있다 생각해라. 너의 한 발짝 한 발짝에 너의 가족들이 있다 생각해라.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네가 해야 할 일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저를 믿어주시고 저에게 큰 임무를 준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고마움은 나에게 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것이 네가 이룩한 것이요 하늘에 뜻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할 뿐이다. 눈을 조금 부쳐두어라. 내일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지금 나에게 했던 그 뜨거움 감정. 차가운 머리를 잊지 말거라.”     


경학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어떤 벅참에 황홀함을 느낀 듯. 무언가 끌어 오르는 분노와 희열을 참을 수 없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20대를 갓 넘긴 어린 나이에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 너무나도 무한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책임감을 감당하기에 그런 뜨거운 눈을 가지고 있으리라.     


겨울의 서해바다는 고요하리만큼 잔잔했다. 큰 파도하나 없이 상해에서 고국의 땅까지 유유히 흘려보냈다. 마치 우리의 앞날의 거친 날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듯 우리의 앞길을 닦아내 주었다. 밤새 한잠 못 잤는지 경학의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강점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